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 물한리 오지마을 교회 김선주 목사
“독거 노인들 어려움 도와드리려는 취지”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하세요.”

시골 교회의 목사가 소개한 ‘목사 사용 설명서’가 누리꾼들에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시골에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달라는 당부를 담아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김선주 목사
김선주 목사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물한계곡교회의 김선주(50) 목사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목사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의 긴 글을 실었다. 김 목사는 글에서 “목회자는 (교인 등을) 섬기는 직분이라고 누누이 설교를 해도 관념에 빗장질린 교인들의 마음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급기야 이런 유치한 찌라시를 손에 들려주고야 말았다”면서 “안내문에 소개된 문구를 읽을 때마다 목사가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의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글을 실었다. △보일러나 냉장고 등 전기 제품이 고장 나거나 △텔레비전이 안 나오거나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 되면 전화하고,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을 때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도 전화하도록 안내했다. 또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바로 전화하고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도 전화하라고 당부하는가 하면,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도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심지어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이 안 맞으면 돕겠다는 내용까지 빼곡히 담았다.

누리꾼들은 김 목사의 페이스북을 찾아 “지역 공동체와 함께 숨 쉬는 목사님의 사역을 응원합니다”, “깨알 같은 목회의 즐거움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힘내세요”라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김 목사는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고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같이 살아주는 것이 목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사 사용 설명서’를 작성한 취지를 밝혔다. 그는 “교회가 오지 마을에 있어서 독거노인이 많다. 그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 가전제품이나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인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드릴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전화하시라고 안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안내문을 지난 13일 예배 뒤 20여명 교인들 손에 쥐어줬다. 그가 안내문에 적은 내용을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연신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항목인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라는 대목에선 폭소가 터졌다고 했다. 김 목사는 “시골에서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 그나마 화투 놀이인데, 교인들이 화투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즐기면서도 내면에서 거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화투는 목사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고, 예수님의 복음이 교인들의 작은 기쁨까지 빼앗는 옹졸한 규범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김선주 물한계곡교회 목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