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 근대 : 영성과 양생
프라센지트 두아라를 만났다. 이미 국내에도 번역된 책이 여럿일만큼 저명한 학자이다. 뜻밖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줄 몰랐다. 초빙교수로 잠시 머문다는 소식만 접했다. 시카고 대학으로 돌아간 줄로 알았다. 그런데 보직까지 맡았다. 현재 싱가포르 대학 아시아연구소 소장이다. 닻을 내린 모양이다.
어울린다. 적임자이다. 진작부터 국가와 민족에 구애받지 않은 역사 서술이 돋보이는 연구자였다. 혼종과 융합의 도시, 싱가포르와도 궁합이 맞는다. 그간에도 인도 출신으로 중국사를 연구하는 장점을 십분 발휘해 왔다. 대개의 현대사 전공자들이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근대적 정치 집단에 치중하고 있을 때, 민간의 종교 결사체들이 민족과 국가를 넘나들며 전개했던 초국가적인 사회운동과 구제 활동에 주목했었다. 독창적이고 선구적이었다.
그러나 소싯적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민족주의에 비판적이되 자본주의에는 침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공모한다는 삐딱한 어깃장을 놓았다. 돌아보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비난이었다. 밑도 없고 끝도 없었다. 헌데 그때는 그랬다. 나의 정치적 선명성이 우선이었다. 남의 책을 읽고 배우는 자세를 갖추기 보다는 나의 (좌파적) 잣대로 남을 재단하기에 급급했다. 글쓴이와 대화하고 공감하기보다는 딱지를 붙이는 데 더 능숙했다. '신청년'의 독선과 아집, 자가당착이었다.
이제는 두아라의 책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특히나 최근작인 [The Crisis of Global Modernity : Asian Traditions and a Sustainable Future]는 감동적으로 읽었다. 머리를 자극할 뿐 아니라, 가슴을 뛰게 했다. 올해 초에 읽었지만 8월이 다 지나는 지금까지 2015년 '올해의 책' 첫 순위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는 신간을 두고 나누는 일종의 '북 콘서트'가 되었다.
서구적 근대와 지구적 근대
이병한 :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지구적 근대'라는 시대 인식부터 논의해 볼까요. 탈근대와는 다른 구별법입니다.
두아라 : 탈근대는 서구가 주도했던 담론이었습니다. 서구에서 자가 발전했던 내수용 논의였습니다. '성찰적 근대' 또한 비슷했고요. 그러나 비서구권의 집합적 부상은 새로운 시대인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탈근대(Post-Modern)'가 아니라 '탈서구적 근대(Post-Western Modern)'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단, '비서구적 근대(Non-Western Modern)'도 아닙니다. 서구를 여럿 중 하나로 담아 안는 '지구적 근대(Global Modern)'에 진입한 것입니다. 근대는 마침내 만개(Full Modern)하고 있습니다.
이병한 : '지구적 근대'의 요체는 지구적 위기의 시대라는 인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의 위기입니다.
두아라 : 그렇습니다. 그래서 '서구적 근대'의 시대정신이었던 진보, 발전, 성장 등의 가치를 괄호에 넣고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적 수준에서 지난 100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류라는 종의 과대 성장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질학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말도 생겼죠.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 등 지구적 수준의 생태계를 교란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국민 국가 중심의 근대화 모델로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지구적 근대에 걸 맞는 새로운 모델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병한 : 저로서는 지구적 근대의 위기를 거론하며 초월적, 보편적 권위의 부재를 지적하는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전통 사회의 종교나 근대의 마르크스주의 등이 담당했던 역할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죠.
