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한강 북안을 헤매다

moonbeam 2008. 11. 4. 21:33

7월 22일... 해가 뜨거웠다.
어제까지는 날이 흐려서 꿉꿉하기는 해도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뙤약볕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옹골진 마음으로 걸어서 가기로 했다.
8월에 도보 여행을 준비하려면 어차피 이런 날씨를 견뎌내야만 하니까...
여의나루에서 출발할 때엔 마음도 가벼웠다.
매번 출발 때마다 느끼는 가벼운 흥분이 나를 휘감았다.
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기분도 좋았다.
양화대교 남단까지 걸어가 양화대교에 올랐다.
그동안 걸은 코스는 전부가 강 남단을 걸어 구행주대교를 넘는 것이어서
오늘은 강북의 길을 처음 개척해보리라는 생각에서 
기대감에 차서 더운 줄도 모르고 힘차게 걸었다.
양화대교의 옛 이름은 제2한강교이다. 옛날 어릴 적에는 그렇게들 불렀다.
한강 다리로서는 두 번 째 세워진 다리라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합정동에 우리 친척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내 또래의 형, 아우가 있어서 자주 놀러 갔었다.
당시의 합정동은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이 시작될 때여서 뛰어놀 거리가 많았다.
동네 뒤로는 황토빛의 공동 묘지가 있어서 마구 파헤쳐져 있었고,
우리들이 뛰어놀라치면 무수한 널을 밟고 놀아야 했다.
그런 놀이에 싫증이 나고 지치면 우린 바로 강가로 내려갔다.
지금은 강가 쪽으로 접근하기가 쉽지않지만 
그 때는 언제 어디서나 한강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었다.
지금 이촌동 아파트 단지인 한강 백사장에서 국군의 날에 펼치는 에어쇼가
가장 흥미진진한 볼거리였으니까....  
흰팬티를 입은 채로, 혹은 아예 발가벗고 우리는 강물에 뛰어 들어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쌩쌩 달리는 차들 옆으로 걸어가는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차들과 같이 걷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구행주대교를 항상 애용했었는데....
도보로 혹은 자전거로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생길 수는 없겠지?
경제적으로, 아니면 기능상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정책적으로 그런 다리를 하나, 둘 쯤 만들어도 좋을텐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와는 전혀 맞지않는 쓸 데 없는 생각도 하며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먼지, 굉음에 눈과 코와 귀를 막다시피 하며 양화대교를 건넜다.
  

강북 한강 지구 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런 피로감과 불유쾌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계단 밑으로 보이는 코스모스의 축제....정말 아름다웠다.
한여름의 불타는 태양 아래 보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선선함을 마음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한강 남안의 당산 지구와 강서 지구에도 
벌써 활짝 핀 코스모스 밭이 있다.
언제 그 누가 이렇게도 많은 코스모스를 심어놓았던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손길에 고마움과 정을 느꼈다.
여름에는 어느 다리든 다리 밑이 가장 시원한 곳이다.
여기저기의 다리 밑에는 군데군데 모여 더위를 이기고 있었다.
망원 지구 공원을 지나니 수영장이 나온다.
여의도에서도 수영장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을 보고 즐겁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나쳤는데 
여기도 정신없이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이상한 점은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그 안의 사람들이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놀이에 푹 빠진 것일까?
울긋불긋한 수영복을 입고 편한 자세로, 혹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살아 움직이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물론 요즘 수영복의 심한 노출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런 게 바로 훔쳐보기의 기쁨이 아닐까?
  
