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떨기(펌)

교회 벗어나니 자유롭고 행복해 --- 20년 넘게 지속한 신앙생활, "담임목사 비리 보니 허무해졌다"

moonbeam 2016. 7. 25. 11:45



"교회를 고민하는 젊은 청년들, 중고등부를 거쳐 대학부에 온 청년들이 교회에 발길을 끊는다. 교회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전부인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오지 않는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국교회 문제점을 짚는 포럼 '새 시대를 위한 한국교회의 회개와 소망'에서 이성호 목사(포항을사랑하는교회)가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최근 교회에 나가지 않는 청년들, 교회는 안 다니지만 예수는 믿는 '가나안' 청년 교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교회를 다니다 이제는 떠난 청년들 이야기가 궁금했다. 누군가에게는 '믿음 없어 실족한 사람', '하나님 대신 세상에 마음을 쏟아 교회 떠난 사람'으로 치부되는 그들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지훈 씨(32). 그는 지금까지 교회 3곳을 다녔다. 5년 전부터는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한 씨는 책과 관련된 방송 콘텐츠를 만든다. '북파인더'에서는 동영상으로 신간을 소개하고,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에서는 책을 추천한다. 그에겐 무슨 사연이 있을까. 홍대 모처에서 한 씨를 만나 20년 넘게 한 신앙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 한지훈 씨는 20년 넘게 신앙생활했다. 청소년부, 청년부 임원도 맡았다. 그런 그가 5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청소년부 회장 도맡아 하던 학생

한 씨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부모님이 다니던 건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목사 아들인 동네 형이 자신을 교회로 데려갔다. 동네 교회에서 자랐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다. 부모님은 신앙이 없었지만 교회에서 나쁜 걸 가르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꿈이 목사였다. 학교에서 되고 싶은 걸 그리라는 숙제에 목사가 된 자신을 그렸다. 그림을 자기 방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따라 교회를 옮겼다. 교회는 놀이터와 같았다. 그는 학창 시절 추억으로, 청소년부 행사에서 종종 사회 본 일, 친구들과 랩으로 성가를 만들어 선보인 것, 성탄절에 동네를 돌며 새벽송 하던 일을 회상했다. 어머니는 새벽송 때 몇 가지 주전부리를 그의 가방에 넣어 주기도 했다.

즐겁게 생활했지만, 점차 불신자였던 부모님과 갈등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어머니는 몇 구역이시니?"라고 묻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부모님과 함께 예배 오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권사들이 모여 있는 주방 근처는 잘 가지 않으려 했다.

주변에서는 "지훈이가 더 기도하면서 부모님 전도해야지"라고 말했다. 기도는 열심히 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사단이 약한 부분을 공격한다고 설교했다. 부모님께 같이 교회 가면 안 되냐고 몇 차례 말했지만, 주 6일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는 부모님이 교회에 가기는 어려웠다.

대학에 들어갔다. 1학년 때는 술 먹고 선배들이랑 어울려 다니느라 교회 간 날짜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다 군 입대를 앞두고 회심의 순간을 맞았다. 입대 전 드린 예배에서 들은 말씀이 그를 새롭게 했다. 군대에 가면 성경 1독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옆에서 다른 병사가 토익 공부할 때 성경을 읽었다. 인생의 큰 시련으로 생각되는 일이 군대에서 일어났을 때도 성경을 읽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 그는 교회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고 다 참여했다. 새벽 예배에도 참석했고, 주일에는 하루에 3번씩 예배를 드렸다. 성수주일하겠다고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사진 제공 한지훈)

교회밖에 모르던 교회 오빠

제대하고 믿음 좋은 형제, 교회 오빠로 거듭났다. 금주를 시작으로 새벽 예배를 빼먹지 않고 참석했다. 파트 전도사보다 더 많이 교회에 갔다. 지금 하라면 고개를 가로저을 만한 일들에 빠지지 않고 다 참여했다.

주일에는 청소년부 교사는 물론 주일예배도 아침 2번, 오후 1번 총 3번을 드렸다. 매 예배마다 노트에 빽빽하게 설교 내용을 적었다. 회심 후 주일 성수를 한다고 학교 행사나 MT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해가 바뀔 때면 기다렸다가 목사에게 축복 안수기도를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모습을 기억하던 친구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을 세상과 철저히 분리된 '열심당원'으로 기억했다. 지금이라면 그다지 고민하지 않을 일도 그때는 고민이 됐다. 과외를 하며 30만 원을 벌었다. 생활비로 29만 원이 필요했다. 십일조를 내려면 2만 원이 부족했다. 그는 2만 원을 낼 거냐 말 거냐로 목사와 상담했다. 결국 십일조를 내고 하루 3,000원으로 생활했다. 버스 탈 거 걸어 다니고 먹을 거 줄이며 지냈다.