두아라 : 국가 간 경쟁을 추동하는 자본주의적 축적 시스템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자본주의는 제국이 식민지를 수탈했던 20세기 전반이나, 강대국과 약소국의 '자유 경쟁'을 강요하며 종속을 구조화했던 20세기 후반과는 다릅니다. 상호 의존적으로 작동했던 과거와 더 흡사해지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전근대'의 세계상과 닮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환류적 역사의식의 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이병한 : 중국에서 천하 관념을 재인식하고, 실크로드를 재발견하고 있는 현상도 징후적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인도도 모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면화길을 주목하고 인도양 세계를 재탐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세계 요가의 날'(6월 21일)을 제정한 것입니다. 모디 수상이 직접 참여해 요가를 선보였죠. 아예 정부 부처로 요가부도 신설했고요. 선생님도 지속 가능성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편으로 아시아의 종교와 영성에 특히 방점을 두고 계십니다.
두아라 : 불교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불교는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연결자(Connector)였습니다. 因緣(인연)을 중시하는 불교 자체가 '인'과 '연'을 만들어 갔습니다. 불교식 관념과 서적과 수행이 인도에서 출발하여 아시아의 동서남북을 還流(환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바티칸이나 메카와 같은 불교 세계의 단일 중심은 없습니다. 태생이 탈중심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상인, 여행가, 수행승, 항해사, 예술가등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초원길로 바닷길로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무력과 폭력을 거의 수반하지 않고 확산되었죠.
인도에서 중국으로의 불교 전파가 상징적입니다.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일방향의, 직선적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순환적이고 환류적이었죠. 가령 오늘의 이란에 해당하는 지역 역시 불교의 중국 전파에 기여한 바 큽니다. 인도-스키타이 인, 소그드 인, 페르시아 상인들, 수도승들이 북인도와 이란 고원과 서중국을 연결했습니다. 중국에서 불교가 번성함으로써 인도, 특히 카슈미르 지역의 저명한 승려들이 중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했죠. 산스크리트 경전을 한문으로 옮기는 대번역 사업 또한 인류사의 획기적인 문화 교류였습니다. 불교의 교리가 중국의 철학과 융합되는 사상적 파노라마가 연출되었습니다.
이병한 : '서역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아라 : 불교는 티베트-남아시아, 스리랑카-동남아시아, 중국-동아시아 불교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의 연결망이 지금도 여전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다툼 같은 것은 극히 드물어요.
이병한 : 불교적 환류 속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가 한반도나 일본 열도에서 자신들을 불교 세계의 (다)중심의 하나로 (재)창조해가는 과정입니다. 책에서 산시 성에 있는 우타이 산(五台山)의 수도승 학교가 중원과 서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죠. 그래서 우타이 산을 <열반경(Mahaparinirvana Sutra)>에서 문수보살(Boddhisattva Manjusri)의 출현을 예언했던 설산(雪山)으로 선언합니다. 중원을 불국 낙토로 전환시키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한반도에도 오대산(五臺山)이 있어요. 역시 불교에서 신성한 장소로 모시는 영적인 산입니다. 한반도 불교의 허브이면서 중원과 서역 그리고 천축과 연결되는 우주적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이 오대산은 다시 일본 교토의 아타고야마(愛宕山)와 연결되지요. 이렇게 각자가 또 다른 불교적 환류 세계의 허브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토착화와 연결망 확대가 동시적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선형적 확산, '선교'와는 다른 모양새입니다. 수용자도 환류망에 적응함으로써 재창조에 참여하는 쌍방향성이 두드러집니다.
두아라 : 이런 속성은 사실 대원정을 이끈 鄭和(정화)에게도 발견됩니다. 그간 그는 주로 이슬람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접근되었습니다. 실제로 정화는 몽골제국 시대 운남성을 다스렸던 무슬림 지도자의 후예입니다. 대원정 당시의 통역사 또한 저장성 출신의 무슬림, 마환(马欢)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인도양 세계의 보편어인 아랍어에 능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층 흥미로운 사실은 정화가 무슬림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도 믿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불교식 이름도 있었어요. 명나라의 불자들 역시 여전히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를 순례하면서 천문학, 의학, 지리학적 지식의 환류를 이끌고 있었어요. 운남성과 저장성 등이 바로 그런 장소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불교 세계의 네트워크 또한 정화의 대원정에 기여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입니다.
