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내자리

moonbeam 2009. 8. 4. 18:58

 

 

예배시간에 내자리는 가운데 맨 앞자리다.

내자리 바로 뒤에는 항상 7,80대 할머니 서너 분이 앉는다.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이 앉다보니 아예 지정석으로 정해졌다.

예배 시간에 이 분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예배 처음 시작할 때면 한주간의 안부부터 시작하신다.

'지난 주엔 딸네 집에 갔다 왔어...' '하도 우리 애들이 잘해줘서..뭣도 먹고, 어디도 가고...'

한참 자랑도 하고

'나도 그기 갔었어...참 좋아...'

맞장구도 치시고...

성경 말씀을 봉독할 때면

다시 그 구절을 되뇌이며 '난 찾았네...'"워디여?'

이런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설교 말씀 중에는 저절로 '아멘!' '아이구'

이런 추임새도 곧잘 나온다..

잘 못들으신 분이 '뭐랍디여?' 하시면

그것도 못 알아들었나며 퉁명스런 소리지만 자상하게 일일이 또 뭐라 설명하신다..

가끔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씀들도 이어지고...

연세도 드시고 귀도 잘 안들리시니 자연히 소리가 크게 나오는가 보다..

 

가만히 앞에 앉아 있다보면 참 재밌다.

더구나 투박한 사투리가 섞인 말씀은 한층 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젠 이 할머니들의 대화가 나에겐 아주 맛깔나는 고춧가루가 되어

예배드리는 시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어떤 때는 내가 일부러 귀를 쫑긋하고 엿듣기도 한다...ㅎㅎ

뒤를 돌아보진 않지만 어느 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궁금하기도 하고...

오히려 할머니들의 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나의 예배는 좀 싱거워질 것 같다.

 

할머니들은 참 순수하다.

오직 주어진 그 순간의 모든 것에 몰입하신다.

젊은이들의 힘과 정열과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순서 하나하나 맞춰가며 예배 시간에 충실하신 모습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설교를 제대로 빠르게 알아듣지 못하실 때도 있겠고...

마구마구 지나가는 예배 진행에 다소 느리게 반응하실 때도 있지만

아무튼 할머니들은 예배 시간에 철저하게 온몸을 던지신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가....

설교 한마디 한마디에 자기 위주로 스스로 판단하고 주석까지 붙인다.

성경구절과 제목만 보고도 설교말씀 전체를 제멋대로 해석해 버린다.

'아! 이 대목, 이 말씀은 누구를 빗댄 걸거야'하며

어딘가에 앉아 있을 성도를 마음속에 있는 갈쿠리 손가락으로 지목한다.

그 손가락은 거의 나 자신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다리도 아파 서기도 힘들고, 뭔 말인지 잘 이해도 안되며, 남들은 아랑곳 않고 당신들 마음대로인 것 같지만

할머니들의 믿음은 순수 그 자체이다.

할머니들의 예배야말로 깨끗하고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예배요, 신앙이다.

 

잘난 체하고, 있는 체하고, 아는 체하고, 경건한 체하는 우리들은

이미 적당히 때가 묻어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아아...깨끗하게 씻어내야 되는데...

순수한 믿음을 회복해야 되는데....

 

할머니들의 순수한 믿음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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