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아흔하고도 여덟 해를 사신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친구 어머니만이 아니고 형, 누나 그리고 동생들 5남매의 어머니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
일년만 지나면 白壽신데.
살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얼굴들을 만난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맨날 마주치던 얼굴들...
형 누나 동생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마음만은 옛날과 똑같아
헤어지는 자리임을 잊고 만난 반가움에 서로 부둥켜 얼싸안는다.
‘야 걘 어디 사냐?’ ‘난 그놈이 보고 싶은데’
‘아...그 형 돌아가셨다구?’ ‘니 누나는 어딨어?’
‘오빤 그냥 고대로야 변한 게 읍써’ ‘변하믄 죽어 임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은
깊이 갈앉은 옛모습을 휘저어 떠오르게 하고
우리는 그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삼키며 되새김질을 한다.
‘야 니 엄마는 무서웠어, 근데 이상하게 저놈만 예뻐하셨지’
‘니네 누나가 이뻤지, 웃는 모습은 진짜 천사였어’
‘웃기지마 나한테는 악마였어, 맨날 잔소리에 구박하고...’
어느 집이라도 들어가면 밥도 차려 주고, 차려 먹고
누구네 집이라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옛날 동네 친구들...
마음이 들뜨고 흥이 올라 골목쟁이들로 변한 우리는
켜켜이 쌓아 올린 삶을 자랑삼아 토해내고
휘도는 겨울바람보다 더 빠르게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날이 저무는 것도 잊고 온동네 대문을 다 활짝 열어젖힌다.
‘너무 잊고 살았네’ ‘이젠 자주, 아니 가끔이라도 보며 살자.’
‘그래야지’ ‘인생 뭐 남는 거 있어? 그저 얼굴 보면서 살자’
시끄럽게 떠드는 우리를 보시는지 듣기라도 하시는지
영정 속에서 화안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휴대폰을 꺼내 서로의 번호를 저장하고
지켜질지도 모르는 약속을 중얼중얼 내뱉으며
우린 웃음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저마다의 길로 사라졌다.
2021년 2월 청량리위생병원(삼육서울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