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오래 묵은 제자

moonbeam 2015. 3. 2. 22:14



지난 2월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자의반 타의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오늘, 생각도 정리할 겸...불어난 뱃살 줄일 계획도 세울 겸...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나와 같은 부류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따질 것도 없이...
매년 3월 2일에 새로운 애들과 함께 새해가 시작된다.
이맘때면 항상 옛날을 되돌아 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기대도 하며
좌우지간 약간 붕 떠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미래에 대한 흥분? 기대? 첫대면을 하고난 후의 실망? 뭐 이런 요상한 감각들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맴돌게 되는 시간이다.
매년 반복이 되면서도 똑같은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감흥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그저 무덤덤하다고나 할까...


올해는 특히 작년에 가르치던 애들을 이어서 맡게 되어서 그런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이러면 안되는데...이건 아닌데...하며
자책도 하고 한바퀴를 다 돌아올 즈음에...전화가 왔다...

찍힌 이름을 보니..ㅎㅎ.. 실 웃음이 나온다...


단순하면서 우직하고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대학 다닐 때는 서울과는 반대편 기차를 무작정 집어 타고는
무감각하게 좋다고 종점까지 갔던 놈...
전화를 할 때면 항상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놈...
가끔 안부전화를 하는 놈이라 심상하게 받았는데,
'선생님, 30년 전,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입니다' 한다.
아...그렇지...
1985년 얘들이 고3 처음 올라왔을 때 담임으로 첫대면이었지..
그저 이런저런 평범한 이야기...오래된 선생과 제자가 나누는 그런 이야기...
'자주 찾아 뵈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하면
'괜찮아 바쁜데 뭘~~~'하고,
'조만간 함 넘어 갈께요'(이놈은 집이 강동구. 정말 끝에서 끝이다)하면
'그래 무리하지 말고...함 넘어와~~~'하고는 안녕 인사와 함께 통화 끝...


차암...도대체가 잔정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산적같은 놈이
어찌 30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며 전화를 한단 말인가...
'선생님...85년 3월 2일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꼭 연애할 때 쓰는 멘트 같지만 듣는 기분이 묘하다...


아아..
이맛이다. 바로 이맛이다.
물론 지들끼리 모였을 때 나를 안주 삼는 일이 많고,
심지어는 늦은 밤에 나한테 전화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지만...
또 다른 요런 잔재미도 있다.
특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놈의 애교라 더욱 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렇게 떠들어도 이놈은 보지를 못한다.
카톡도 안하는 놈이니 페북을 어찌 알랴...ㅎㅎㅎ

내일부터는 낯익은 놈들이지만 새로운 시간을 맞게 된다...
ㅎㅎ 또 어떤 웃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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