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옥바라지 여관 골목

moonbeam 2015. 7. 3. 10:09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서울 서대문형무소 인근 ‘옥바라지 여관 골목’에서 1일 행인과 오토바이가 좁은 길을 지나고 있다. 구성찬 기자
서울 지하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독립문역사거리 방향으로 10m쯤 가면 골목이 하나 나타난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길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귓가를 때리던 도심의 소음이 사라졌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골목은 방치 상태였다. 근대식 한옥 건물의 외벽은 시멘트가 벗겨져 흉물스러웠고 전신주 위로 난잡하게 꼬인 전선이 하늘을 가렸다. 골목에 들어선 가게의 절반 이상은 셔터를 내린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골목을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라 부른다. 골목 맞은편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가 1987년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은 수감자의 옥바라지를 위해 올라온 이들의 임시 거처였다. 서대문형무소가 자리를 옮기면서 골목을 가득 채웠던 사람 냄새도 차츰 사라졌다. 급기야 2004년 재개발지구로 묶이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골목 어귀에서 4대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장모(50)씨를 만났다. 1945년 할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지.” 그의 시선이 골목길을 훑고 지나갔다. 한때는 이 좁은 골목에 식당만 20개 가까이 됐다고 했다. 장씨는 “골목의 역사도 골목의 쇠퇴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골목이 흥해야 역사도 지켜지는 것”이라며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는데 어떻게 골목의 역사성을 보존할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골목이 간직한 역사는 제법 길다. 일제 강점기 감옥에 갇힌 독립투사를 옥바라지하던 가족은 물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붙잡힌 민주화 인사들의 가족도 이곳을 거쳐 갔다. 종로구는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이곳을 근현대사의 중요한 유산으로 보고 2011년 11월 골목길 해설사의 해설 코스로 지정하기도 했다.

옥바라지 골목의 주민들은 재개발을 반기지 않는다. 그대로 보존해 달라고 한다. 이들은 1일 종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골목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독립투사와 민주화 인사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던 곳으로 근현대사의 중요 유산”이라며 “억울하게 수감된 이들을 찾아와 돌보던 사람들의 삶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바라지 골목에서 ‘구본장 여관’을 운영하는 이길자(61·여)씨는 “관광객들이 서대문독립공원만 찾을 게 아니라 서대문형무소와 역사를 함께한 옥바라지 골목도 함께 찾을 수 있게 골목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재개발이 아닌 도시 정비로 골목을 지키게 해 달라”고 말했다.황인호 신훈 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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