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안광수 개인전 / FACES (2022.11.30)

moonbeam 2023. 9. 18. 15:21

두상은 조소과 학생들이 대학 들어가자마자 1학년 1학기에 거치는 과정으로 양감과 질감 균형과 비례 등 가장 기본적인 기법을 익히고 깨우치는 과정이다.

그런데 대부분 한 학기에 그치고 만다. 아쉽다.

왜냐하면 두상은 인체조각에서 가장 위치를 점유하고 있고 잘 묘사된 두상만큼 인체조각에서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체와 분리한 두상은 로댕, 까미유글로델, 쟈코메티 등 많은 조각가들이 작업을 했다.

쟈코메티도 ‘나는 몇 달 간 같은 머리들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매일, 모든 사이즈로, 조금씩 모든 것을 제거해 나가며, 모든 것의 핵심이 담긴 단 하나의 머리에 도달할 때까지’라고 하며 한때 두상에 집착했다.

그러면서 균형과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부피를 줄이고 길이를 늘이면서 단순화하는 과정을 지나며 거친 질감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안광수는 쟈코메티의 방법과 거꾸로 작업을 하며 얼굴을 찾고 있는듯하다.

쟈코메티가 떼어내는 단순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안광수는 거꾸로 점토를 주물러 하나하나 덧붙여 양감을 주며 사실적인 미완성에서 점점 얼굴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자기의 얼굴, 자신의 작업들을 미완성으로 치부하며 완성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보면 지나친 것일까...

 

아직 완전하지 않은 30여 점의 얼굴들은 저마다 형상이 다르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고깔 쓴 마녀의 모습도 있고 테라코타의 질감을 주는 것, 채색을 해서 어두운 전체 배경에 영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도 나고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얼굴로도 느껴진다.

가운데 설치한 기둥에서 250여 개의 조각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하나씩 모여 다시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
즉 그 기둥은 생명의 근원
인 나무이며 그 잎들이 떨어져 생명의 씨앗이 되고 다시 모여 얼굴을 만드는 생성 조합 탄생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투박하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한 얼굴들은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서서히 우리가 알고 있고 그려보는 얼굴로 진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런데 나는 가운데 세운 기둥보다는 벽에 걸린 세 개의 부조에 집중했다.

두상과 전혀 상관이 없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부조물들은 거칠고 투박한 표면 가운데에 구멍 하나, 또는 손바닥 문양의 구멍 몇 개, 혹은 깊고 길쭉한 상처를 갖고 있다.

그 상처 속은 채색을 해서 어두운 바탕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 뚫린 구멍, 길게 난 생채기에서 흘러나온 나뭇잎같은 조각들이 모여 얼굴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느껴져 오히려 이 부조물이 생명 탄생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앞으로 다양한 소재와 더 새로운 기법으로 얼굴을 만들어 가며 조각가 안광수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기 바란다.

덧 : 40여 년 전 고등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조각가의 길에 입문을 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이제 어엿한 선후배 작가로, 동료 작가로 활동하는 상일형과 광수를 볼 때 참 흐뭇하다.

나도 그 인연의 한 끝에서 여지껏 함께 살아오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참 끈질긴 善緣이다.ㅎㅎㅎ

(2022.11.30)

#안광수개인전 #Faces #조각 #얼굴 #두상 #오상일 #스승과제자 #선후배 #동료작가 #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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