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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도로변에 있는 투명방음벽에 분홍 테이프들이 붙었다. |
ⓒ 김두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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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한 지 얼마 안 돼 말끔한 투명 방음벽에 분홍 테이프가 여기저기 붙었다. 누군가 낙서를 한 것일까. 자세히 보면 테이프엔 글자가 적혀 있다.
"새를 보호하는 표시. 유리주의!"
이 테이프를 붙인 이들은 '새만금 바닷길 걷기' 활동을 한 오동필, 김두림씨를 비롯한 시민들이다. 분홍 테이프는 투명한 방음벽에 새들이 부딪히지 말라고 붙여놓은 '경고' 표지판과 같다. 김씨는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들의 사체와 충돌 장면을 보고 테이프를 붙였다"라며 "새로 설치한 방음벽이어서 주민들이 염려할 것 같아 메시지를 적어놓았다"라고 설명했다.
임시방편이지만 새들을 위한 경고표시를 남기게 된 건 오씨가 우연히 목격한 장면 때문이었다. 오씨는 28일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의 한 도로변의 방음벽에서 죽어 있는 새들을 발견,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물총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야생 조류의 사체가 방음벽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오씨가 사진과 함께 "14마리의 새들이 50여 미터밖에 안 되는 방음벽 구간에서 죽어 떨어져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시민들은 "슬프다", "새들아 미안해", "인간은 자연을 너무 함부로 다룬다" 등의 댓글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고속도로에서 최고 속도로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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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동필씨는 지난 28일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의 한 도로변의 방음벽에서 죽어 있는 새들을 발견,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물총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야생 조류의 사체가 방음벽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
ⓒ 오동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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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필씨는 새와 환경에 관심이 많다. 그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장이자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사다. 오씨는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툭'하는 소리가 들리며 물총새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씨에 따르면, 이전에는 방음벽이 투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투명한 방음벽이 경관을 답답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투명 방음벽으로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도로변 인근 주민들은 방음벽 때문에 외관이 좋지 않다는 민원을 자주 제기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한 새들의 죽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새들이 투명한 벽에 비친 하늘이나 숲의 모습을 실제 모습으로 착각해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씨는 "새가 이동하는 경로에 없던 지형지물이 갑자기 생겨서 평소처럼 날던 새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당히 많은 새가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었고, 그중엔 멸종 위기의 조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새가 구조물에 충돌하면 부리와 머리를 직접 부딪친다"라며 "고속도로에서 최고속도로 정면 충돌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봄, 여름에는 이동 철새들이 방음벽으로 인해 상당히 많이 죽는다"라며 "그러나 거기에 대한 어떠한 조사나 연구도 안 이뤄지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버드 세이버' 설치 의무화 목소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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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투명 방음벽에 목숨 잃지 않기를' 코레일 성북시설사업소가 지난 2013년 6월 10일 강원 춘천시 강촌역 주변의 투명 방음벽에 맹금류 모양의 버드 세이버를 부착하고 있다. 북한강과 인접하고 있는데다 산세가 수려해 각종 야생 조류가 서식하는 경춘선 가평∼강촌 구간에서는 최근 새들이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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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방음벽으로 인한 새들의 죽음에 대한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버드 세이버(Bird Saver)'다. 버드 세이버는 조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투명구조물에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 새들이 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남궁대식 한국조류보호협회사무총장은 "버드 세이버가 투명 구조물로 인한 조류 충돌을 방지하는 효과는 연구 결과 70% 정도"라고 밝혔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4년 전부터 무료로 시민들에게 버드 세이버를 제공하고 있다. 남궁대식 사무총장은 "전국에 매년 3000~4000장씩 무료 배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버드 세이버를 설치한 사례도 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도로관리처는 2013년에 조류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북부간선도로 신내 IC 등 주요 도로변 투명방음벽에 버드 세이버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자체나 단체의 버드 세이버 설치와 앞서 언급된 오동필씨나 김두림씨와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 조치로 새들의 죽음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 투명방음벽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반면, 버드세이버 설치는 법적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섭 대표는 이와 관련한 사례를 소개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고양시 원흥지구의 아파트 주민들은 도로변 투명방음벽에 의해 죽은 새들을 발견했다. 이에 주민들은 아파트 시공사에 버드 세이버 설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시공사는 '버드세이버 효과가 검증된 적 없으며,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 대표는 "투명방음벽 관리에 대한 법규나 버드세이버 설치 의무규정이 없으므로 요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조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버드 세이버 의무화'를 주장한다. 버드 세이버가 조류충돌을 방지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예방책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동필씨는 "자발적으로 버드 세이버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라며 "적절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남궁대식 사무총장은 "건축법에 버드 세이버 등 조류충돌을 예방하도록 하는 권고사항을 넣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야생 조류의 공간을 우리가 빼앗은 것"이라며 "우리가 최소한의 보호를 해줘야 공생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