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 저물어간다. 책값 할인을 제한한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으로 올 한해 출판계는 어느 해보다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미있는 책들이 꾸준히 출간됐다. ‘헬조선’이란 말까지 유행하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각도로 돌아보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다.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특히 올해는 인문 분야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중앙일보가 교보문고와 함께 ‘2015 올해의 좋은 책 10’을 선정했다. 문학·역사·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놓치기 아까운 필독서를 골랐다. 가는 해를 정리하며 올해보다 나은 새해를 기획하는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시
희지의 세계
황인찬 지음, 민음사
148쪽, 9000원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접점
한걸음 물러서 담담하게 더듬다
2012년 『구관조 씻기기』로 최연소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황인찬(27)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제목은 『희지의 세계』인데 의도한 게 아니었다. 시인은 서두에서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고 밝힌다. 착각을 깨닫고도 시인은 제목을 고쳐쓰지 않았다. 착각의 흔적을 그대로 두었다.
시들은 제목을 닮아있다. 시인은 일상에서 피어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시에 옮긴다. 억지로 다듬으려하지 않고 일상을 관조하며 담담하게 읊조린다. 앞서 전작에서 보여준 포스트모던 시인의 면모를 이번 시집에서도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시집의 관전 포인트는 ‘종로일가’부터 ‘종로오가’까지 이어지는 ‘종로’ 연작이다. 시인은 종로 거리를 걷거나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사유를 쏟아낸다. 언뜻 종로와는 관계없이 보이는 연작시를 통해 시인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접점을 찾는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패러디의 활용이다. 그는 정지용의 ‘유리창’, 이상의 ‘가정’, 김수영의 ‘절망’ 등을 자신의 시에 끌어들였다. 대선배들의 유명 작품을 패러디하면서도 별다른 각주를 달지 않았다. 패기 넘치는 시인은 기존 작품을 적극 활용해 재기 발랄한 시 세계를 창조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소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RHK, 396쪽, 1만3000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내 인생 이렇게 저무나 싶을 때
나름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이렇다 할 개성이나 재주는 없어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사내. 평범한 장삼이사의 샘플 같았던 윌리엄 스토너의 평생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운명은 주인공이나 저자 자신의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골똘히 그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우선 작품 자체가 죽었다 살아나서다. 1965년에 출간됐으나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50년이 지난 21세기 들어 줄리언 반즈 등 당대의 작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보다 저자 존 윌리엄스 자신이 꼭 스토너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시도 썼고 평생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나 소설은 다섯 권을 썼을 뿐이다. 결코 왕성한 필력의 작가가 아니었다. 위키피디아의 그에 대한 소개는 썰렁할 정도로 짧다.
그런 점에서 자전적인데, 그래선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스토너의 일대기가 실감 난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영문과 교수가 된 스토너는 분에 넘치는 결혼, 딸과의 처참한 불화, 교수사회의 지독한 알력 다툼, 딸뻘 여성 강사와의 연애 등을 차례로 경험한다. 그런 통과의례를 겪으며 요동쳤던 스토너의 행장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겪어내야 하는 필수과제 ‘인생’ 앞에 숙연해진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412쪽, 1만5000원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 김훈 특유의 서릿발 같은 글발
이 시대의 스타일리스트, 김훈의 산문집이다. 지난 가을 출간된 이후 베스트셀러 집계 상위권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소설이든 산문이든 그의 책에서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역시 문장이다. 한데 흡인력 있는 문장은 거저 얻어지는 걸까. 단순히 반복적인 연마를 통한 표현방식의 세련이나 서술 기술이 향상된 결과인 걸까. 형식(문장)은 결국 내용의 결정체라고 할 때, 흔히 서릿발 같다고 얘기되는 김훈 특유의 문장은 스스로를 생각의 가파른 낭떠러지로 가혹하게 몰아붙여 건진 한 줌 전리품 같은 건 아닐까.
