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성가대 지휘

moonbeam 2024. 3. 8. 17:07

70년대 중반...
학생성가대를 지휘하던 친한 성악과 형이 갑자기 군대에 끌려갔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교회나 나나 아무 생각도 못하고 얼떨결에 그 자리를 내가 맡게 되었다.
마침 주위에 작곡, 기악, 성악 등 여러 전공의 선후배 친구들이 많았다.
때론 차나 밥을 뺏어 먹으며, 또 사주기도 하며 귀찮을 정도로 열씨미 따라다니며 배웠다.
마치 음대 실기 시험 볼 듯이 콘코네나 코뤼붕겐 등 성악 실기책은 물론이고
음악 이론 책도 뺏어다 달달 외우고...음대에 따라 들어가 몰래 강의도 듣고ㅋㅋㅋ
아무튼 열심이었고 재미도 있었다.
몇 년 계속하던 중 겁 없이 정말 겁대가리 없이 Vivaldi의 Gloria 전곡을 연주했다.
힘든 것도 몰랐다. 중고등부 성가대가 전곡을 연주한 것은 아마 없지 않을까...ㅎㅎㅎ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한 것이 중고등부, 청년부로 수십 년 이어졌으니...
내 음악의 영원한 기초가 된 북아현...
교회를 옮겨 기자촌에서는 본성가대를 맡았다.
소수 인원을 데리고 땀 많이 흘렸다.
대원도 점점 많아지고 소리도 갖춰져서 너무 좋았고 나 또한 온 열정을 다 바쳤다.
그 영향인지 뭔지 전공자들도 많이 생겨 번듯하게 되고 내 뒤를 이은 음악의 인재들도 많이 나와서 뿌듯하다.
지금 생각해도 기자촌 음악의 뿌리는 내가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아는 장로님의 권유로 기자촌에서 1부를 하고 2부는 망원동으로 갔다.
1부 찬양 끝나고 바쁘게 이동. 2부 찬양, 오후 연습 끝내고 오면 파김치...
(그때는 토요 휴무도 없어서 일주일에 하루도 쉬는 날도 없었지...)
처음 갔을 때는 암담했다. 성가대라고 하기엔 너무 심했다.
대원도 열 명 남짓, 악보를 읽지 못함은 물론 소리조차 걸리는 중년 몇...
아아...그만 둘까 했지만 장로님 얼굴도 있고 맡은 일이니 묵묵히 해나갔다.
힘든 줄도 모르고 악보와 대원들과 씨름하며 보냈다.
2년 정도 부대끼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견딜 수 없었다.
(담임목사는 휴가도 있어 주일날 쉴 때도 있는데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ㅜㅜ)
도저히 내몸으로는 버티기 힘들어 기자촌에서 사임을 하고 망원동으로 옮겼다.
당시 기자촌 목사님 반대가 심했다. 장인어른이 원로장로, 큰 동서가 성가대장 장로였으니ㅎㅎㅎ 목사님은 음악선교사로 파송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놓아주셨다...
한 해에 부활절, 성탄절 칸타타와 성가의 밤도 1회...
그냥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 교회에서 제법 큰 연주회를 1년에 세 번을 했으니 어디서 그런 열정과 에너지가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
시립합창단원도 있고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갖춘 실력자들도 있어서 무리없이 잘 이끌고 재미있게 버텼다.
망원 한 곳에서만 20년을 보냈다. 음악적으로는 한참 모자라지만 어쨌든 내 음악의 완성은 망원에서 이뤘다.
이젠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직을 했다.
어느 교회나 말이 없는 곳은 없다.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그런 분란에서 벗어나 그저 오롯이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부서가 성가대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그래서 다른 여러 역할은 의식적으로 피하며 성가대만 고집했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나름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선 최선의 방법이었다.ㅎㅎㅎ
다 내려놓고는 바로 교회 순례를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토요일에 가서 다음날 예배드리고 올라오는 여행 예배? 예배 여행ㅎㅎㅎ
제자가 지휘하는 교회에서 첫 순례 예배를 시작했다.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좋았고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공간…ㅋㅋㅋ)
지금은 ‘작고 건강한 교회’를 생각하며 집근처 가까운 곳에 다닌다.
그러나 언제 또 교회 순례, 예배 순례를 시작할지는 모른다.
다시 시작하면 몇 년 전 함께 예배 드릴 때 박동현 목사님이 권유한 종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다른? 종교와 종파, 교단의 예배를 꼭 순례해야겠다.
 

 

'중얼중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차  (0) 2024.03.25
합 창  (0) 2024.03.12
내가 복음  (0) 2024.03.07
버러지 蠢動  (0) 2024.03.01
해외여행  (0) 202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