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산으로 간 4대강

moonbeam 2015. 11. 11. 21:09

[한겨레] [지역현장] 전국 케이블카 열풍


2015년 8월28일, 강원도와 영양군은 ‘야호’ 환호성을 외쳤지만, 환경단체들은 설악산에 사망선고가 내렸다며 비통해했다. 이날은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한 날이다. 내장산 케이블카 이후 35년 만에 국립공원 안 케이블카 설치가 허용됐다.

양양군은 2002년부터 대청봉과 양양 오색관광지를 잇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했지만 엄격한 기준 때문에 정부에 신청서조차 내밀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국립공원 규제개혁을 추진하자 2012년 6월과 2013년 9월 두 차례 설악산 케이블카 도전에 나섰지만 환경부가 환경훼손 등의 이유로 거부해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평창올림픽에 맞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는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양양군은 이 말에 따라 지난 4월 ‘설악산 케이블카 4수 도전’ 신청서를 냈고, 환경부는 4개월 만에 승인했다.

설악·미륵·남산 3곳 빼곤
수익 4억원 밑돌거나 현상유지
관광객 100명 중 탑승은 2명

지자체들, 경제성 분석 허술
한술 더 떠 국비지원 요구까지
케이블카 난립땐 적자 우려


■ ‘산으로 간 4대강’, 너도나도 케이블카

설악산이 뚫리자 지리산과 속리산, 소백산, 신불산, 유달산, 마이산 등 전국 30여곳에서 케이블카 설치 ‘광풍’이 일고 있다. 지금 충남·제주·세종 정도만 케이블카가 없거나 추진조차 하지 않아 오히려 이채롭다.

지리산이 가장 뜨겁다. 2012년 환경부가 부적절 결론을 내렸지만, 경남 산청군·함양군,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등 3개 광역단체, 4개 시·군이 지리산 케이블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내심 설악산 같은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영호남 시민사회단체 50곳이 최근 지리산 노고단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공동행동’을 꾸려 저지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국 케이블카 현황


또 다른 국립공원인 충북 속리산도 들썩이고 있다. 충북도와 보은군은 속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환경영향평가와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조사 용역 등을 위한 예산(4억원)까지 세웠다. 울산시와 울주군도 지난해 9월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반려한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재추진하고 있으며, 전북 진안군은 1997년 추진하다 아이엠에프(IMF)가 터지면서 접었던 마이산 케이블카 카드를 다시 꺼냈다. 박형재 충북도 관광개발팀 주무관은 “관광객 접근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케이블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산뿐 아니라 바다도 케이블카 설치 붐이 일고 있다. 전남 여수에선 지난해 12월 오동도 입구 자산공원~돌산도 돌산공원 1.5㎞ 구간을 잇는 국내 첫 해상 케이블카가 개통됐다. 시민단체와 지방의회가 교통 불편 때문에 반대했지만 여수 케이블카는 지금까지 탑승객 170여만명, 매출액 220억원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여수시 관광진흥과 김성욱씨는 “개통 초기여서 평일에 5000명, 휴일에 1만명이 탄다. 관광객이 늘어 식당·택시 등도 덩달아 웃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수시민 이태민씨는 “주변에 교통분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인파가 몰리는 날에는 주민들이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여수 해상 케이블카에 자극을 받은 목포도 유달산~고하도 2.9㎞ 구간에 해상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뛰어들었다. 목포시의회 여인두·위수전 의원이 “비용편익비율(B/C)을 1.48로 분석하고, 2017년 관광객을 1300만명으로 예측하는 등 경제성을 부풀렸다”고 비판하는 등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지역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해남군도 덩달아 우수영~진도타워 1.048㎞ 구간에 해상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최지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자치단체들이 케이블카 사업을 앞다퉈 베끼고 있다. 경제성이 부풀려져 난립하게 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해 후세에 부담을 주게 된다. 산으로 올라간 4대강 사업이 되지 않나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케이블카는 대박? 쪽박?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자치단체 등은 경남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교과서로 여긴다. 2008년 4월 운행을 시작한 통영 케이블카는 연평균 128만명 정도가 이용한다. 7년 만에 누적 이용객 900만명을 넘겼고, 내년 상반기께 1000만명 돌파가 예상되는 등 ‘국민 케이블카’로 불린다.

통영시는 케이블카 운영을 위해 지방공기업인 통영관광개발공사를 설립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139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투자 사업비 173억원 가운데 상당액을 챙긴 셈이다.

관광용 케이블카 영업이익 현황
하지만 <한겨레>가 2014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친환경 케이블카 설치방안 연구용역’을 분석해보니 국내에서 운행하고 있는 12개 관광용 케이블카 가운데 연평균 영업이익 10억원을 넘긴 곳은 속초 설악산(46억8000만원), 통영 미륵산(38억8000만원), 서울 남산(15억4000만원) 등 3곳뿐이다. 울릉도(3억3900만원)와 대구 팔공산(3억3000만원), 부산 금정산(2억4000만원), 해남 두륜산(2억3000만원), 완주 대둔산(2억원) 등은 2억~3억원대였으며, 구미 금오산(7000만원), 밀양 얼음골(3000만원) 등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치단체들은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성공적인 케이블카로 불리는 서울 남산과 속초 설악산, 통영 미륵산의 연평균 관광객(2815만9000명) 가운데 실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탑승객 수는 3.6%인 100만8000명에 불과했으며, 다른 곳의 이용률은 2%를 밑돌았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국토정책국장은 “케이블카만 설치하면 관광객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실은 ‘쪽박’에 가깝다. 경제성이 낮아 일반 기업에선 하지 않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 케이블카도 국정화?

환경단체들은 케이블카가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제2의 알펜시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곳이 대부분 자치단체이고, 이들은 정부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국비를 타내는 것을 전제로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환경연대 등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152개 단체가 지난 8월26일 서울광장에서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의 ‘신규 추진 케이블카 현황’ 자료를 보면, 새롭게 추진되는 31곳의 케이블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곳이 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공방식이다. 민간이 추진하는 곳은 10곳뿐이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관광용 케이블카 12곳 가운데 공공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통영과 울릉 등 2곳뿐인 것에 견주면 지나치게 공공 비율이 높은 편이다. 자치단체들은 통영 케이블카 선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부는 통영 케이블카 설치 때 사업비 173억원 가운데 절반인 87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당장 강원도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비용의 50%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도의 1차분 예산 102억원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자 지역 국회의원 등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강원도는 통영 케이블카와 같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비 450억원 가운데 절반 정도를 국비로 지원받길 바라고 있다.

자치단체 등이 추진하는 공공형 케이블카 16곳의 예상 사업비는 6086억원이다. 통영 기준으로 보면 정부는 케이블카 사업을 위해 이 사업비의 절반인 3043억원을 부담해야 하고, 지방정부 또한 이 돈을 감당해야 한다.

황인철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은 “지금 민간 운영 케이블카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지자체 공공 케이블카는 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제대로 된 경제성 분석이나 검토 없이 추진돼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지역 주민들이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케이블카를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면 경제성이 있겠지만 국내 관광객 나눠먹기 식의 현행대로라면 경제성을 논할 가치도 없다. 오히려 케이블카를 철거하고 친환경적이고 질 높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속초/박수혁 기자, 전국종합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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