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용유담...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moonbeam 2012. 5. 26. 13:02

  
지리산 용유담 전경.
ⓒ 최지용
 

  
자갈이 급류에 의해 소용돌이 치면서 바위를 침식해 만든 용유담 포트홀.
ⓒ 최지용
 

"그 구멍에 처녀가 들어가면 깊고 미끄러워서 혼자 나올 수가 없는기라. 그기에 사내 하나 같이 넣으면 둘이 꼭 붙어있어야 해. 그라문 둘이 알아서 결혼하는 거지. 어렸을 때 그러고 많이 놀았어."

 

지리산 용유담 지역에 형성된 '포트홀(Pothole)' 이야기다. 우리말로 '돌개바위'라고 한다. 폭포나 급류지역에서 물에 떠내러 오던 자갈들이 소용돌이치면서 바위를 항아리 모양으로 깎아낸 지형을 말한다. 이 생소한 지질용어에 얽힌 '로맨스'를 누설한 사람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주민 강학기(55)씨. 이곳 임천강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온 그는 용유담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옛날에 저 산위에 마적도사라는 도인이 살았는데, 매일 자기가 부리는 나귀한테 심부름을 시켰어. 그 나귀가 돌아와 울면 강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고 그랬는데 하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이상해서 내려와 봤더니 아홉마리 용이 싸우는 통에 나귀 소리를 못 들은 거야. 성질 급한 나귀는 바위에 머리를 박아 죽었고, 화가 난 마적도사가 용들을 다 죽이고 눈이 먼 용 한 마리만 남겨 놓았어. 그게 여기 용유담이야."

 

지리산 골짜기에 이런 이야기 하나 없는 곳이 있겠느냐만, 수려한 산세와 곳곳에 크고 기이한 바위들이 만든 절경은 용이 산다는 그 말도 과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기에 조선시대 지역 현감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유명 학자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정신수양을 했다니 지리산 어떤 곳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곳이다. 최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이곳을 '명승지'로 지정하려는 것도 납득이 간다.

 

문제는 정부가 임천강에 추진 중인 문정홍수조절댐(지리산댐)으로 인해 용유담이 수몰될 위기에 있다는 것. 문화위원회가 명승지 지정예고를 하자 국토해양부와 함양군이 댐건설을 이유로 지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1999년 추진되다가 인근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와 주민들의 반대로 사라진 지리산댐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결국 용유담 명승지 지정은 보류됐고, 댐건설 찬반 논쟁도 다시 일고 있다.

 

지난 22일 그 논란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원시림 칠선계곡과 백무동도 위험

 

  
용유담에 바위에 조선시대 함양군수 김종직 선생의 이름이 새겨진 모습.
ⓒ 최지용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선에서 차로 달려 20여 분. 가파른 언덕길이 끝나자 산 중턱에 난 도로 아래쪽으로 넓은 지역에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 있는 게 보였다. 빠르게 내려오던 물은 평평해진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연못(담)을 만들었다.
 
한편에는 조선시대 함양군 현감이었던 김종직 선생이 기우제를 지낸 널찍한 바위가 있고, 그 근처 바위에는 또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유명 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용유담에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곳곳에 생겨난 포트홀로 인해 기이한 모양의 회백색 바위들과 함께 상류 쪽에는 주민들이 '용의 배설물'이라고 부르는 검정 돌도 간간히 섞여 있다. 포트홀 지형은 용유담과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경기도 가평군 가평천 등 한국에 몇 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포트홀이 약 18억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리산의 탄생을 알려줄 열쇠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용유담은 빼어난 경관으로 보존 가치뿐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 또한 수달의 서식지로 추정되며,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이동 통로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생태 가치도 가볍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댐건설 추진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현장에 동행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명승지는 단순히 경관만 빼어나다고 지정되는 게 아니다"면서 "그곳이 가진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용유담은 그런 점에 있어 조건이 충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예산을 들여 조사하고 학술회의까지 끝낸 명승예정지에 댐을 짓겠다며 모든 걸 수장시키려는 수자원공사와 국토부의 발상에 황당하다"고 덧붙였다. 명승지 지정을 최종 결정하는 문화재위원회는 오는 6월 열릴 예정이다.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은 "수억 년 동안 물이 흘렀던 이곳에 물을 채워놓는다면 생태계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당장 수몰지역의 동식물 문제뿐 아니라 용유담 상류 칠선계곡은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원시림으로 불리는데 담수로 인한 안개 발생 등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지역에서도 제1비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현재도 예약탐방만 가능한 상황이다.

 

지리산댐은 용유담에서 하류로 3.2km 떨어진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경계인 마천면 문정마을에 들어설 예정이다. 댐이 건설되면 일대 4.2㎢가 물에 잠기게 된다. 전북 남원의 실상사 1.7㎞ 아래까지 수몰돼 사찰에 보관 중인 문화재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칠선계곡과 더불어 백무동도 수몰지역과 맞닿는다. 주변 도로 11.2km가 물에 잠기고, 25일 완전 개통되는 '지리산 둘레길'도 끊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성 없어 무산된 다목적댐, 홍수조절용으로 되살아나

 

  
지리산댐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문정마을 일대(위), 길이 869m, 높이 141m의 댐의 규모(아래)
ⓒ 최지용
 

문제의 댐이 건설될 예정인 문정마을로 향했다. 용유담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문정마을은 아주 산세가 가파른 곳에 있었다. 현재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인 관계로 댐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으나, 최근 정부에서 현장조사 나온 지점을 그 위치로 보고 규모를 예측해봤다.

