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최윤희 해군 참모총장 부인 김아무개씨는 영화 <연평해전> 제작과 관련해 기업을 상대로 직접 모금에 나서 입길에 올랐다. 특히 그해 3월 영화의 배급과 투자를 거절했던 씨제이이앤엠(CJ E&M)이 몇달 뒤 대표가 직접 나서서 투자를 재협의하자고 매달렸지만 거절당했다. 그해 12월 씨제이그룹 문화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는 이미경 부회장은 당시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 사진은 <연평해전>의 한 장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문체부의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경질을 지시한 2013년 8월. 문체부 인사 파동과 판박이로 닮은 “나쁜 군인” 사건이 국군 기무사령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장경욱(육사 36기) 당시 기무사령관은 그해 4월부터 “특정 군맥이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그 전횡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수차례 제출한 바 있었다. 보고서에도 적시되어 있지만 장 사령관이 지목한 특정 군맥은 ‘경기고 출신’과 ‘독일 육사 출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두 달 후에 막상 제거된 당사자는 문제를 제기한 장 사령관 본인이었다.
인사 발표를 앞둔 10월 하순. 장 사령관에게 국방부 인사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사령관을 교체하기로 했으니 사령관께서는 즉시 이임식을 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짐을 싸서 나가든지 본인 판단대로 하라”는 해직 통보였다. “이유를 알려 달라, 소명하겠다”는 장 사령관의 요구를 묵살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즉시 후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이지(EG)그룹 회장의 동기생인 이재수(육사 37기) 육군 인사사령관을 발탁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김관진 장관은 며칠 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장 전 사령관의 능력이나 자질이 기무사를 개혁하고 발전시킬 만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교체가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주 나쁜 군인’들에 대한 숙정 그러나 장 사령관 개인의 자질 문제로 이유를 대는 김 장관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단순히 사령관 교체에 그치지 않고 기무사의 참모장, 처장, 국방부 기무부대장(100기무부대장) 등 기무사의 장성급 핵심 직위자들이 “나쁜 군인”들로 몰려 줄줄이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물러난 장 사령관은 사석에서 동기생에게 중요한 언급을 했다. 자신이 독일 육사 출신인 김관진 장관을 지목해서 인사 전횡을 경고한 사실은 있지만 정작 위험한 인물은 자신의 후임으로 부임한 이재수 사령관이었다는 이야기다. 박지만과 육사 동기라는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군 내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다닐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당시 37기들은 이재수 사령관 외에도 특전사령관에 전인범, 합참작전본부장 신원식, 정보본부장에 조보근, 1군단장 엄기학 등 8명이 동시에 중장으로 요직에 진출했다.
이듬해에 장 사령관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7기에 대해 “(군 외부의) 바깥에 줄을 대는 행태”라며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필자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장 사령관의 진의를 탐문했지만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기생은 “후임 이재수 사령관은 동기생들과 함께 김관진 장관 후임으로 당시 정승조 합참의장을 장관으로 옹립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부적절한 행태를 하고 있음을 장 사령관이 의식하고 있었다”고만 전한다. 이 당시만 해도 군은 37기 천하가 열렸다는 데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시기였다.
