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순창 칠보식당

moonbeam 2019. 3. 12. 12:15

순창의 음식점들은 예약을 해야 하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손님을 받지 않는단다.

섬진강 가에서 매운탕을 먹으려고 전화를 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고 이미 시간이 지나서 입장 불가라는 주인의 단호함에 꼬리를 내렸다. 그래봐야 오후 두시 좀 지났는데, 참 인정도 없구나 싶다.

읍내를 어슬렁거린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때를 넘겨 도착을 하니 점심도 굶을 판...

읍내 작은 식당을 찾아 귀촌해서 안면이 있는 현지인이 먼저 들어가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겨우 입장. 휴...점심을 먹긴 먹는구나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ㅎㅎㅎ
52년 생 용띠라는(나중에 알았지만) 주인은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좀 기다리란다.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영혼이 없구나...맛도 없겠지 생각하며 그냥 나갈까 하다가 배는 고프고 딱히 뾰족한 수도 없어 별수 없이 눌러앉았다.

차림표를 보고 음식을 시키니 지금 되는 것만 시키란다. 손님이 갑질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갑질이다. 이곳의 풍습이 그렇다 하니 타지에서 온 놈이 순창 법을 따르지 않을 방도가 어디 있겠나. 그저 한 끼 때우자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미리 내오는 반찬은 비교적 정갈하다.


밑반찬에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음식이 나오자 허겁지겁 마구마구 넣고 겨우 정신을 차리니 주위가 새롭게 보인다.ㅎㅎㅎ
그런데 이 불친절한 쥔장이 뽕주(자기는 뽕주만 마신단다. 비싸긴 꽤 비싸다) 한 잔을 마시더니 구수하게 노래도 잘한다. 이렇게저렇게 수작을 해보니 전국노래자랑인가 주부가요대횐가 뭐 아무튼 그런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경력이 있단다. CD도 있다고 자랑을 한다. 여자로선 드물게 낮은 저음이 아주 좋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지 소리는 아직도 괜찮은 편. 고팠던 배에 밥이 들어가고 주흥이 오르니 꽉 막혔던 기분이 확 풀어진다.

일행 중 용띠 동갑이 둘이나 있고 그중 한명은 노래를 무지 좋아해서 서로 반죽이 잘 맞는다.ㅎㅎㅎ늦은 점심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음껏 웃었다. 재미있다. 한편으론 적지않은 나이의 주모?가 흥이 올라 부르는 노래가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후벼 파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어쨌든 처음은 꾸리꾸리 했지만 마지막은 참 좋은 점심이었다. 음식점에서 노래를 불러본 지가 수십 년은 되었지 아마...ㅎㅎㅎ
왁자지껄 떠들며 막걸리 한잔에 불콰해지니 말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뒷부분이 떠오른다.ㅎㅎㅎ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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