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제목
교회에 나가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 발칙한(?) 제목의 책은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나안성도’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분명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지만 기성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굳이 용어를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라는 말이 되고, 여기에 ‘성도’란 말이 붙어 있으니 단순히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아서 교회에 안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 교회에 나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담벼락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가 이런 글을 올렸다. “‘가나안성도’ 출판 원고의 초고를 마쳤습니다. 햇수로 5년간 연구를 했는데요. 매년 연구를 지속한 것은 아니지만, 2010년 ‘바른교회아카데미’ 협동총무 시절 양희송 대표가 연구 제안을 해서 시작을 했는데 처음 ‘가나안성도’에 대해 언급한 분은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지성근 목사님이었지요. 그 후에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에 선정이 되어서 2년 동안 후속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마 2008년인지 2009년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른교회아카데미가 부산에서 연구위원 세미나를 할 때 초대받아 간 자리에서 우연찮게 옛날부터 신학교 등에서 우스갯소리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던 ‘가나안’(non goer)이란 용어를 필자가 꺼낸 것에 대해 그 자리에 있던 양희송 대표나 정재영 교수 같은 분들이 반응 착안하여 일차적으로 양희송 대표가 2010년 11월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교회20컨퍼런스에서 처음 ‘가나안성도를 주목하라’라는 문제제기를 했고, 그 이후 위에서 언급한대로 살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연구소의 정재영 교수와 조성돈 교수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2013년을 기점으로 한국 교계에 자연스럽게 공유된 개념이 되었다.
이 용어가 전반적으로 보다 자연스러워진 것은 그간 한국 사회 안에서 보여 주었던 부정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몇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상당수의 개신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현상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이렇게 기존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일시적으로 교회를 기피하는 사례가 없었던 것이 아니며,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런 예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히 중진급의 소위 헌신된 중년이상의 성도들에게서 이런 가나안성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단순히 신앙에서 멀어지거나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적 결단(?)에 의한 선택인 경우가 상당하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런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심각한 교회의 위기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왜 이렇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대안으로 기존 교회가 어떻게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종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결국은 이 가나안성도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들을 어떻게 기존의 교회로 다시 수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십상이다. 물론 대개의 이런 반응은 당연히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교회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이해와 사랑으로 교회를 보면서도 이런 가나안성도 현상을 오늘날 교회가 맞게 된 일종의 기회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소개하려는 책의 중요한 주제인 셈이다. 저자 켈리 빈은 비록 이 책이 기존의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시기와 장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결코 전통적인 교회에 흠집을 내려거나 고통을 던져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12쪽). 그 자신이 기존 교단 교회에서 오랫동안 평신도 지도자로 섬기면서 혹은 개척 교인으로 교회를 개척하여서 기존 교회의 장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기존 교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기존 교회에 나가든지 나가지 않든지 동행자가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고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결론 이후에 저자는 에필로그로 기존 교회, 혹은 기존교회에 나가는 분들, 거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특별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going to church)만 강조하기보다 세상 속에서 이미 일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에 주목하여 교회가 되는 일(being church)에 강조점을 두게 될 때 기존 교회가 새롭게 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다만 현대의 산업경제 구조를 고려하거나 보다 인격적인 공동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작고 의도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길이 기존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작정한 가나안성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225-226쪽).