이병한 : 재밌는 지적이네요. 그렇다면 정화의 대원정은 이슬람의 인도양 네트워크에 불교가 인연을 놓았던 '서역 네트워크'를 접속시킨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두아라 : 그렇습니다. 이슬람 네트워크와 불교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인도양 세계의 해안 지도가 정확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지도를 따라서 인도에 도착한 사람이 바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였고요. 그 역시 구자라트 상인의 길 안내 덕분이었습니다. 구자라트 지방이 이슬람 네트워크와 불교 네트워크에 기독교 세계를 결합시킨 장소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18세기부터 인도양 세계가 급변합니다. 서구의 무력이 아시아의 문화를 압도합니다. 환류적 네트워크 또한 '과학'을 빙자한 인종적 위계와 문명적 우열로 대체되었어요.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의 '문명화 사업'이 전개된 것이죠. '환류'가 '진보'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병한 : 그럼으로써 제 국가와 제 민족만 섬기고, 천하를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우주적 발상을 버리고 일국의 발전에 함몰됨으로써 자기 파괴적인 무한경쟁으로 돌입한 것이지요. 동아시아 식으로는 '亂世(난세)', 남아시아 식으로는 '아수라(Asura) 장'이 펼쳐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화/지구화와 더불어 순환적이고 환류적인 교류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아라 : 옛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에 한정되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복수의 시공간 관념 속에서 중층적 정체성을 누렸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원천이 복수라는 점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미 개인과 민족/국가의 연결망이 느슨하고 헐거워지고 있거든요. 국적, 시민권, 거주권 등 정치적 정체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특히 종교나 생태 등 초월적 세계와의 연결망 회복을 더욱 중시하는 편입니다. 토착성과 초월성이라는 전통 사회의 원리는 갈수록 중요해질 것입니다. 마을 운동과 환경 운동의 활성화가 대표적인 사례이죠. 이를 '지구적 근대'를 '지속 가능한 근대'로 전환시키는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중국의 장래를 조망하는데도 참조할 만합니다. 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속 여부가 다당제로의 이행에 있다고 여기지 않아요. 오히려 다종교의 허용이 얼마나 가능할지가 관건입니다. 즉, 개혁 개방으로 '小康(소강) 사회'에 진입한 다음에는 인민들의 초월적, 영성적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켜줄 수 있느냐에 중국 공산당의 장래가 걸려 있습니다. 중국 뿐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그러할 지도 모릅니다.
이병한 : 독창적인 견해입니다. 근대화의 위기, 세속화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인간과 사회의 '재영성화'가 중요한 정치적 기획이 될 수 있겠네요. 이 또한 근대의 정치(Politic)보다는 전근대의 '政治(정치)'에 가까워 보입니다. 지구적 근대란 옛 정치와 새 정치가 환류하는 시대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자아와 자연 : 천인합일
두아라 :
근대적 인간관, 즉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성찰할 필요가 큽니다. 아시아적 인간론의 복원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입니다. 아시아의 종교에서 자아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자아를 넘어서는 참된 자아, '眞我(진아)'가 있습니다. 나아가 그 '진아'를 넘어서는 우주적 자아, '無我(무아)'도 있었습니다. 그 진아와 무아를 이루기 위한 수련과 연마가 수천 년 지속되었습니다. 자아를 주체로 내세우지 않고, 자아를 극복하려 했던 다양한 수련들을 복구해야 합니다.
이병한 :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근대의 과학은 '자연의 극복'을 추구했습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근대의 종교였습니다. 반면 아시아의 종교는 '자아의 극복'을 강조했습니다. 혹은 자아와 자연의 합치를 추구했습니다. 소위 '天人合一(천인합일)'이죠.
두아라 : 중국의 도처에서 최신의 생태론과 오래된 민간 종교의 결합이 활발합니다. 중국도교협회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도교의 녹색화', '도교의 생태화'가 역력하더군요. 도교 사원에서는 노자와 장자를 '생태보호신'으로 모시고 있어요.
