돌아다니기(펌)

고치령과 마구령

moonbeam 2012. 6. 30. 10:45

태백이 받치고 소백이 품은 은둔의 고개,

고치령과 마구령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주능선 고치령(760m). 단종과 금성대군의 애틋한 역사를 간직한 이 험준한 고개 넘어 '영남의 고도(孤島)'라 불리는 마락리가 자리해 있다. 행정구역상 영주시에 속하면서도 고치령 때문에 나 홀로 단양군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 마락리의 지리적 형세를 두고 하는 말일 터다.


고치령 오르는 길 고치령 오르는 길, 차장 위로 낙엽 하나가 내려앉았다.



태백과 소백을 잇는 고개, 고치령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을 빠져나와 931번 지방도를 타면서부터 이정표에는 어김없이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등장한다. 이 친절한 이정표는 갈림길마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풍기나들목에서 소수서원까지는 10여 km, 그리고 여기서 다시 14km 정도를 더 가야 부석사에 닿을 수 있다.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그 중간에 있다. 단산면사무소가 자리한 옥대삼거리가 바로 그곳. 옥대삼거리 지나 단산교회가 자리한 갈림길에서 부석사로 이어지는 931번 지방도를 버리고 '좌석리․마락리'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고갯길로 들어서게 된다.
천천히 차를 몬다. 단산교회 앞에서 고치령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지만 그래도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운전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아니, 웬만한 드라이브 명소로 꼽히는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단산저수지를 끼고 도는 구간은 마치 호반도로를 달리는 듯 운치도 있다. 단산저수지를 5km 남짓 지나 좌석리와 연화동으로 이어지는 삼거리 두 곳을 더 지나면 이제부터 고치령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고갯길이다.
고치령은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목적이 비단 백두대간의 주능선이어서만은 아니다. 고치령에 얽힌 슬픈 역사와 그 역사를 보듬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녹아 있기에 그 여정은 더 뜻깊을 수밖에 없다.


고치령 정상 가는길에 있는 계곡과 아침 햇살에 빛나는 초록 잎 [왼쪽/오른쪽]고치령 정상에 이르는 동안 시원한 계곡이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 아침 햇살에 빛나는 초록 잎이 화사하다.



단종과 금성대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

차 두 대가 어깨를 겯고 지나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차를 몬다. 그럭저럭 길의 형태를 유지하던 도로는 정상까지 10분 남짓한 거리를 남기고 돌연 비포장으로 그 모습을 달리한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도로 여기저기에 깊은 고랑이 생겨 적잖이 애를 먹인다. 태백과 소백을 이어준다는 그 상징적 의미에서 오는 이름값이라고 해야 할까. 고치령은 호락호락 그 모습을 내보이기 싫은가 보다.
그렇게 올라선 고치령의 모습은 생각보다 조금은 밋밋하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뭘 기대했을까. 정선의 만항재에서 만난 멋진 설경이나 동해와 삼척이 한눈에 들어오던 댓재의 장쾌한 풍광에 견줄 만한 뭔가를 기대했던 걸까. 솔직히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실 모두 같은 백두대간이지만 이들 두 고개에 비하면 고치령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광이라는 게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내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에 오른 단종의 서글픈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고, 그의 복위를 꿈꾸던 금성대군의 마음도 그러했을 터이니 말이다. 뒤틀린 세상을 원망하며, 또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고치령이다.
고치령 정상에는 한 칸짜리 아담한 산령각(서낭당)이 자리해 있다.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신 이곳 산령각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산 중의 명산으로 꼽히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몸을 섞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싶다.


고치령 정상에 있는 산령각 고치령 정상에 있는 산령각 산령각에 모셔진 금성대군과 단종의 영정과 산령각 앞 장승들 [왼쪽/오른쪽]산령각에 모셔진 금성대군과 단종의 영정 / 산령각 앞 장승들