산문집은 『밥벌이의 지겨움』 등 기존 산문집 세 권에서 일부 가려 뽑고, 200자 원고지 400쪽 분량의 새 글을 묶은 것이다.
김훈표 문장의 대표격인 ‘바다의 기별’의 서두, 가령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표제 산문 ‘라면을 끓이며’ 같은 글을 집어넣어 일상성도 가미한 것인데, 보기 나름이겠지만 백미는 ‘세월호’ 같은 글이다. 세월호 후속 처리를 정치싸움으로 변질시킨 위정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정의와 도리를 추구할 때 글은 두루 원만해진다. 산문집에는 그런 글이 담겨 있다.
신준봉 기자
역사·문화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984쪽, 4만3000원
분쟁·테러·난민으로 얼룩진 중동
누가 언제 비극의 씨앗을 뿌렸나
중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다. 시리아 내전만 해도 20만이 넘는 희생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낳았다. 이웃 유럽의 문을 두들기며 방랑하는 난민의 비극은 인류 양심을 아프게 후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 기반을 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11월 동시다발 학살로 프랑스 파리를 뒤흔들었다. 중동 문제가 세계화하면서 전 세계가 강요된 고통분담에 시달린다.
문제의 근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국제학자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종교·정체성·역사가 다른 유대인이 중동에 유대 국가를 세우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쫓자 주변 아랍인이 분노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전체까지 혐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 저술가인 지은이는 다른 각도에서 사안을 들여다 본다. 중동을 지배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원인을 찾는다. 승전국 서구 열강이 무주공산 중동에 자신의 이익에 맞춰 국경선을 긋는 바람에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렇게 탄생한 사우디 아라비아·이라크·시리아·요르단 등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인 뉴스의 발신지라는 사실이 지은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역사·문화
로마의 일인자 1~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신봉아 외 옮김
교유서가, 각 권 336~556쪽, 각 권 1만4500~1만7500원
13년 동안 고증하고 20년간 썼다
로마 제국을 이룬 민초의 일상
문학과 역사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소설 『가시나무새』를 쓴 호주 작가 콜린 매컬로(1937~2015)가 되살려낸 로마의 풍경은 생생하게 살아숨쉰다. 세 권으로 출간된 『로마의 일인자』는 고증에만 13년, 집필에 20년이 걸렸다는 7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1부다. 2부 『풀잎관』(전3권)도 올해 출간됐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통치자, 엘리트 중심의 로마사를 보여준다면 매컬로의 시선은 보다 넓고, 낮은 곳에 머문다. 1부에서는 평민 출신의 가이우스 마리우스(BC157?~BC86)가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후 로마의 일인자로 등극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귀족들의 이합집산과 음모, 신분제의 굴레에 신음하는 사람들, 결혼식 풍경 등을 세밀히 묘사하면서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몇 명의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로마인의 사소한 일상’임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이야기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역사책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하다. 호주 시드니 의대에서 공부한 과학자 출신의 매컬로는 이 시리즈를 위해 고대어로 쓰인 책을 포함해 로마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책에 등장하는 행군 경로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편집증에 가까운 고증으로 당시 로마의 골목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되살렸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인문·사회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636쪽, 2만2000원
138억년 생존투쟁 승리자들
과연 인류는 더 행복해졌나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약 138억년 전의 빅뱅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훑어간다. 1만 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는 여러 종의 인간이 있었는데, 유독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게 된 까닭을 ‘인지혁명’ 때문이라고 푼다. 그 와중에 언어와 문자가 나타나고, 수렵과 채집만 하던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식량의 저장도 가능해졌다.
