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해 보고 싶은 남해안 어느 섬에 나무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직선제 대통령을 뽑기로 의결하고, 서둘러 대통령 선거법을 정했다. 그리고 그 선거법에 따라 선거일을 공고하고 후보등록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도 후보등록을 하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무들은 다시 모여 문제점을 검토했다. 후보 자격 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정하지는 않았는지, 후보등록 신청금을 너무 많이 책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검토, 보완해서 다시 후보등록를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 한 나무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나무는 없었다.
나무들은 다시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번에는 '대통령 추대위원회'를 만들어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 중에서 한 나무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추대위원장은 나무들 사이에서 가장 젊고 인기가 있는 사과나무가 맡았다.
사과나무는 먼저 가장 나이 많은 동백나무에게 찾아가 대통령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동백나무는 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손을 내저으면서 거듭거듭 사양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백기름을 만드는 일만 해도 벅차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과나무는 다시 오동나무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동나무도 "사람들이 즐기는 거문고의 좋은 재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마음이 바쁘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사과나무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대통령이 되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가 거북해서 다들 겸양의 미덕을 발휘라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다시 용기를 내어 포도나무를 찾아갔다.
"이웃 섬을 보십시오. 일찍이 민주주의를 꽃피워 우리보다 더 평화스럽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 속히 민주주의를 꽃피워 이웃 섬보다 더 잘 사는 섬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역시 "사람들에게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사과나무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나무들의 그런 태도가 정말 싫었다. 나무들은 오직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과나무는 자신이 인간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매를 맺는 일이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성실하게 산 하나의 결과라는 데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사과나무는 마지막으로 가시나무를 찾아갔다. 가시나무는 사과나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대통령 직을 수락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대통령이 되어 주마. 너희들은 다들 내 그늘에 와서 마음껏 먹고 쉬도록 하여라."
가시나무는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사과나무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가시나무가 독재자가 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락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다른 나무들도 걱정이 되는 눈치였으나 다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사과나무의 그런 걱정은 적중되었다. 대통령이 된 가시나무는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했다. 자기가 가장 잘나서 대통령이 된 줄 알고 왕성한 번식력만을 자랑해 나갔다.
섬은 점점 가시나무 숲으로 뒤덮여 갔다. 포도원도 과수원도 다들 못 쓰게 되었다. 나무들은 후회했으나이미 늦은 뒤였다. 나중에는 가뭄으로 불이 나 섬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몽땅 다 불타 버리고 말았다.
-정호승의 인생동화 '울지 말고 꽃을 보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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