 

댐의 크기는 높이 141m, 길이 869m로, 약 50층 높이의 빌딩 수십 개가 옆으로 늘어선 모양의 거대한 벽이 생기는 것이다. 이 높이는 현재 가장 높은 평화의 댐(125m)보다 16m 더 높으며 길이는 진주남강댐(1126m) 다음으로 길다. 지리산댐은 유역면적 370㎢에 1억7000만 톤의 물을 담수할 예정이다. 진주남강댐은 유역면적 2258㎢에 총 저수량 3억9000만 톤이다. 지리산댐의 유역면적은 진주남강댐의 1/5밖에 안 되지만 저수량은 절박에 육박한다.

 

이렇게 거대한 댐을 왜 지리산에 지으려는 것일까? 현재 추진되는 댐이 홍수조절용이라고 하지만, 사실 부산과 경남 일부지역의 식수를 확보하기 위한 용도라는 게 지역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80년대 수력발전용으로 구상된 지리산댐이 구체화 된 것은 지난 1999년. 당시 낙동강 페놀사태 등으로 부산과 경남 일부 지역에서 식수 불안감이 커졌고 그 대안으로 지리산 권역에 대체상수원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식수확보용 댐이 건설되면 상수원보호구역이 지정되기에 지역 주민들은 반대에 나섰고 여기에 실상사를 보호하기 위해 불교계까지 들고 일어났다. 게다가 '민족의 영산을 지키자'는 국민 반대 여론이 조성되자 결국 지난 2001년 폐기된다.

 

하지만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산사태로 8명이 희생되자 함양군은 '주민숙원사업'이라며 정부에 댐 건설을 다시 촉구했다. 당시 산사태는 임천강 유역에서 1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댐의 홍수조절능력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 이후로 계속 댐 건설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피해는 급류로 인한 교량유실과 산사태로 인한 재산-인명 피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2007년 중앙하천심의위원회에서 '댐건설 장기계획'을 변경하면서 지리산댐의 신규 후보지 3곳이 명시됐고, 2009년 같은 위원회에서 '낙동강유역종합치수계획' 차원의 '임천수계댐'으로 고시됐다. 사업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국토부가 '남강댐사업 타당성조사'를 벌이면서다. 국토부는 이때 다목적댐으로 돼 있던 것을 '홍수조절용' 댐으로 바꿔 추진한다.

 

홍수조절용댐은 치수시설로 예비타당성검사 대신 간이예비타당성검사만으로 건설 추진이 가능하다. 4대강 사업도 이 같은 방식으로 간이예비타당성검사만 마친 후 사업이 진행됐다. 또 다목적댐일 경우 비용편익비율이 0.68로 경제성이 없었으나 홍수조절댐으로 지을 경우에는 비용편익비율이 1.07로 높아졌다. 그러면서 사업비는 5000억 원에서 9897억 원으로 증가했다.

 

수자원공사 "부산지역 식수용 아니다"

 

  
지리산댐이 건설되면 수몰되는 지역 조감도.
ⓒ 경남환경운동연합
 

이환문 경남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러한 사업내용 변경에 이은 댐 건설 재추진과 관련해 "건설 목적을 바꾼 것은 어떻게든 댐을 짓겠다는 뜻"이라며 "자연파괴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생활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지역의 식수공급을 위해 진주남강댐의 수위를 높이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에 따른 홍수 위험을 막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지리산댐의 홍수조절능력은 0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댐 건설이 몇 번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자 이제 홍수조절용이라고 목적을 바꿔 건설한 다음 다시 다목적댐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며 "홍수조절용댐이면 홍수에 대비해 물을 비워놔야 하는데, 지리산댐은 상시 저수해 확보하려는 물의 양이 9700만 톤에 이른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식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수자원공사 측은 댐 건설이 부산지역 식수공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역 주간신문 <주간 함양>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7일 권부현 수자원사업처장은 함양군의회에서 진행된 지리산댐 관련 브리핑에서 "홍수조절댐을 건설한 후에 다목적댐으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댐 안에 비상용량은 이상가뭄 시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그는 "부산지역 수자원 확보를 위한 댐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권 처장은 이 자리에서 용유담을 이전해 복원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권 처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용유담 명승지정에 대해 "문화재는 보존돼야 하지만 댐 건설 지역 주민의 인적, 물적 피해 가치와 문화재 보존 가치를 비교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사람이 살아야 문화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자원공사는 지리산댐을 건설할 경우 댐정비사업비 약 500억 원과 지원사업비 연간 약 5억 원가량 등을 지역에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급류가 바위를 침식해 기이한 모양을 만들어 낸 용유암 바위.
ⓒ 최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