저자는 “그러나 인간은 더 불행해졌다”고 말한다. 다른 집단이 쳐들어오면 땅과 곡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가진 것을 잃을까봐, 있어야 할 것이 없을까봐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발전을 통해 자연의 리듬에서 더 멀어졌고, 멀어진 만큼 건강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500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을 통해 ‘자연법칙’을 ‘지적설계’로 대체할 지점에 인류가 서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또 묻는다. “인간은 더 행복해졌는가?”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를 훑어내는 저자의 내공이 두텁다. 그럼에도 저자는 답이 없는 곳에서 물음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한가?’라는 물음은 진화와 발전이란 바깥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향해 뚫려 있는 열쇠구멍이기 때문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과학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시공사, 412쪽, 2만2000원
로봇 공학자가 그린 코믹 웹툰
미국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저자는 자신을 코믹 웹툰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의 경력은 과학 분야와 가깝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한때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로봇 공학자로 일했다. 그는 지금 미국 사이언스 웹툰 ‘xkcd’를 그리고 있다. 웹툰의 소재는 독자들이 던지는 엉뚱한 질문이다. 가령 “바다에 구멍이 나서 물이 다 빠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하면 저자는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주 진지하게 대답해서 웃기다.
세상에 소울메이트가 한 명뿐이라면, 그 한 명이 지구상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동시대를 사는 또래라 가정하면 잠재적으로 짝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약 5억 명이란다.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낯선 사람과 눈만 마주치고 다녀도 확률은 1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저자는 소울메이트 찾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진짜 사랑을 찾은 척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아래 방향으로 발사되는 기관총을 이용해 제트 추진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다양한 총기의 반동력을 계산해 이를 설명한다. 그런데 서문의 경고문을 잊지 말자. “이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절대로 집에서 시도하지 마세요.”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만화
『도련님』의 시대 1~5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각 권 252~316쪽, 각 권 1만1000원
20세기 초 일본 근대화 격동기
시대와 불화로 고뇌한 청춘들
1900년대 초 일본 지식인이자 문인들의 삶의 풍경을 만화로 그려낸 역작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영문학을 전공한데다 일찌감치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에게 영국 체류는 “관의 명령이니까 갔을 뿐” 인생에서 “가장 불쾌했던 2년”이었다. 달리 말해 그는 서구를 싫어하면서도 배워야했고, 서구적 ‘자아’ 개념에 눈을 뜬 댓가로 내면의 불안이 일상화된 지식인이었다. 몸으로도 나타났다. 못하는 술을 조금만 마시면 심한 주사를 부렸고, 내내 심한 위장병과 신경증에 시달렸다. 이런 그가 자신을 비롯한 동시대 여러 인물을 모티브 삼아 써내려간 소설 ‘도련님’은 그 시대 지식인의 내면 풍경이자, 일종의 자기 치유책이었다.
만화는 소세키를 필두로 서구화·근대화와 불화를 겪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펼쳐낸다. 유학시절 만난 서구여성을 일본까지 불러놓고도 가문의 명예와 출세 때문에 그냥 돌려보낸 관료 겸 문인, 가족에게 생활비 한 푼 못보내면서도 가불받은 월급으로 유곽부터 찾던 시인, 좌파 사회운동을 벌이다 천황암살을 모의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무정부주의자 등. 약 100년전, 한반도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갈등과 고뇌가 집단적 초상화를 이룬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인문·사회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336쪽, 1만4900원
행복하려면 남을 의식하지 마라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 지켜
행복해지는 법을 설파한 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키워드는 ‘용기’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을 용기,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용기, 평범해질 용기 등을 내세운다.
책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트라우마(마음의 상처)에 대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고 못박는다. 인생은 과거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스스로가 선택한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 욕구’를 과감히 포기하고,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과제의 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상대의 과제일 뿐이니 상관 말라는 조언이다.
저자는 철학자(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고가 후미타케)다. 이들은 플라톤의 『대화편』 형식을 빌려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전문 지식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솜씨가 탁월하다.
