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민일보 기자의 파업 일기

어느 국민일보 기자의 파업 일기
‘조민제사장 퇴진’ 외치며 해고 각오 76일째 파업
“옳은일이라 싸운다…사회고통 외면한 과거 반성”

“조민제 사장은 말이야. 높고 단단한 철벽이야. 우리는 거기 던져지자마자 깨지는 날계란들이고.”

“선배, 알아. 나도 알아. 깨져서 산산이 부서져도 좋아. 산화돼도 좋아. 누군가는 그래야 하는 거잖아. 의미 있는 거잖아.”

함께 밥을 먹던 선배와 나는 식당에서 나와 한참 걸었다. 선배의 발은 영등포역 인근 복권 파는 가게에 멈췄다.

로또 두 장을 사더니 싫다는데도 내 손에 한 장 쥐어 주었다.

“그냥 가져. 이거 당첨되면 우리, 노조 기금으로 내는 거다.”

선배는 정말 당첨이라도 될 듯이 활짝 웃었다. 구겨진 복권, 그 싸구려 희망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희망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파업이 지금껏 76일째다.

처음엔 자신 있었다.

헌금으로 만들어진 신문사, 공익재단이 소유한 신문사니까 조용기 목사 일가가 사유화해선 안 된다.

교회를 세습하면 안 되듯, 국민일보를 세습하면 안 된다. 여섯 달 출근 안 하고도 억대 연봉 받는 사장은 안 된다.

사장을 비판했다고 노조위원장을 해고한 건 부당하다.

기자들 75% 반대표를 받고서도 ‘편집국장 평가투표’라는 민주제도를 무시하고, 무조건 버티고 보자는 국장을 두고 볼 수 없다.

조용기 목사의 차남 조민제 <국민일보> 대표이사

분노한 기자들이 집회를 열면 채증하고 불이익을 주고, 게시판에 글을 쓰면 모두 지워 버리는 ‘도가니’ 같은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기자들은 지난해 12월23일 파업 이외에 선택할 카드가 없는 낭떠러지에 맞닥뜨렸다. 그리고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 75일 동안 사장이 얼마나 높고 단단한 철벽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옳은 것, 바른 것,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지만 세상은 아직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에게 철저하게 유리한 세상임을.

파업 중인 108명의 기자, 사원 중 1년차 막내 기자를 포함해 23명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했다.

돌멩이처럼 소장을 던져대는 경영진은 두려울 게 없다.

그들은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과 고소로 기자들 목을 야금야금 죄어온다.

모두들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한다. 어느 누가 종교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느냐고. ‘개독교’라는 이미지에 갇혀버린 당신들을 누가 선뜻 돕겠냐고. 나는 그렇게 기자 생활 안 했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그 이미지는 벗어나기 힘든 감옥이었다. 사측은 그 감옥을 오히려 즐길 것이다. 그렇게 고립돼야, 기자들을 길들이기 쉬우니까.

승진에, 월급에, 자리에 길들여진 선배 기자 수십 명은 오늘도 연합뉴스를 베끼며 꾸역꾸역 국민일보를 만든다. 어린 후배들이 무더기로 고소당한 날, 80여명의 후배 기자들이 마스크에 가위 표시를 하고 편집국 내부까지 들어가 침묵시위를 했다. 책상 바로 앞에서 피켓을 든 후배들을, 부장들 대다수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부장은 후배들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가거나 휘휘 쳐다보았다. 3년차 여기자의 마스크 위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선배라 부르던 부장과 후배들은 지금 억만년쯤 떨어진 각자의 별에 살고 있다. 후배들은 편집국 문 밖 복도에서 ‘비리 사장 퇴진’을 부르짖고, 선배들은 편집국 안 책상에 앉아 법무부에 제출할 ‘비리 사장 구명 탄원서’를 쓴다.

술에 취한 어느 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한 선배를 회사 앞에서 마주쳤다.

“나한테 화났지? 뭐가 불만인 건데?”

“...”

“넌 참 바보 같아.”

“세상은 바보가 바꾸는 거잖아요.”

긴 말 않고 선배를 지나쳤다. 선배는 선배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어떤 선배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안 하겠다고 했다. “이길 것 같아서 싸우는 줄 같아요? 옳아서 싸우는 거예요. 옳아서.”

그 선배와의 술자리는 언쟁으로 끝났다. 신념의 차이, 생각의 차이로 국민일보 기자들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갈라졌다.

갈라지고 찢긴 땅을 뚫고도 그러나 푸른 풀이 돋아나고 있다. 사회의 고통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알았던 기자들의 가슴에 푸른 풀이 돋아난다. 파업 중인 기자들은 요즘 저마다의 반성문을 쓴다.

“투쟁 1500일을 넘긴 재능교육 농성장에 가니까 반성이 되더라. 예전이라면 기사 안 된다고 ‘킬’했을 아이템인데.”

“스물 한 명이 목숨 잃을 때까지 기자들이 관심 갖지 않던 쌍용차 해고. 우리부터 반성해야 해.”

그것은 사회의 고통에 연대하겠다는 기자들의 의지다. 철저하게 아파 본 사람만이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 타인을 위해 울 수 있다. 파업은 기자들의 세계관을 넓혀주고 있다.

파업 60일을 맞은 지난 2월20일 〈국민일보〉 노조가 서울 여의도 이 신문사 사옥 편집국에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나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현장에서 잘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속한 각각의 매체에서 진실 보도, 공정 보도를 막는 모든 권력과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기자들이 도망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도망친다고 몸담고 있는 언론사가 폐간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싸우다 사라진 자리에 다른 누군가 들어올 것이고, 그 누군가는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하거나 순응할 것이다. 아니면 그 또한 도망치거나.

각오했던 명예훼손 고소는 현실이 됐고, 이제는 해고를 각오하며 싸워야 할 때가 됐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 그게 기자로서의 책임인 것 같다. 아프게, 외롭게, 싸우는 기자들이 많다. 모든 언론사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내 주길 바란다. 우리가 이곳에서 더 열심히 싸울 수 있도록! 조용기 목사 일가의 지면 사유화란 철벽에 던져지는 날계란 같은 108명이 당신들의 연대와 지지로 철벽을 뚫을 수 있도록!

박유리<국민일보> 특집기획부 기자

<국민일보> 노동조합은 오는 12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토크 콘서트 ‘국민일보 파업대부흥회’를 연다.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나는꼼수다’의 시사평론가 김용민, 소설가 공지영,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이진오 목사 등이 출연한다. 신청방법은 국민일보 노조(kukminstrike@gmail.com)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메일을 보내면 된다. 기본은 1인2매이며 1장만 필요한 경우 별도 표기. 콘서트는 ‘자발적 후불제 공연’으로 현장에서 공연이 끝난 뒤 원하는 만큼 후원금을 낼 수 있다.

국민일보 파업대부흥회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