이쯤 부모님과 갈등도 최고조로 치달았다.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들어오니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가족 회의에서 교회 다니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 번 가보자고 말했지만 새벽송 갈 때 주전부리 챙겨 주던 어머니는 아들 태도에 거부감이 있었는지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했다.

  
▲ 군대에서 회심했다. 성경 1독을 했다. 교회를 떠나기 전까지는 예배 때마다 노트에 설교 말씀을 빼곡히 적었다. 아직도 그 노트들은 집 한구석에 쌓여 있다.

목사의 비리, 그게 문제였다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 돈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주 헌금이 1,500만 원 정도 들어오는 교회였다. 청년들에게는 쉬쉬했지만 장년층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교회에 오래 출석하던 집사가 목사 비리를 지적했다. 이를 동의한 장로가 옆에서 집사를 도왔다. 언젠가부터 그 장로는 장로석에 앉지 않고 대표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한 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제대로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월례 회의 때 이 문제가 안건으로 상정됐고 청년부 부장을 맡은 집사는 "이제 너도 알아야 한다"며 그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했다. 청년부 임원을 맡고 있을 때였다. 회의 자리에 청년은 그 혼자였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등 형식적인 예배가 진행됐다. 그러곤 안건 이야기가 나오자 담임목사가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쥐를 몰듯, 집사에게 "증거가 있냐"며 몰아붙였다. 준비해 온 서면을 읽고 있는 집사를 향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주변에서 고성이 쏟아졌다. "집사를 내쫓아라", "목사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서 있는 집사에게 목사의 두 아들이 달려들었다.

20년 넘게 신앙생활했지만 교회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일단 두 아들을 말리고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데려온 집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믿고 따르던 목사의 이면을 보니 충격이 컸다. 허무해졌다.

3만 원을 십일조로 내느냐 마느냐 고민하며 3,000원으로 생활했는데, 이게 모두 목사 배 불려 준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 나온 목사, 멋진 차와 큰 집을 보유했던 목사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됐다. 목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강단에 섰다.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담임목사가 집도하지 않는 예배만 참석했다. 그가 교회에서 나올 즈음 청년부 예배에 5~6명만 남았다. 점차 교회와 멀어져 갔다.

청소년부 교사 임기가 끝나자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말씀은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대형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도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 편했다. 다른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사람이냐고 접근하는 게 싫어 이어폰을 꽂고 들어갔다. 늘 끝나기 5분 전 미리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가진 않았다. 2달 뒤 그는 교회를 아예 떠났다.

  
▲ 목사의 비리를 보았다. 마음이 허무해졌다. 더 이상 그 목사가 집도하는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후 대형 교회에서 예배드렸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교회를 떠나니 관계가 좋아졌다

교회 나가지 않은 지 5년째. 지금은 어떤지 궁금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가족과의 관계를 가장 먼저 꺼냈다. 주일에도 집에 있자 아버지는 "교회 안 가느냐"고 물었다. 교회에 가지 않자 가족과 함께 밥 먹을 시간이 생겼다.

가족과의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집에 있으니 가족과 함께 이야기할 시간도 생겼다. 집에서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 갈등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교회 가지 않겠다는 어머니와 더 이상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내면의 자유를 느꼈다. 교회 테두리 안에서 생활할 때는 좋은 교회 오빠로 살아야 했다. 힘들거나 어려운 점이 있어도 잘 드러낼 수 없었다. 교회를 떠나며 진짜 '한지훈'을 찾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사람을 만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지인들은 교회 오빠에서 자유인으로 탈바꿈한 그에게 "너무 달라져서 적응이 잘 안된다"고 말했다. 한 씨도 과거의 자신을 보면 "내가 이랬었나" 싶을 정도라고.

단순히 금지된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교회가 늘 주장하는 이야기, 테두리를 벗어나니 편안해졌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쉴 수 있고 버거우면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니 주일이 진정한 안식이 되었다.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니 만족이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5년 전 사건이 없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머리를 만지며 짧게 말했다. 눈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조금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아마 지금까지 다니고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