‘교회 가기’에서 ‘교회 되기’로
결국 이 책의 강조점은 기존 교회에 나가는 이들이든 아니면 이제 가나안성도로 살기로 선택한 이들이든 우리 모두가 세상 속에서 혹은 일상 가운데서 교회가 되는 삶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존 교회의 체질 변화를 통해서만 이것이 가능하며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거나 냉소주의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고 판단하고 어떻게 하든지 일시적인 가나안성도의 삶을 탈피하여 다시 교회로 편입되기를 권면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제 생명을 가져다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성장을 가능케 하는 더 내밀하고 의도적인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오히려 용이한 시대가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환경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며, 더불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인터넷은 우리가 새로운 친구를 찾거나 공동의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의 관계망을 형성하기 쉽도록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기도 제목을 나누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배우거나 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유명한 강사가 언제 어디에 오는지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전혀 만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과 오프라인 만남을 시도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먼 선교지의 필요를 나누고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관계망(SNS)를 통해 외로운 사람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물이 부족한 이들이나 암이 걸린 친구들, 책이 없는 아이들의 필요를 보고 도와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이 새로운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열고 있으며 새로운 방식의 대안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차원에서의 ‘교회 되기’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일상 속에서 신앙 표현하기
심각한 개인주의에 빠져 있고 동시에 잡동사니 영성으로 얼룩진 기존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된 가나안성도의 경우에 이것들을 대신하여 성경의 서사와 교회의 역사적 전통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신앙적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추구하게 된다. 특히 일상의 삶과 신앙의 통합을 지지하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누리고 실제적인 참여가 가능할 수 있는 작고 보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공동체를 추구할 수 있다. 전통적인 교회의 형태와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혹은 때로 잠정적인 공동체적 경험일지라도 진정한 우정을 경험하며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신선한 방식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함을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가지 실제적인 스토리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대안적인 구조
그러나 기존의 조직화된 교회에 나가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가나안성도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질문들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전히 목양적인 돌봄의 필요를 느낄 수 있으며, 물질을 사용하는 문제에서도 십일조와 헌금만 하면 된다는 이전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기존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나 다음 세대를 위해서 배움은 지속되어야 하며 의식과 제의 역시 인간의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무엇보다도 가나안성도이고 싶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존 교회에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주일학교 교육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 책은 그 질문에 합당한 대안에 대한 일종의 상상력을 이야기와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사례들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3부). 한 사람의 목회자만 의지하기보다 리더십의 짐을 나누고 상호 돌봄을 통해 기도의 공간을 만들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함께하는 공동체 이야기들, 물질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대안 경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은 공동체들, 그리고 중국이나 과거 소련과 같이 핍박받는 상황에서도 가시적인 조직 없이도 전승되었던 가르침과 예수 따르는 제자도를 살아갔던 혁신적인 공동체의 예, 그리고 하나님에 관하여 그 위대한 일에 관하여 듣기만 하지 않고 살아있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위대한 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공동체와 가족의 문제에 참여시키고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존중하는 공동체 이야기들이 가나안성도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을 간추려 요약한다면, 가나안성도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일하시고 계시는 것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주목하면서 스스로 영적으로 성장하며 다른 사람을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적missional 공동체, 선교적 교회, 선교적 생활양식에 반드시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93). 가나안성도라면 이제 그동안 경험했던 교회에 대해 불평하기를 그치고 오히려 스스로 꿈꾸던 교회가 ‘되기’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하던 신수도원적 공동체neo-monastic community 혹은 저자가 표현한 대로 의도적인 공동체intentional community라고 말하는 이런 공동체는 반드시 세상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미션얼”missional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고백
저자 자신이 기존 교회를 섬기다가 가나안성도로서 24년간 섬겼던 ‘세 번째 토요일에 모이는 유기적 공동체’Third Saturday Organic Community와 도시 수도원Urban Abbey 공동체가 어떻게 저자의 고통의 시기 특히 이 책이 구상되고 있던 8년의 세월 동안 저자가 경험했던 가정경제의 붕괴와 자녀들의 문제로 인한 곤경의 상황 속에서 지원하며 버팀목이 되어 주었는지에 대한 이 책 끝에 놓인 마지막 노트는 저자의 주장이 그저 논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실제 경험이며 진정성 있는 고백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준다. 어떻게 우리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경제적인, 국가적인, 환경적인 위기의 시대에 보다 작고도 유연한 형태를 지닌 새로운 교회, 미션얼 공동체, 미션얼 라이프 스타일을 가나안성도들이 채용할 때 그럴 수 있을 것Alliance!. 그런 의미에서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다. CTK
(2014 / 11월호)
지성근 한국 IVF 부설 ‘일상사역연구소’ 소장이다.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의 「새로운 교회가 온다: 문화 속에 역동하는 21세기 선교적 교회를 위한 상상력」(IVP)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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