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선 칠족령 전망대에서 본 ‘동강 하이라이트’
원형이 남아 있는 강이 있다. 강원도 평창 정선 영월을 돌아 흐르는 동강이 그런 강이다. 강에 무슨 원형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강들은 불과 100년 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강줄기에 댐을 세워 호수처럼 변한 강도 있고, 모래강변에 제방을 쌓아 놓은 강도 있다. 게다가 둔치마다 축구장이나 배드민턴장,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둔치는 큰물 날 때 물에 잠기는 강의 언저리를 말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운동시설이 있는 강변 공원을 떠올린다. 큰 강만 변한 게 아니다. 소도시의 하천도 모두 이런 ‘성형수술’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가 벌인 4대강 사업은 실은 강에 대한 대수술이었다.
정선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 산들은 휘어져 강을 감싸고 있고, 강은 강마을을 휘감고 에돌아 흐른다. 칠족령 전망대는 뼝대와 여울, 모래톱이 어우러진 동강의 절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동강에 다시 갔다. 지금까지 동강을 찾은 것은 40~50번은 된다. 1990년대 중반 동강을 처음 만났다. 당시 동강에 댐을 세운다고 했을 때였다. 동강의 첫 모습은 “와, 이런 강이 다 있네”였다. 볼 때마다 신비했다. 푸근했다. 다행히 동강의 가치를 안 환경단체,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운동을 벌였고, 결국 동강댐은 백지화됐다. 현재 동강 유역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처음에는 산 넘고 비포장길 따라 들어가거나, 래프팅으로 접근하던 길에 터널도 뚫리고 도로도 좋아졌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동강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다. 출발지는 정선 신동읍 제장마을이다.
신동읍 예미에서 제장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구불구불 구레기재를 넘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한데 이 터널이란 게 정말 작다. 말이 터널이지, 굴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다. 차가 딱 한 대 들어갈 만한 크기다. 그나마 큰 트럭들은 드나들 수 없다. 터널은 조명도 없다. 라이트를 켜야 반대쪽에서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 터널을 지날 때마다 늘 <타잔>을 떠올렸다. 폭포 뒤편으로 동굴을 따라가면 코끼리들의 상아가 남아 있는 비밀스러운 세계의 입구.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이상향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렇게 신비하고 비밀스러웠다. 무릉도원으로 이어진 동굴, (지금의 샹그릴라가 아니라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샹그릴라로 가는 길…. 실은 이렇게 불편해서 동강은 살아남았던 거다.
터널을 통과하면 정선 신동읍 고성리다. 정선군 신동읍 고성 분교를 지나면 동강이 불쑥 나타난다. 터널 밖에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세상이 여기서부터 펼쳐진다. 동강과의 만남은 쉽지 않다. 그래도 늘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었다.
제장마을 앞으로 현재 다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 옆에는 옛 다리가 있다. 옛 다리는 큰 하수관을 깔고 그 위에 판을 얹어 만든 다리다. 비가 와서 물이 불으면 잠기는 잠수교다. 변변한 다리도 없이 그렇게 동강사람들은 살아왔다. 튼튼하고 야무지게 보이는 콘크리트 다리보다 옛 다리가 더 정겹다. 제장마을 어귀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사들인 땅이 있다. 이 강변의 땅을 구입해 보전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동강이 중요하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마을 어귀에는 동강 12경 안내판이 붙어있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연포마을 가는 길에 있는 하늘벽유리다리. 밑바닥이 유리로 돼 있어 절벽 아래를 볼 수 있다.
제장마을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백운산 등산로가 나온다. 백운산은 평창 미탄과 정선 신동 사이에 놓여 있다. 등산로는 처음에는 기분 좋은 숲길이지만 갈수록 가팔라진다. 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크게 어렵지는 않다. 30분 정도면 백운산 정상(883m)과 칠족령 전망대 갈림길을 만난다. 여기서 정상 대신 왼쪽 길로 접어들면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칠족령 전망대는 ‘폼 나게’ 지어놓은 전망대는 아니다. 철구조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노동자들이 딛고 작업하는 공사판의 비계 같다. 그래도 눈 아래 펼쳐지는 동강의 모습은 장관이다. 뒷산들은 첩첩이 이어져 있고, 산마다 앞에 강을 끼고 있다. 반듯하게 흐르는 게 아니라 굽이지고 휘어져 있다. 구글 어스 같은 지도를 통해 보면 동강 줄기 중에서 이곳이 가장 굽은 곳이다. 각도가 300도 이상 돼보이는 곳도 있다. 조물주가 산과 강을 손아귀에 넣고 쥐어짜서 찌그러트려 놓은 것 같다. 산들도 반듯한 게 없고, 강들도 직선이 없다. 대신 강줄기가 휘어드는 곳에는 한강에서는 볼 수도 없는 모래톱이 펼쳐졌다. 모래톱 좋은 곳은 바새마을이다. 바새란 모래가 많은 동네란 뜻이란다. 볕 좋은 곳에는 농가가 한두 채씩 앉아 있었다. 영월 정선 사람들은 깎아지른 절벽을 뼝대라고 부른다. 동강이 개발되기 어려웠던 것은 이렇게 뼝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산들이 모두 일어서서 강을 감싸고 서로 어깨춤을 추는 듯한 지형이다. 칠족령 전망대는 동강의 절경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동강시스타의 강도원 대표는 “제장에서 연포로 이어지는 이 구간이 동강천리 중 절정이고, 한강천리 중 절정”이라며 “시간 날 때마다 거길 찾아간다”고 했다. 영월에서 나고 자란 강 대표는 “거기가 영월 평창 정선이 만나는 곳인데다가 뼝대와 여울 등 동강의 풍경이 잘 어우러진 곳”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걸을 수 있을 때는 걷고, 걷지 못하는 구간은 래프팅을 하고 가는 게 제대로 된 동강탐사”라고 덧붙였다.
정선 동강변의 연포생태체험학교. 원래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였다. 영화 <선생 김봉두>를 여기서 찍었다.
여기서 계속 더 가면 하늘벽유리다리다. 하늘벽이란 뼝대가 하늘처럼 높다는 뜻이고, 유리다리는 뼝대와 뼝대 사이의 벌어진 틈 위에 놓은 다리가 유리도 돼 있다는 거다. 길지는 않지만 밑판을 유리로 만들어 발아래 절벽을 내려다 보게 해놨다. 하지만 등산객들의 숱한 발자국으로 유리바닥이 투명하지 않아서 그렇게 ‘스릴’ 있지는 않았다. 대신 유리다리로 가는 길 자체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절벽 길이다. 400~500m 되는 벼랑 아래로 동강이 보인다. 아마도 아이들과 동행했다면 무섭다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더 가면 연포마을과 거북이마을로 이어지는 갈래길이다. 두 곳 모두 아름다운 강마을이다. 거북이마을로 내려서면 다시 연포마을 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거북이마을 강 건너는 영월 가정마을이다. 가정마을 앞에는 줄배가 하나 놓여 있다. 강변에는 ‘배 건너는 집. 토종닭 민물매운탕 시골밥상 다슬기해장국 033-378-0811’이라고 연락처까지 적어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시간만 있다면 배 타고 건너가 백숙이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이 일대 동강변에는 큰 학교가 없다. 옛날엔 다 분교였다. 그나마도 대부분 폐교돼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연포마을에는 ‘정선 동강 연포생태체험학교’가 있는데 예전엔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였다. 여기서 영화 <선생 김봉두>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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