지난해 11월 출간돼 베스트셀러 1위 자리 최장 기록을 매주 스스로 경신 중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전긍긍 고단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인문·사회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240쪽, 1만4000원
뭐든 설명하려 드는 잘난 남자들
여자들이 왜 모를 거라 생각할까
올 한해 소셜미디어(SNS)를 뜨겁게 달궜던 주제는 ‘여혐(여성 혐오) 대 안티(Anti) 여혐’이다. 젠더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책이다. ‘맨(Man)’과 ‘설명하다’라는 뜻의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단어를 한국에 알리기도 했다.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잘난 척 하며 설명하려 드는 행태를 이르는 말.
저자의 맨스플레인 경험담으로 가볍게 시작하지만, 깊이는 만만치 않다. 여성을 발언하고 경청될 권리가 있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맨스플레인의 심리 구조는 인류 역사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살해 등의 문제와도 뿌리에서 이어져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상의 대화든, 물리적 협박과 폭행이든 그 기저에 있는 의식은 결국 여성을 ‘침묵과 처벌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을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에 놓아두려 하는 이들과의 싸움”이며, 이는 다양한 차별로 유지되는 세계의 거대한 폭력구조에도 균열을 일으키는 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문체는 발랄하고 논지는 명쾌하다.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쇄 문제를 두고 시끄러운 연말, 해가 가기 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영희 기자
● 어떻게 선정했나 ‘2015 올해의 좋은 책 10’ 선정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과 교보문고에서 도서 추천 업무를 하는 북마스터 28명이 참여했다. 올해에는 전문가 추천 대신 일반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직전 6개월간 구매금액 60만원 이상) 2만5000명에게 e메일을 발송해 이 중 353명에게 751종의 책을 추천받았다. 이 책들을 토대로 북마스터들이 2014년 11월 이후 출간작 가운데 최종 후보도서 55권을 골라 중앙일보와 토론을 거쳐 10권을 선정했다. 시대의 주요 화두를 담아내고, 탄탄한 콘텐트를 갖췄으며, 편집·글쓰기에서 독자를 배려했는가에 초점을 맞줬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5 올해의 좋은 책 10’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지 … 『스토너』 숙제 같은 인생 속으로
빅뱅 순간부터 오늘까지 … 『사피엔스』 138억년 시간 속으로
중앙일보가 교보문고와 함께 ‘2015 올해의 좋은 책 10’을 선정했다. 문학·역사·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놓치기 아까운 필독서를 골랐다. 가는 해를 정리하며 올해보다 나은 새해를 기획하는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희지의 세계
황인찬 지음, 민음사
148쪽, 9000원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접점
한걸음 물러서 담담하게 더듬다
2012년 『구관조 씻기기』로 최연소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황인찬(27)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제목은 『희지의 세계』인데 의도한 게 아니었다. 시인은 서두에서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고 밝힌다. 착각을 깨닫고도 시인은 제목을 고쳐쓰지 않았다. 착각의 흔적을 그대로 두었다.
시들은 제목을 닮아있다. 시인은 일상에서 피어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시에 옮긴다. 억지로 다듬으려하지 않고 일상을 관조하며 담담하게 읊조린다. 앞서 전작에서 보여준 포스트모던 시인의 면모를 이번 시집에서도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시집의 관전 포인트는 ‘종로일가’부터 ‘종로오가’까지 이어지는 ‘종로’ 연작이다. 시인은 종로 거리를 걷거나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사유를 쏟아낸다. 언뜻 종로와는 관계없이 보이는 연작시를 통해 시인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접점을 찾는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패러디의 활용이다. 그는 정지용의 ‘유리창’, 이상의 ‘가정’, 김수영의 ‘절망’ 등을 자신의 시에 끌어들였다. 대선배들의 유명 작품을 패러디하면서도 별다른 각주를 달지 않았다. 패기 넘치는 시인은 기존 작품을 적극 활용해 재기 발랄한 시 세계를 창조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RHK, 396쪽, 1만3000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내 인생 이렇게 저무나 싶을 때
나름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이렇다 할 개성이나 재주는 없어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사내. 평범한 장삼이사의 샘플 같았던 윌리엄 스토너의 평생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운명은 주인공이나 저자 자신의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골똘히 그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우선 작품 자체가 죽었다 살아나서다. 1965년에 출간됐으나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50년이 지난 21세기 들어 줄리언 반즈 등 당대의 작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보다 저자 존 윌리엄스 자신이 꼭 스토너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시도 썼고 평생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나 소설은 다섯 권을 썼을 뿐이다. 결코 왕성한 필력의 작가가 아니었다. 위키피디아의 그에 대한 소개는 썰렁할 정도로 짧다.