사원 건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태 친화적인 자재들로 '지속 가능한 사원' 만들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난방 또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생태보호신을 섬기는 신도들은 순례도 생태적으로 합니다. 에코 투어(Eco Tour)의 선구자들입니다. 이들은 중국의 정책 당국과 협조하면서도 글로벌 시민 단체와도 연대합니다. 지역적이고, 지구적입니다. 나아가 우주적이지요. 토착적이면서도 영성적이고 초월적입니다.
이병한 : 흥미진진한 현상입니다. 20세기 전야 서방의 한 철학자가 '신은 죽었다'고 외쳤습니다. 동방의 학인들은 '하늘이 무너졌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그 탄식이 단지 서세동점의 물결 앞에 국망(國亡)을 한탄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天道(천도)와 天理(천리)의 붕괴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자아의 극복'이 아니라 '자연의 정복'을 합리화하는 세계관의 위험성을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았던 것이 아닐까요.
올해는 조선의 해방 70주년인데요. 식민지기 조선의 한 청년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 시를 다시 읽노라니, 그 시인의 마음에 옛사람의 마음이 비치더군요. 식민지 현실에 내재하면서도 그 역사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리, '하늘'과의 대화와 소통이 유지되고 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아시아적 영성, 동방적 마음의 뿌리가 도리어 해방 이후에 단절되어 간 역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조선도 한국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선생님의 시각으로 남북한 및 아시아 국가들의 현대사를 다시 쓴다면 전혀 다른 역사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두아라 : 동아시아의 '하늘'에 빗댈 수 있는 것이 남아시아의 다르마(Dharma, 법 혹은 도)입니다. 베다 교에서도 우주적 질서의 총체적 조화를 지극한 선이라고 여겼습니다.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세계들도 자연적 질서와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의 내적 질서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기축 시대의 고전 종교들, 불교와 힌두교 자이니 교 등도 비슷했습니다.
인도양 세계의 고전 종교들의 세계관은 도리어 현대의 과정 철학과 상통합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를 비롯한 과정 철학자들은 신이 인간을,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과 함께, 신과 더불어 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지요. 시바의 영원한 춤이 바로 '더불어 창조'의 상징입니다. 시바의 우주적 춤은 무한한 창조와 파괴의 연쇄를 표현합니다. 자연도 우주도 인간과 더불어 이 세계와 역사의 창조자입니다.
이병한 : 역사학에서도 최근 가장 각광받는 분야가 환경사입니다.
두아라 : 역사는 결코 인간 활동만의 산물이 아닙니다. 자연과의 공동 창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해를 능가하는 영역에서 초월성과 더불어 창조해갑니다. 앞으로 요청되는 역사 감각 또한 이러한 것입니다. 비이성적 태도를 취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활동의 한계를 자각함으로써 더 이성적이고 더 겸손한 태도를 갖추자는 것입니다. 진보라는 교만을 거두고 역사라는 우주적 활동 앞에 겸허해 지는 것이지요.
이병한 : 지당한 말씀입니다. 인간은 물론 역사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주체는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체도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옛말을 빌면 天地人(천지인), 즉 천(초월성)과 지(토착성)를 매개하는 중간자로서 人間(인간)이 있습니다.
New Age : 영성과 양생
두아라 : 나를 사회와 자연과 우주와 연결시키는 삶의 기술을 복원해야 합니다. 아시아의 종교는 영성과 양생의 기술들을 오랫동안 발전시키고 전수해 왔습니다. 20세기를 지배한 민족주의와 소비주의에 맞설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지구적인 주체를 양성하는 방법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환경 단체와 녹색당은 20세기형 NGO와 정당으로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영성과 양생의 기술을 전파하는 새로운 전위 조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병한 : 아시아의 종교는 특히 '몸'의 단련을 중시했습니다. 몸을 수련하는 각종 방법들을 고안해 왔습니다. 이 또한 '자아의 극복'과도 관련이 될 텐데요.
