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유감
큰어머님이 돌아 가셔서 오랜만에 양동마을을 찾았다.
근처에 아는 사람이나 알까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마을인데, 갑자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바람에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해서 많이 어수선해진 느낌이다.
워낙에 완고하고 자존심도 센 윗세대 어른들이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조차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을 거다. 고집 세고, 위아래 항렬 무지하게 따지고, 다른 성씨들 보면 그집 족보 줄줄 외대고, 남에게 굽히기 싫어하고, 예의범절 중요시 하고, 뭐 좌우지간 굉장히 고루한 어른들이었지...좌우지간 좀 별난 동네의 그런 양반들도 이젠 거의 다 사라지셨고...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인데...사실 변화는 좋은 것이지만 나 자신도 동네가 시끄러워져 기분이 썩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나는 낳자마자 얼마 안 되어서 서울로 올라가 줄곧 서울에서 생활을 했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방학이면 여기에 와서 지낸 기억이 또렷하다. 커서는 가뭄에 콩나듯 집안에 일 있으면 오곤 했는데...오랜만에 오니 보통 하는 말로 감회가 새롭다.
생가에 내가 태어난 방을 앞에 두고는 더욱 마음 한구석이 뜨뜻해진다...
사실 나야 태생이 여기지 외지사람이나 다름없다. 생각이나 행동도 이곳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집안의 어느 어른은 나를 보고 서울서 살더니 돌상놈 다 되었다고 하셨다던가.ㅎㅎㅎ
이젠 거의 안계시지만 어른들과도 이야기 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정치, 사회적인 관점도 너무 다르고 종교적 가치관도 달라서 가급적이면 이야기 섞기를 꺼려했다.ㅎㅎㅎ요즘 내 또래 종반들도 나이가 들고 꽉 막혀서 그 어른들과 마찬가지니...ㅜㅜ
하지만 뭐 괜찮다. 나야 워낙 자유스러운 성정이라 전혀 거리낄 것이 없으니까. 오히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더 정답고 푸근하다. 온김에 며칠 푹 쉬었다 갔으면 좋으련만...
바람이 좀 불지만 날씨는 참 좋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더욱 좋다. 어느 여름방학에 애들 데리고 왔었는데 너무 덥고 지쳐서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짜증을 낸 기억이 있는데 오늘 오니 마누라도 너무 좋아한다. 여행에는 계절, 날씨도 중요한 한몫을 하지...
이제 곧 시간도 널널해질 것이고 내년이나 가까운 때에 와서 여유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보통 시골사람들이 그러하듯 큰어머님도 이 촌구석에서 고생고생 하시며 젊은 시절 다 보내시고, 성가한 자식따라 타관에 나가 여행 다니시듯 지내시다가 이제 다시 돌아오셨다. 임종은 내가 못한다 할지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스럽다. 가끔 전화에 ‘도야, 니는 언제 오노, 함 온느라’하시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부디 편안하게 쉬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