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백무동 한신계곡

moonbeam 2010. 5. 6. 23:32

5월 3일.

안해가 싸준 김밥을 넣고 밤차를 탔다.

우리집 김밥은 맛있다고 소문난 김밥이지...ㅎㅎㅎ 

 

백무동에 3시 40분 도착...

그야말로 암흑천지다...

아뿔싸..집에서 짐을 쌀 때 헤드랜턴이 고장난 것을 알고 버렸는데

지리산을 간다는 흥분 댓바람에 그냥 오느라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하긴 동서울터미널에서 12시 출발이니 문을 연 가게도 없었고

백무동 또한 마찬가지다...오직 고요한 적막만 있을 뿐....

버스에서 내린 4명 한 팀이 있는데 저마다 헤드랜턴을 끼고 준비하느라 난리다.

'저 팀에 따라 붙을까' 생각하며 뒤를 슬슬 따라갔다.

나이 먹은 놈이 야간산행을 하면서 준비성 없다는 말을 듣기 싫어 그냥 묵묵히 올랐다.

그 팀은 장터목으로 가는 코스를 택한다.

나는 세석 쪽으로...새벽 4시다.

그러나 앞은 깜깜...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겨우 안내판을 찍었으나 제대로 볼 수도 없어 아래가 짤렸구먼... 

 

희미한 하현반달만 떠 있을뿐...너무 캄캄하다.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가니 걸음은 더디기만 하고...

옆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괜시리 공포감만 더해간다..

천천히 가면 어때 어차피 혼자 즐기는 산행인데 하며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오른다.

아무 생각없이 암흑을 헤쳐갈 뿐이다.

거의 전방을 볼 수 없으니 주위경관은 커녕 발을 헛디딜까봐 조심스럽다.

사람살이도 이와 같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얼마나 헤쳐 왔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어둠 속을 헤맬까....

그런대로 물소리 바람소리 벗하며 오르니 마음은 차츰 여유를 갖는다.

언젠가 곧 해가 뜨겠지...그러면 뭐~~~

6시 쯤 되니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시야도 확보되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 계곡은 물이 좋은 곳이다.

금강산에 만폭동이 물좋기로 유명하다지만(아직 가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곳이 더 좋지 않을까생각해 본다.

숫자를 헤아려 본다면 만 개는 넘지 않을까...

좌우지간 물이 너무 아름답다. 소리까지 시원하기만 하다.

전후좌우 어디든 고개만 돌리면 물구비다.

김밥을 하나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물가에 앉으니 몸이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맑게 굴러가는 물 위로는 진달래가 수줍은듯 點點紅이다. 

 

크고 웅장한 폭포만 있는 게 아니고 바위 틈으로 애기 오줌같은 물줄기도 예쁘게 새나온다. 

 

배도 부르고 우르릉쾅쾅하는 물소리에 발맞춰 단숨에 차오르니 세석 0.7K 팻말이 나온다.

다 왔구나 하며 계속 오르는데 아차...길이 없다...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헤매도 기분이 좋다.

응달이 아닌데 아직도 눈얼음이 그대로 있기도 하고, 

제법 멋진 바위 틈도 비집고 지나보기도 한다. 

장난꾸러기처럼 헤집고 돌아다니는 재미 또한 솔쏠하다.

아무렴 어때...나홀로 산행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내 맘대로, 발길 닿는 곳으로 돌며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며 위로 위로 오른다...

 

어...이제 다 올랐구나...햇살이 따스하게 머리를 비춘다.

다 오르고 보니 세석대피소 위 금줄이 쳐진 철쭉군락지다.

철쭉은 몽우리만 져 있고 아직 꽃을 피울 생각은 없는듯하다. 

원래 등산로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지점이다.

출입금지된 곳을 들어선 마음에 누가 볼까봐 몸을 낮춰 숨기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8시도 안된 시간에 세석대피소는 조용하다. 

햇살 아래 세석은 너무 평온하다.

산행 초반엔 어두워서, 막판엔 헤매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따스한 바위 위에 가만히 누워 본다...

이 드넓은 곳에 철쭉이 활짝 핀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따스한 햇살 아래, 얕은 바위에 편안히 누운 내 머리엔 온통 붉은 철쭉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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