그런 점에서 자전적인데, 그래선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스토너의 일대기가 실감 난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영문과 교수가 된 스토너는 분에 넘치는 결혼, 딸과의 처참한 불화, 교수사회의 지독한 알력 다툼, 딸뻘 여성 강사와의 연애 등을 차례로 경험한다. 그런 통과의례를 겪으며 요동쳤던 스토너의 행장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겪어내야 하는 필수과제 ‘인생’ 앞에 숙연해진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412쪽, 1만5000원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 김훈 특유의 서릿발 같은 글발
이 시대의 스타일리스트, 김훈의 산문집이다. 지난 가을 출간된 이후 베스트셀러 집계 상위권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소설이든 산문이든 그의 책에서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역시 문장이다. 한데 흡인력 있는 문장은 거저 얻어지는 걸까. 단순히 반복적인 연마를 통한 표현방식의 세련이나 서술 기술이 향상된 결과인 걸까. 형식(문장)은 결국 내용의 결정체라고 할 때, 흔히 서릿발 같다고 얘기되는 김훈 특유의 문장은 스스로를 생각의 가파른 낭떠러지로 가혹하게 몰아붙여 건진 한 줌 전리품 같은 건 아닐까.
산문집은 『밥벌이의 지겨움』 등 기존 산문집 세 권에서 일부 가려 뽑고, 200자 원고지 400쪽 분량의 새 글을 묶은 것이다.
김훈표 문장의 대표격인 ‘바다의 기별’의 서두, 가령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표제 산문 ‘라면을 끓이며’ 같은 글을 집어넣어 일상성도 가미한 것인데, 보기 나름이겠지만 백미는 ‘세월호’ 같은 글이다. 세월호 후속 처리를 정치싸움으로 변질시킨 위정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정의와 도리를 추구할 때 글은 두루 원만해진다. 산문집에는 그런 글이 담겨 있다.
신준봉 기자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984쪽, 4만3000원
분쟁·테러·난민으로 얼룩진 중동
누가 언제 비극의 씨앗을 뿌렸나
중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다. 시리아 내전만 해도 20만이 넘는 희생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낳았다. 이웃 유럽의 문을 두들기며 방랑하는 난민의 비극은 인류 양심을 아프게 후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 기반을 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11월 동시다발 학살로 프랑스 파리를 뒤흔들었다. 중동 문제가 세계화하면서 전 세계가 강요된 고통분담에 시달린다.
