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어무이와 TV

moonbeam 2021. 3. 13. 21:08

어무이와 TV

어무이 방엔 오래 된 옛날 TV가 있다.

요즘 TV처럼 얇고 날렵하지 않고

등이 볼록하게 나와 무겁고 굼뜬 모양을 하고 있다.

허리가 구부러진 우리 오마니와 데칼코마니다.

어무이는 하루 종일 한 방송만 켜 둔다.

아주 오랜 옛날

우리집에 TV가 처음 놓여지던 날부터 지금까지

일편단심 TV는 늘 한 목소리다.

벽에 기대 잠깐 졸 때도

누워서 낮잠을 주무실 때도

TV는 혼자 중얼거리며 잔소리를 해댄다.

TV에 빙의되신 아흔여섯 어무이는

오늘도 ‘밥은 묵었나’ ‘일찍 들오그래이’

‘애비가 늦게 들오믄 내가 잠을 몬잔대이’

일흔을 바라보는 내게 입에 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TV와 어무이는 반 접어 펼친 데칼코마니다.

풍경뿐 아니라 잔소리와 행동도 빼다 박은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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