이임식도 못하고 6개월 만에 쫓겨난 기무사령관 외에도 그해 10월 군 인사는 파격 그 자체였다. 합참의장으로 발탁된 최윤희(해사 31기) 해군 참모총장은 해군 내에서도 함대사령관, 작전사령관 등 주요 지휘관을 역임한 바 없다. 해군 작전에 대해서도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그가 육·해·공 합동작전을 책임지는 최고위직으로 진출하자 육군의 엘리트 장성들은 “경악할 사태”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윤희 의장은 합참의장 재직 당시부터 방산비리에 연루되어 내사를 받다가 퇴임 후 기소되기에 이른다. 이 당시 군 검찰은 영국의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 도입에 유리하도록 시험평가서가 조작되었다는 혐의를 잡고 그 몸통으로 최 의장과 그 부인 김아무개씨를 지목했다. 수사 당시부터 군 검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과 최 의장 부인인 김씨 관계에 대해 몇 건의 제보가 접수되었지만 군 검찰은 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 과연 최순실씨가 김씨를 통해 무기도입에 관여하였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최윤희씨가 합참의장으로 진출하는 데 당시 최순실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인지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문제는 검찰이 김씨와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 무렵 김씨의 행보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해군 참모총장의 부인이던 시절인 2013년 8월. 해군의 전 장성 부인들을 해군 작전 시설인 저도의 휴양 시설로 불러 모아 ‘낯 뜨거운’ 파티를 하면서 현역 군인들로부터 시중을 들게 한 일이든지, 갑자기 제2연평해전을 기리는 영화 <연평해전> 제작에 김씨가 뛰어들어 군 간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한 일은 고위 공직자 부인의 처신으로 부적절했다. 김씨는 영화 제작 과정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참의장에 지휘 경험 없는 최윤희 발탁
의장 부인, 영화 ‘연평해전’ 모금 나서
청와대, 영화 제작·투자 거부한 씨제이에
이미경 부회장 사퇴 종용하기도
최순실 연루 제보 군검찰 조사 안해2014년말 정윤회 문건 파동난 뒤
잘나가던 박지만 동기들 전보돼
사소한 정치 외풍에 군 인사 출렁여
사드·F-35 도입 과정 석연치 않아
대통령 독주에 군 따라가는 형국 지난 7월 경남 창원시 해군62해상작전헬기전대에서 해군의 새 해상작전헬기인 와일드캣(AW-159)이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이 기종 선정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연합뉴스
의장 부인 치맛바람 뒤엔 누가 있었을까 해군 참모총장 부인이 주도하는 영화는 제작비가 모자라 곤란을 겪던 2013년 6월부터 뜻하지 않은 반전을 맞는다.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은 이미 3월에 영화 제작사인 ㈜로제타시네마의 대출 신청도 거절한 바 있다. 그랬던 기업은행 쪽이 6월에 제작사로 연락해 투자를 제의하고 이듬해 7월에 투자 계약을 체결한다. 총 제작비 80억원 중 31억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투자 방식도 기업은행 쪽의 직접 투자가 12억원이고 나머지는 계열사를 통한 간접 투자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정권으로부터 좌파 기업으로 낙인찍힌 씨제이이앤엠(CJ E&M)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인다. 3월에는 제작사로부터 배급과 투자를 제의받고 거절한 바 있으나, 6월이 되자 씨제이 강석희 대표가 직접 나서서 배급 제작사와 투자 협약식을 체결한 데 이어 7월에는 투자를 결정하고 이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아이비케이기업은행이 투자 주관사로 결정되어 씨제이 투자가 필요없게 되자 씨제이의 강석희 대표가 직접 나서서 영화의 배급과 투자를 재협의하자고 제작사에 연락을 했다. 씨제이가 지신들의 투자를 받아달라고 영화 제작사에 사정하는 모습으로 역전된 것이다. 씨제이의 돌연한 태도 변경의 배후에 어떤 강력한 힘이 작용했으리라고 추정되는 대목이다.
씨제이의 투자 제의를 이미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제작사 쪽은 거절한다. 그러자 역시 3월에 배급 계약을 거절한 바 있는 배급사인 뉴(NEW)가 11월에 제작사와 배급계약 체결을 제안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영국제 와일드캣 헬기 도입을 위해 김씨에게 로비를 한 당사자는 셀렉트론코리아㈜의 함아무개 대표로 그가 <연평해전> 영화 제작에 1500만원을 투자금으로 내놓았다. 함씨는 김씨와 친분을 이용해 영국제 헬기를 해군이 도입하도록 최윤희 총장 내외를 상대로 로비를 한 당사자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 김씨는 해군본부 담당 부장인 소장에게 전화를 해 “(헬기 도입은) 미국제는 안 돼, 영국제로 가는 게 총장의 뜻이야, 열심히 해”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도됐다. 영국제 헬기는 경쟁 기종인 미국제에 비해 덩치가 작아 어뢰 두 발을 다 장착하고 1시간 작전조차 할 수 없다. 적의 잠수함을 찾는 헬기 따로, 어뢰로 타격하는 헬기 따로 운영하기 때문에 해군 작전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영화 제작에 대기업을 움직이고 무기 로비스트가 뛰어들게 만드는 힘이 현직 참모총장 부인에게 있을 리는 없다. 여기서 진정한 힘의 원천이 바로 정권의 비선 실세가 아니냐는 의혹이 드러난다. 영국제 헬기 도입을 둘러싼 방산비리 의혹을 내사하던 군 검찰이 합참의장 부인 김씨와 최순실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모종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2013년 말에 청와대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이 씨제이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녹취록을 공개한 바 있다. <연평해전>에 투자를 서두르던 2013년 하반기에 이미 씨제이그룹은 정권의 표적이 돼 자구책에 매달리던 때였다. 그런 대기업이 왜 돌연 <연평해전> 영화 제작에 저자세로 나온 것인지, 그 의혹의 배경에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렇게 보면 2013년 말은 군에 박지만씨 육사 동기생들로 구축된 자생적 실세 그룹과 최순실씨와 관계가 의심되는 비선 실세 그룹이 양립하면서 군의 인사, 또는 무기도입이나 문화 사업에 모종의 이상 기류가 나타나던 시점이라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2014년 말이 되자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지면서 또 한번 세력 판도는 크게 출렁인다.