문제의 근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국제학자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종교·정체성·역사가 다른 유대인이 중동에 유대 국가를 세우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쫓자 주변 아랍인이 분노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전체까지 혐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 저술가인 지은이는 다른 각도에서 사안을 들여다 본다. 중동을 지배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원인을 찾는다. 승전국 서구 열강이 무주공산 중동에 자신의 이익에 맞춰 국경선을 긋는 바람에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렇게 탄생한 사우디 아라비아·이라크·시리아·요르단 등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인 뉴스의 발신지라는 사실이 지은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로마의 일인자 1~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신봉아 외 옮김
교유서가, 각 권 336~556쪽, 각 권 1만4500~1만7500원
13년 동안 고증하고 20년간 썼다
로마 제국을 이룬 민초의 일상
문학과 역사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소설 『가시나무새』를 쓴 호주 작가 콜린 매컬로(1937~2015)가 되살려낸 로마의 풍경은 생생하게 살아숨쉰다. 세 권으로 출간된 『로마의 일인자』는 고증에만 13년, 집필에 20년이 걸렸다는 7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1부다. 2부 『풀잎관』(전3권)도 올해 출간됐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통치자, 엘리트 중심의 로마사를 보여준다면 매컬로의 시선은 보다 넓고, 낮은 곳에 머문다. 1부에서는 평민 출신의 가이우스 마리우스(BC157?~BC86)가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후 로마의 일인자로 등극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귀족들의 이합집산과 음모, 신분제의 굴레에 신음하는 사람들, 결혼식 풍경 등을 세밀히 묘사하면서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몇 명의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로마인의 사소한 일상’임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이야기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역사책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하다. 호주 시드니 의대에서 공부한 과학자 출신의 매컬로는 이 시리즈를 위해 고대어로 쓰인 책을 포함해 로마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책에 등장하는 행군 경로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편집증에 가까운 고증으로 당시 로마의 골목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되살렸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636쪽, 2만2000원
138억년 생존투쟁 승리자들
과연 인류는 더 행복해졌나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약 138억년 전의 빅뱅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훑어간다. 1만 년 전만 해도 지구상에는 여러 종의 인간이 있었는데, 유독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게 된 까닭을 ‘인지혁명’ 때문이라고 푼다. 그 와중에 언어와 문자가 나타나고, 수렵과 채집만 하던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식량의 저장도 가능해졌다.
저자는 “그러나 인간은 더 불행해졌다”고 말한다. 다른 집단이 쳐들어오면 땅과 곡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가진 것을 잃을까봐, 있어야 할 것이 없을까봐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발전을 통해 자연의 리듬에서 더 멀어졌고, 멀어진 만큼 건강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500년 전에 시작한 과학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을 통해 ‘자연법칙’을 ‘지적설계’로 대체할 지점에 인류가 서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또 묻는다. “인간은 더 행복해졌는가?”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를 훑어내는 저자의 내공이 두텁다. 그럼에도 저자는 답이 없는 곳에서 물음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한가?’라는 물음은 진화와 발전이란 바깥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향해 뚫려 있는 열쇠구멍이기 때문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시공사, 412쪽, 2만2000원
로봇 공학자가 그린 코믹 웹툰
미국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저자는 자신을 코믹 웹툰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그의 경력은 과학 분야와 가깝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한때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로봇 공학자로 일했다. 그는 지금 미국 사이언스 웹툰 ‘xkcd’를 그리고 있다. 웹툰의 소재는 독자들이 던지는 엉뚱한 질문이다. 가령 “바다에 구멍이 나서 물이 다 빠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하면 저자는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주 진지하게 대답해서 웃기다.
세상에 소울메이트가 한 명뿐이라면, 그 한 명이 지구상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동시대를 사는 또래라 가정하면 잠재적으로 짝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약 5억 명이란다.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해 낯선 사람과 눈만 마주치고 다녀도 확률은 1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저자는 소울메이트 찾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진짜 사랑을 찾은 척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아래 방향으로 발사되는 기관총을 이용해 제트 추진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다양한 총기의 반동력을 계산해 이를 설명한다. 그런데 서문의 경고문을 잊지 말자. “이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절대로 집에서 시도하지 마세요.”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도련님』의 시대 1~5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각 권 252~316쪽, 각 권 1만1000원
20세기 초 일본 근대화 격동기
시대와 불화로 고뇌한 청춘들
1900년대 초 일본 지식인이자 문인들의 삶의 풍경을 만화로 그려낸 역작이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영문학을 전공한데다 일찌감치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에게 영국 체류는 “관의 명령이니까 갔을 뿐” 인생에서 “가장 불쾌했던 2년”이었다. 달리 말해 그는 서구를 싫어하면서도 배워야했고, 서구적 ‘자아’ 개념에 눈을 뜬 댓가로 내면의 불안이 일상화된 지식인이었다. 몸으로도 나타났다. 못하는 술을 조금만 마시면 심한 주사를 부렸고, 내내 심한 위장병과 신경증에 시달렸다. 이런 그가 자신을 비롯한 동시대 여러 인물을 모티브 삼아 써내려간 소설 ‘도련님’은 그 시대 지식인의 내면 풍경이자, 일종의 자기 치유책이었다.