영남의 고도(孤島), 마락리

고치령 정상에서 마락리(馬落里)까지는 오를 때와는 달리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이어진다. 내리막길은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덕분에 오를 때와는 달리 핸들을 잡은 두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변속기 레버를 저속으로 옮기고 속도를 낮춘다. 그제야 고치령 정상에서 의아한 기분으로 한참을 들여다봤던, 전봇대에 큼직하게 새겨져 있던 전화번호가 떠오른다. 왜 인적 드문 그곳에 카센터와 콜택시 전화번호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는지.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의 경계에 자리한 마락리는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에 자리해 있다. 길도 꽤 험하다. 이 길을 오가던 보부상의 말이 자주 떨어져 마을 이름까지 마락리가 되었다고 하니, 그 험한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을로 들어섰지만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산뿐이다. 왜 이곳을 영남의 고도라 하는지 이해가 간다. 마락리 주민들은 이 산에 기대어 살아간다. 산에서 더덕도 캐고 산을 깎아 만든 자그마한 밭에서 배추와 무도 키운다. 그렇게 자식을 공부시켰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왔다. 누군가에겐 험하기만 한 이 산이 이곳 주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인 셈이다.
마락리의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마락분교이다. 마락리에서 가장 큰 건물인 마락분교는 도로변 한가운데 자리해 있다. 마락리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던 마락분교는 지난 1991년에 폐교돼 지금은 '마락청소년야영장'으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 모습만은 옛날 그대로다. 아니, 조금 더 세련되어졌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한여름 피서객들을 위한 야영장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이야 무엇이든, 그래도 여느 지역의 폐교들처럼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다.


마락청소년야영장으로 바뀐 폐교된 마락분교 폐교된 마락분교는 마락청소년야영장으로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굳게 닫힌 마락리 마을 입구 가게와 농사일을 하고 있는 마락리 주민들 [왼쪽/오른쪽]굳게 닫힌 마락리 마을 입구 가게 / 농사일을 하고 있는 마락리 주민들



영주의 북쪽 마지막 고개, 마구령

마락리를 벗어나면 단양군 영춘면이다. 고치령길과 935번 지방도가 만나는 의풍1교 앞 도로에 설치된 현수막이 시선을 끈다. '의풍초등학교 오토캠핑장(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760번지, 011-361-6859).' 폐교를 개조해 캠핑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곳은 지난 6월 8일에 문을 열었다. 이런 곳까지 캠핑을 하러 올까 싶지만 널찍한 운동장 주변으로 제법 많은 텐트가 늘어서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이곳 오토캠핑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고치령까지 트레킹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차를 돌려 마구령으로 방향을 잡는다. 고치령길이 끝나는 의풍1교 앞에서 우회전해 935번 지방도를 따라 8km 정도 가면 영주의 북쪽 마지막 고개, 마구령이 나온다. 마구령에 이르는 길은 임도였던 고치령길과 달리 지방도로 지정돼 있어 도로도 넓고 상태도 양호하다. 그래도 호젓함은 고치령길에 뒤지지 않는다. 구절양장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부석사가 지척인 두봉교에서 끝이 난다.


의풍분교 오토캠핑장 의풍분교 오토캠핑장 마구령길과 마구령 정상을 알리는 표석 [왼쪽/오른쪽]마구령길 / 마구령 정상을 알리는 표석



tip 고치령~마구령 코스(30.8km)

단산교회 → 고치령(9.8km) → 마락리(2.6km) → 의풍1교(4.1km) → 마구령(8.8km) → 두봉교(5.5km)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풍기IC → 봉현교차로 우회전 → 931번 지방도 → 순흥교차로 좌회전 → 옥대삼거리 좌측 방향 → 단산교회 앞에서 '좌석리, 마락리' 방면으로 좌회전 → 고치령 → 마락리 → 의풍1교 우회전 → 마구령 → 두봉교

* 대중교통

서울→영주 :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114)에서 1일 10회(07:10~20:40) 운행. 2시간 20분 소요
부산→영주 : 부산종합버스터미널(051-508-9955)에서 1일 16회(07:00~19:30) 운행. 3시간 30분 소요
대구→영주 :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1588-6900)에서 1일 21회(06:40~20:50) 운행. 2시간 소요

2.맛집

순흥전통묵집 : 영주시 순흥면 / 묵밥 / 054-634-4614
약선당 : 영주시 봉현면 / 한정식 / 054-638-2728
선비촌종가집 : 영주시 순흥면 / 생선구이정식 / 054-637-9981
영주축협 한우프라자 : 영주시 풍기읍 / 한우 / 054-631-8400
인천식당 : 영주시 풍기읍 / 청국장 / 054-636-3224

3.숙소

영주선비촌 : 영주시 순흥면 / 054-638-6444
풍기인삼관광호텔 : 영주시 풍기읍 / 054-637-8800
솔마음황토펜션 : 영주시 풍기읍 / 011-507-2703
그랜드모텔 : 영주시 휴전동 / 054-633-7266
경동모텔 : 영주시 휴전동 / 054-633-7229


글, 사진 : 정철훈(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2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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