두아라 : 한때 서구에서 뉴 에이지(New Age) 열풍이 불었습니다. 요가가 인기를 얻게 된 것도 그 무렵이지요. 그러나 몸의 단련이 몸 가꾸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신체마저 자본의 영토가 된 것입니다. 본디 요가는 요기들이 수행하던 것입니다. 철학의 일종이자 진리 추구의 방편이었습니다.
요가 수행자들에게 진리는 인식하고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하고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몸으로써, 호흡으로써, 혹은 성적인 활동으로써 초월성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즉, 내 안에 자리한 신성을 북돋게 하는 단련이었습니다.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생활인이 초월성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방법이었지요. 지금, 여기와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비일상적인 시공간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내 안에 신성이 가득하면 그것으로 이미 충만합니다. 그러한 영성과 양생을 꾀하는 의례와 의식들이 어느새 웰빙과 디톡스 등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복무하고 만 것입니다. '뉴 에이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이병한 : 올해 시안에서 열린 모디와 시진핑의 정상 회담에서 요가와 쿵푸를 소재로 한 영화를 양국 합작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문화 대국과 남아시아의 종교 대국이 동시에 부상하는 작금의 현상이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의 변동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케 됩니다.
과연 아시아의 양대 문명 대국이 영성적 차원에서의 '뉴 에이지'를 선도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 실상에 대해서는 저 자신 서역을 견문하고 천축을 여행하면서 차차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통찰력 넘치는 말씀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 정치'와 '새 민주'
두아라와 대화하면서 새삼 '새 정치'와 '새 민주'를 궁리하게 되었다. 20세기의 정치는 곧 해방의 정치였다. 민족 해방, 계급 해방, 여성 해방, 흑인 해방, 소수자 해방 등 온통 해방 천국이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나와 남을 구분 짓고, 우리와 너희를 분별하여, 나와 우리의 상승을 꾀하는 정치적 기획이었다.
내 권리를 찾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정치가 만연한 것이다. 정치는 이해당사자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었지, 모든 당사자들의 영적 진화를 독려하지는 않았다. 자아를 극복하기보다는 자아를 극대화하는 정치였던 것이다. 군자의 정치, 보살의 정치보다는 소인의 정치에 가까웠다.
21세기에는 영성을 고무하고 양생을 증진하는 수련이 급진적인 정치적 기획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서방에서도 동방에서도 참살이(well-being)에 대한 욕망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잘 살아보세'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정말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되묻고 성찰하고 있다.
재차 '동방형 민주화'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동방은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만인에게 개방하는 형태의 '민주화'를 도모했다. 동아시아는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남아시아는 '모두가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사회'를 지향했다. 그래서 불가촉천민이라 하더라도 진리에 이르고 초월을 누릴 수 있었다. 카스트 제도 안에서도 창조적 '민주'의 활력이 있었다. 그런 숨통이 없고서야 한 사회와 국가가 장기간 지속될 수가 없다.
이제 와서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 견주고 겨루자는 것이 아니다. 서방 민주를 동방 민주로 대체하자는 것도 아니다. 지구적 근대에 걸 맞는 지구적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민주의 동서 환류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동서 민주의 회통과 대동을 꾀하자는 것이다. 선거 제도를 바꾸고 정당 체질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정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정치의 근본적 결핍을 동서남북이 더불어 숙고하고 숙의할 때이다.
'새 정치' 만큼이나 '새 경제'도 중요하다. 가정과 나라의 살림살이의 꼴 또한 크게 달라져야 한다. 마침 살림살이에서도 잃어버린 영성을 재투입하려는 시도가 있다. 최근 부쩍 귀에 익은 이슬람 금융이나 할랄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경제의 메카, 말레이시아로 간다.
'사는 맛 그리고 멋(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수~서울 1000㎞ 자전거 타고 기부 캠페인 (0) | 2015.09.07 |
---|---|
윤구병 (0) | 2015.09.06 |
선승들이 죽은 수행을 한다고 꼬집은 오현스님 (0) | 2015.08.28 |
죽음과 대면할 때 (0) | 2015.08.26 |
방음벽에서 새를 살리자 (0) | 2015.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