사드 효용성 검토 전에 도입 결정 그해 12월에 청와대는 비서실 민정수석실 내에 “반 브이아이피(VIP·대통령) 비밀조직이 존재한다”며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한다.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박 행정관이 정권 실세로 정윤회와 최순실을 지목하는 진술을 하게 되고, 그 자신은 조응천 비서관과 함께 박지만의 사람들로 낙인찍히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거꾸로 박지만의 동기생들을 “나쁜 군인”들로 찍히게 하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8명의 37기 중장 가운데 선두 그룹이던 이재수, 조보근, 전인범 등이 줄줄이 진급과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으면서 낙마하고 그 뒤에 있던 그룹들이 대장으로 진급할 기회를 움켜쥐었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3군 부사령관 좌천을 시작으로 37기 선두 그룹의 몰락으로 생긴 힘의 공백은 또다시 군 내 유력 집단의 치열한 진급 경쟁으로 이어졌다. 박지만 회장은 육사 동기생 중 수석 입교생이었던 원영주씨를 자신의 회사 사장으로 맡기고 동기생과 친분을 유지해왔으나 2015년 말을 끝으로 군과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소한 정치적 외풍에도 군 인사는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순실 세력은 군 인사에 굳이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영향력은 초래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주요 국방 문제에 대해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과 의견을 교환했다. 린다 김은 언론인이던 필자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에 비공식적으로 두 차례 만난 사실을 털어놓은 바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린다 김의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에 검증됐다고 할 수 없으나 만난 정황에 대해 워낙 구체적인 설명이라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 당시에는 미국의 록히드마틴사의 F-35 전투기 도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으면서 린다 김의 역할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사실이다. 린다 김 스스로도 자신이 “록히드마틴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필자에게 시인한 바 있는 만큼 전투기 도입은 아니라도 사드 요격미사일 배치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을 제공했으리라는 세간의 추측이 확산됐다. 린다 김과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포착된 정황은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둘은 청담동의 한 고급 노래방의 단골손님이다.
군의 인사와 사업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비정상이 포착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방·안보 정책 전반에도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을 외치던 대통령이 2015년 여름에 전방에서 북한에 의한 목함 지뢰 도발사건이 발생하자 국방부의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적으로 재개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통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했다. 올여름에는 한-미 국방부 간에 사드의 작전 효용성에 대한 검토가 종료되기도 전에 서둘러 사드의 배치를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협의도 불과 한 달 전까지는 국방부가 “신중하겠다”고 한 입장을 번복한 채 갑작스럽게 추진된 사안이다.
국가 안전보장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각 부처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절차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바로 그 공적 절차가 무력화된 상황이다. 모든 의사결정이 전격적으로 대통령에 의해 결정되고 부처는 그 뒤를 쫓아가기에도 바쁜 폭주와 독선으로 일관해왔다. 여기서 정권 비선 실세들의 역할은 이해되지 않는 이 정부 안보정책의 의문을 푸는 마지막 퍼즐이 될지도 모른다.
▶ 김종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제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