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며 살기(펌)

국정화의 문제점 --- 강명관교수

moonbeam 2015. 11. 10. 10:54

역사는 주어에 따라 달리 서술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같은 임진왜란이지만, 노비와 농민, 여성을 주어로 하는 역사 서술은, 사족 남성의 그것과 사뭇 다를 것이다. 그것은 민족을 주어로 하는 역사 서술과도 판연히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역사 서술은 사태의 복합성을, 나아가 인간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다양성이란 차원에서 이제까지의 한국사 교과서는 만족할 만한 것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사는 위대한 민족이 고난을 극복하고 스스로 근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서사를 내장하고 있다. 이 서사가 곧 교과서 서술의 메타히스토리가 된다. 요약하건대, 그것은 민족주의적 메타히스토리다.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서술지침서는 이 메타히스토리를 강제화한 명령서다. 이 명령서 위에서 다양한 역사(곧 다양한 검인정교과서)가 변주된다. 역사서술의 다양성이 근원적으로 메타히스토리의 다양성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검인정교과서의 다양성 역시 단일한 서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족을 주어로 하는 메타히스토리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라는 자명한 공리를 갖는다. 이 공리에 근거해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그 어떤 행위도 죄악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의 행위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것이기에 어떤 수사로도 합리화되거나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이 된다. 따라서 이 메타히스토리에 근거하는 개별 역사는 반민족행위의 죄악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밖에 없다.

모두들 지적하듯,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근현대사 서술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는 식민지시기와 독재의 시기를 경험했기에 근현대사는 친일과 그로부터 기원한 독재를 서술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의 후예, 혹은 그 권력에 기생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자들은, 민족이 주어가 된 역사 서술에서 친일의 죄악성이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친일 행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은폐하거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싶어 한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일제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교과서에 서술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을 제작하고 통합하는 기본적인 장치는 민족주의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민족을 구성하는 동질적이고 동등한 개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국인 야구선수의 막대한 연봉은 나와 무관한 것이지만, 나는 그와 나를 동일시하고 그의 활약에 일상의 고통을 잠시 잊는다. 스포츠민족주의가 심어준 환상 때문이다. 연예산업의 해외진출을 ‘한류’라고 칭하며 열광하는 것도 민족주의에 근거한다(연예산업 노동자의 문제는 결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동원되고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민족주의적 메타히스토리도 결코 폐기될 수 없다.

모순은 여기서 발생한다.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동원하면 할수록,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민족적 자의식을 가지면 가질수록, 역사 서술에서 반민족적 행위의 죄악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민족적 행위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은폐, 조작에 대해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지금 우파와 보수를 자칭하는 역사학자로부터 일반 시민, 학생들에게 이르기까지 국정화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그 명백한 증거다.

식민지근대화론도 실패할 것이다. 민족주의의 근대화론은 민족이란 주어가 자신을 목적어로 삼아 스스로를 근대화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란 주어가 한국민족을 근대화하는 것이다. 민족은 일제의 명령을 받들어 따르는 단순한 객체가 될 뿐이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명령의 객체가 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족주의 하에서 일제에 의한 근대화는 원천적으로 서술될 수 없는 것이다.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중용(中庸)>, 막현호은(莫見乎隱))! 어떤 교과서를 써도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 자에 실린 혈서 맹세 기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국정화를 외치는 자들의 궤변 역시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권력의 강제로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것은 겨우 보름일 뿐이다. 매미는 가을이 있는 줄 알지 못한다. 사족. 오직 다양한 주어의 풍부한 역사서술만이 역사를 구하고, 이 해괴한 소동의 근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