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오랜만에 밖에서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의료 상담 차 일산에 오셨다가 전화를 하셨다.
점심이나 한 끼 사 드리려 했는데 점심 후에 만나자시네.
병원 수납 앞 의자로 오라셔서 가니 기다리고 계신다.
병원 내부 지리?를 잘 몰라 어리둥절한 나를
끝 쪽에 있는 커피점으로 데리고 가신다.
옛날에 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잘 아신다고ㅎㅎㅎ...
커피값을 내려 하니 한사코 당신이 내시겠단다.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치니 끝이 없네.
교직에 계실 때 여러 재미있었던 일들이 내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진다.
교사 백일장 나가서 금메달 따신 일,
교내외의 여러 동아리 연수에 끼어 같이 교육 받으시던 일,
동료 후배 교사들과의 매일매일의 만남...
나도 학교에 있었으니 이해가 되고
충분히 그 상황과 분위기가 그대로 그려진다.
옛날 일을 기억하고 다시 되새겨 떠올리고 이야기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지나온 모든 옛일들은 우리의 삶을 알차게 만들고
또 다른 이에게 이야기함으로 더 즐겁고 풍성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학교에 계신 기간을 보면 나와 중복된 시간도 있는데
같이 근무할 수 없었음이 아쉽기도 하다.
한 40여 년 전 대학생 때.
선생님께서 김포 쪽 어느 초등학교에 계실 때 물어물어 친구놈 몇이 찾아간 적이 있다.
수업이 다 끝난 후 운동장 조례대에 앉아
토끼 한 마리를 잡아 끓여 주시던 기억이 난다.ㅎㅎㅎ
그 때 토끼고기 처음 먹었지...
정년 하실 땐 우리 친구들이 몰려 가서 축하도 해 드렸는데...
긍정적이고 추진력이 강하셔서 모든 일을 그냥 넘기시는 법이 없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끼지 않는 곳이 없고,
어디서든지 힘과 웃음을 주시고,
사람 자체를 좋아하셔서 수십 년간 적극적으로 어울리다 보니
약주도 많이 하시고 해서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시길 바랄 뿐이다.
슬그머니 쇼핑백을 하나 건네주신다. 무겁다.
이 무거운 걸 왜 들고 오셨냐니까
이선생한테 꼭 주고 싶은 것이라고 하신다.
제자가 만든 향초에 작가가 성모마리아를 조각 한 것이란다.
선생님은 불교시잖아요 하니 아니 종교에 관계없이
그냥 당신이 여지껏 아끼던 것이라 꼭 주고 싶었다고...
그저 뭐라도 주고 싶으신 마음, 그 마음을 깊이 느끼고 고맙게 받았다.
게다가 하얀 봉투를 하나 꺼내시면서 어머니 뭐라도 사다 드려 하신다.
아니 이러지 마세요. 이건 정말 아닌데요. 하니,
어머님은 다음에 와서 뵙기로 하고 그냥 인사로 드려. 하신다.
거절할 수 없네...
봉투를 어머니께 드리고 소식을 전하니 감격하시며
‘이게 무신 일이고..니가 만났드나...어디서...하이고 참 하이고 참’만 연발하신다.
큰 향초는 하얀 한지로 곱게 한 번 싸고 깨질까봐 뽁뽁이로 또 싸고...
꼼꼼하기도 하시지...
어느 축복 받은 여인은 이제 무심하게 서서 거실 벽을 장식한다.
매일매일 만복을 받고 산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