망원 지구를 지나면 난지 캠프장으로 바로 이어진다.
월드컵 시기에 지어진 것인데 참 깔끔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강북 강변로 건너에는 난지산이라고 손가락질하던 하늘공원이 푸른 덩어리로 서있고..
상전벽해인가....
이런 것이 발전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즐길 수 있는 도로도 잘 되어 있어서 뙤약볕 아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놀고 있었다.
화장실도 아주 깨끗하고---사실 요즘의 공원 화장실은 무척 깨끗하다--이용객들의 수준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
한강 남쪽의 강안(江岸)은 올림픽 대로 밑의 강 쪽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친 위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여 물과는 단절이 되어있는데
북쪽 강안(江岸)은 난지캠프장부터는 자연 그대로다.
콘크리트로 막아 놓지않아서 쉽게 강물로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수풀을 헤쳐야 하는 곳도 있지만......
웬만한 곳은 낚시꾼들이 이미 길을 만들어 놓아서 편하게 강물을 만져볼 수 있다.
큰 비가 온 뒤라 누런 흙물이었지만 로맨틱한 생각으로 강물에 손을 담가도 보니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듯 했다.
처녀지를 한발 한발 디뎌가는 개척자의 들뜬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사실 오래 전 부터 강북안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이제야 실천에 옮기니 나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은 가양대교를 지나면서부터 좋지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가양대교를 지나면서 얼마를 전진하다가 갑자기 길이 끊어진 것이다.
모래를 채취하는지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공사 현장 다음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어진 것이다.
한 둘 보이는 현장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한결같이 길이 없다는 말 뿐이다.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치다. 
땀까지 삘삘 흘리며 허둥대는 모습이 더위먹은 정신 병자로 보지 않았나 싶다.
이미 뙤약볕에 지치고 거의 기진맥진 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오기가 슬며시 치밀어 올랐다.
다시 되짚어 간다면 망원 지구까지 가서 교통 수단을 이용해 갈 수 밖에 없으니 그 짓은 정말 하기 싫었다.
한 편으론 망원 지구 수영장을 다시 보고도 싶었지만...ㅋㅋㅋ
마음 속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개척자의 정신(?)이 세속적 눈요기를 눌렀다.
공사 현장에 쌓여있는 흙더미를 넘어가니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눈 앞에는 무성한 풀밭 뿐....
그래도 오로지 전진, 전진 뿐....
풀을 헤치면서 나아가니 앞을 떡하니 막는 것이 있었다.
자유로에 육교를 덮어씌운 것 같은 방호벽이 있는데 그것이 강 쪽으로는 탱크 저지선으로  이어진다.
분단 국가의 현장일까?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내 앞을 가로 막아 떠억 버티고 섰다.
그 사이에는 키가 큰 우거진 잡초들.....
그래도 어찌할 수가 있나?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혹시 지뢰라도 묻혀 있지나 하는 불안감에 잔뜩 몸을 움츠리면서....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나는....
우습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접하지않고는 그 절박한 심정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구조물을 지나자 다시 길은 찾을 수가 없다.
막막하다.... 뙤약볕은 내리 쬐지... 목은 마른데 준비한 물은 이미 바닥이 났지...
하는 수 없이 자유로의 비스듬한 옹벽을 타고 전진했다.
바로 위엔 헌병이 자유로 쪽을 보면서 근무를 서고 있고...
헌병 초소를 지나면서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데도 뒤통수가 자꾸만 간질거렸다. 
금방이라도 누가 뒤에서 부르며 잡아챌 것 같았다.
불안감에 휩싸여 비스듬한 벽을 걷자니 걸음마저 불안했다.
원래 내가 이렇게 삐딱한 사람인가?
세상에 대해 삐딱한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에
삐딱한 걸음따라 마음도 삐딱해지는 것 같다.
아~~~. 무사히 이 길을 가서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정리해 볼 필요를 느꼈다.
비스듬한 옹벽이 끝나자 다시 진퇴양난....이젠 어쩔 수가 없다.
풀숲을 헤치며, 진흙탕에 빠져 가며 겨우 겨우 숲, 늪 지대를 벗어났다.
바로 앞에 방화 대교가 보이고 자유로 밑으로는 회차하는 토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토끼굴로는 갈 수도 없고, 자유로로 올라갈 수도 없고...
토끼굴로 가봤자 자유로로 오르는 길 외에는 화전 쪽으로 나가서 가야할 판이니....
방화 대교 밑으로 방향을 잡았다.
군데 군데 노란 깃발, 파란 깃발이 꽃혀있는 걸 보니 이 강변도 곧 개발할 모양이다.
제발 인간의 힘이 가장 적게 들어간, 자연 그대로의 둔치 개발을 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방화 대교 밑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다리 밑은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창릉천과 합수하는 지점이라
지난 장마 때 완전히 물에 덮여서 빠지지 못한 쓰레기가 그대로 있는 것이리라.
쓰레기 더미를 조심 조심 지나 오른쪽으로 굽어 도니 자유로 밑을 지나 창릉천 가로 올라선다.
바로 이 지점에 다리가 하나 있다.
오며가며 이 다리를 그동안 눈여겨 봐 왔기에 한강 북안을 걸어올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지난  번 장마 때는 물이 불어 이 다리를 건널 수 없었는데 지금은 물이 빠져 걸어 건널 수 있었다.
아, 아... 다리 앞에서의 그 느낌.....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다리를 건너 능곡 소로로 돌아드니 다시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속에선 '예서 말 수 는 없다'는 오기도 또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도 고생 고생하며 이 길을 걸어왔는데....
예서 말 수는 없다....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런데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지칠 대로 지친 몸은 풀어져
더 이상은 무리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어찌 내 몸에 질 수 있는가....이보다 더한 것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견뎌냈을 텐데...
여기에다, 이왕 혹사시킨 몸이 어디까지 버티나,  
끝까지 가보자는 다분히 가학적인 생각으로 몸을 추스려 뙤약볕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능곡에서부터는 늘상 다니던 논길로 접어들어 낯익은 길이었지만 그 또한 너무 멀고 힘든 마지막 마무리였다.
어릴 적 집은 북아현동이었고, 다니던 학교는 종로에 있어서 매일 전차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친구와 다투다가 엎치락뒷치락 하는 중에 전차표와 돈을 몽땅 흘리고 말았다. 
그 때에는 전차표와 돈을 아버지께서 주신 여러 모양, 여러 색깔의 은단곽에 넣어 두었는데 
그것이 뒹구는 과정에서 흘러 떨어진 모양이었다.
전차 정류장에서 느꼈던 암담함.....
국민학교 1학년으로서는 헤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 종로에서 북아현동 집까지 걸어 왔다.
전차 밖으로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며 터벅터벅 아무 생각없이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집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외치며 눈물을 터뜨렸고....
올 시간이 넘어서도 오지않는 나를 기다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정신없이 허둥대셨고...
그 일로 나는 북아현동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했고...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까마득하게 잊었던 수십년 전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도 이상하다...왜 그 순간에 그 일이 떠올랐을까....
마누라의 응대와 애들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찬물을 들이키며 욕실로 향했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라더니 바로 오늘 한나절에 경험한 일도 
뿜어 내려오는 찬 물줄기 따라 한갖 헛된 것으로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다.
* 날이 너무 더웠고 가양대교 이후에는 길을 찾아 헤매다 탱크 저지선 등의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움이 남음.
 물론 수영장에는 더 멋진(?) 모습들이 많았지만 찍을 수 없었음. 
지금은 난지캠프장에서 행주산성 바로 아래까지 자전거 도로가 나있지만 그때는(2004) 길이 전혀없는 상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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