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런 글을 남겼다.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어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모든 유용한 것은 그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극치인 신자유시대를 맞아 이제는 문학이, 시가 필요없다고 여기며 돈을 최고 가치로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문학만이 최고 가치는 아니지만 문학의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문학이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이 시대. 한국작가가회의에서는 서경식 선생의 '시의 힘'을 '2015년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무용한 문학이 어떻게 유용한지를 보여주는 책이라서...
한국작가회의는 책 읽는 문화의 사회적 확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 위해 ‘작가들이 사랑한 2015년 올해의 책’을 선정, 발표합니다. 올해 작가들이 사랑한 책으로는, 서경식 선생의『시의 힘』(서경식 저/ 현암사/ 2015)이 선정되었습니다.
‘작가들이 사랑한 2015년 올해의 책’은 한국작가회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 구성된 ‘올해의 책 선정위원회’에서 한 해 동안 출간된 도서들 중 문학을 제외하고 고른 한 권의 책입니다.(당사자들인 만큼 ‘올해의 책’ 선정에서 문학 분야는 아예 빼기로 했습니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시의 힘』은 문학이 문화의 하부로 편입됐다는 사실에 작가들 스스로도 의문의 종지부를 찍을 즈음, 다시 ‘시(문학)의 힘’을 부르짖으며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한 시(문학)의 고유영역을 새삼 일깨운다는 점에서 발상이 새롭고 또 놀라운 책입니다. 요즈음 문학은 대중문화나 다른 여타 예술에 밀려나 거의 소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작가들의 자조어린 푸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문학이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작금의 상황을 거부합니다. ‘시의 힘’이 무엇인지,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신자유시대를 맞아 모든 게 ‘돈’으로 환치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돈’ 안 되는 문학이 왜 이 시대에 필요한지 역설하고 있습니다.
지은이 서경식 선생은 그 동안 미술에 관한 글과 사회성 깊은 글들을 주로 발표해 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60세에 이르러 시(詩)에 주목해 『시의 힘』이라는 책을 쓴 것인데, 그 잔잔한 필력이 참으로 뜨겁습니다.그는 3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펼쳐 놓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중략)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 서경식,『시의 힘』, 110~111면
이처럼 서경식에게 ‘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과 아우성을 대신 말해주는 글쟁이이며 아무도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시와 시인의 힘은 그 말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회에서는 마지막까지 후보도서들로 거론된 책들을 각 분야의 책으로 선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처음 올해의 책을 선정하느니 만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선정하기보다 한권의 책에 집중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시의 힘』외에 많은 작가들이 추천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담론』(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5)
-『거짓말 잔치』(안재성 지음/ 주목/ 2015)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을유문화사/ 2015)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이 사랑한 2015년 올해의 책’ 선정위원회 위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상률(위원장, 시인·소설가), 고영직(문학평론가), 김소연(시인), 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 맹문재(시인), 박경장(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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