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수선화에게 / 정호승

moonbeam 2022. 5. 13. 13:21

https://youtu.be/hwIVVWt0XsE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물가에 혼자 피어있는 한떨기 외로운 수선화...그 수선화는 사람이구요, 바로 이 시를 읽는 우리들이지요.
시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 외로움을 인간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첫 구절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으니 ‘외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성립하겠지요. 
외로움은 인간의 삶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혹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였고 떠나 갈 때도 혼자잖아요? 그러니 이 외로움이란 것은 영원히 끼고 살아야 할 숙명같은 존재죠.
시인은 이 외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라고 속삭이네요. 하느님도 가끔 외로워 눈물을 흘리는데 하물며 지극히 보잘것없는 인간이 외롭지 않을 까닭이 있겠어요?ㅎㅎㅎ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에 활동한 시인은 그 당시의 정치적 억압과 폭력과 불평등, 각종 불법과 모순 등을 직설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저항의지를 부드러운 감성으로 치환하여 표현한 것은 아마도 이런 삶의 자세에서 비롯한 것이라 여겨지네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눈이 내려도 외롭고, 비가 쏟아져도 외롭고...달뜨면 외롭고 별지면 외롭고, 휴대폰만 봐도 외롭고...어떤 이는 거울만 봐도 외롭고...그래서 집안의 거울을 다 치웠다고 하더라구요ㅎㅎㅎ...
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열심히 땀을 빼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또 절이나 성당, 교회를 찾아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기도 하지요.  또 사람들을 만나 그 모임의 흐름에 맡기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 순간에는 잠깐 잊을지 몰라도 다시 외로움에 휩싸이는 건 어쩔 수 없지요...
그래서...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서 구도의 길을 가는 이들도 이 외로움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굳이 외로움을 떨쳐 버리려 하지 말고 내 속에 지니고 함께 느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내게서 외로움이 없다면 그건 정말 무미건조할 테니까요. 정말 외로움이 없고 외로움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실존이 없잖아요.ㅎㅎㅎ
또 시선을 나의 밖으로 돌려 내 주위에서 같은 외로움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외로움에 싸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지막 구절처럼 산 그림자가 되어 덮어 줄 수도 있고 종소리가 되어 공감하며 감싸줄 수도 있겠네요.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사람이니까 서로의 외로움을 알고 느끼고 보듬어 안아주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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