만화는 소세키를 필두로 서구화·근대화와 불화를 겪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펼쳐낸다. 유학시절 만난 서구여성을 일본까지 불러놓고도 가문의 명예와 출세 때문에 그냥 돌려보낸 관료 겸 문인, 가족에게 생활비 한 푼 못보내면서도 가불받은 월급으로 유곽부터 찾던 시인, 좌파 사회운동을 벌이다 천황암살을 모의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무정부주의자 등. 약 100년전, 한반도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갈등과 고뇌가 집단적 초상화를 이룬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336쪽, 1만4900원
행복하려면 남을 의식하지 마라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 지켜
행복해지는 법을 설파한 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키워드는 ‘용기’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을 용기,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용기, 평범해질 용기 등을 내세운다.
책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트라우마(마음의 상처)에 대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고 못박는다. 인생은 과거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스스로가 선택한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 욕구’를 과감히 포기하고,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과제의 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상대의 과제일 뿐이니 상관 말라는 조언이다.
저자는 철학자(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고가 후미타케)다. 이들은 플라톤의 『대화편』 형식을 빌려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전문 지식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솜씨가 탁월하다.
지난해 11월 출간돼 베스트셀러 1위 자리 최장 기록을 매주 스스로 경신 중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전긍긍 고단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240쪽, 1만4000원
뭐든 설명하려 드는 잘난 남자들
여자들이 왜 모를 거라 생각할까
올 한해 소셜미디어(SNS)를 뜨겁게 달궜던 주제는 ‘여혐(여성 혐오) 대 안티(Anti) 여혐’이다. 젠더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책이다. ‘맨(Man)’과 ‘설명하다’라는 뜻의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단어를 한국에 알리기도 했다.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잘난 척 하며 설명하려 드는 행태를 이르는 말.
저자의 맨스플레인 경험담으로 가볍게 시작하지만, 깊이는 만만치 않다. 여성을 발언하고 경청될 권리가 있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맨스플레인의 심리 구조는 인류 역사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살해 등의 문제와도 뿌리에서 이어져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상의 대화든, 물리적 협박과 폭행이든 그 기저에 있는 의식은 결국 여성을 ‘침묵과 처벌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을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에 놓아두려 하는 이들과의 싸움”이며, 이는 다양한 차별로 유지되는 세계의 거대한 폭력구조에도 균열을 일으키는 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문체는 발랄하고 논지는 명쾌하다.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쇄 문제를 두고 시끄러운 연말, 해가 가기 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영희 기자
● 어떻게 선정했나 ‘2015 올해의 좋은 책 10’ 선정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과 교보문고에서 도서 추천 업무를 하는 북마스터 28명이 참여했다. 올해에는 전문가 추천 대신 일반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직전 6개월간 구매금액 60만원 이상) 2만5000명에게 e메일을 발송해 이 중 353명에게 751종의 책을 추천받았다. 이 책들을 토대로 북마스터들이 2014년 11월 이후 출간작 가운데 최종 후보도서 55권을 골라 중앙일보와 토론을 거쳐 10권을 선정했다. 시대의 주요 화두를 담아내고, 탄탄한 콘텐트를 갖췄으며, 편집·글쓰기에서 독자를 배려했는가에 초점을 맞줬다.
[출처: 중앙일보]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5 올해의 좋은 책 10’
'잔머리 굴리기(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10가지 전망 (0) | 2016.01.02 |
---|---|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 (0) | 2015.12.21 |
욕설이 근친상간을 좋아하는 까닭 (0) | 2015.12.16 |
난방비 90% 줄이기 (0) | 2015.12.16 |
세인트 존스 대학교 선정 도서 100권 (0) | 2015.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