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피아노 / 전봉건

moonbeam 2022. 6. 15. 10:12

https://youtu.be/qz1xRY4chJ8

피아노 /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 시인은 한국문학사에서 전후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이지요. 가족들이 월남해서 6.25를 직접 체험했고 그 와중에 형 전봉래는 부산 피난지 다방에서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의 시 출발점은 전쟁에 대한 고통과 아픔이라고 말합니다.  또 예총회장을 지낸 첼리스트 전봉초는 그의 사촌 형이지요. 집안에 흐르는 예술적 감각, 예술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60년대 중반엔 김수영과 순수와 참여에 관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죠.
전업작가로서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아서 ‘부부’ ‘아리랑’ ‘여상’ 등 흥미 위주의 잡지와 시전문지 ‘현대시학’을 창간했지만 경제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 주변 시인들과 불화도 있었고 결국 성공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죠. 

어쨌든 피아노란 이 시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음악성에 황홀한 회화성을 덧붙여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눈을 감고 피아노를 그려보고 피아노 치는 여인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여인의 모습일까요? 아마 바닷바람에 날리는 긴 생머리카락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을 것 같네요.ㅎㅎㅎ 그녀가 손가락으로 퉁겨내는 소리, 즉 통통 튀는 건반의 음들이 놀랍게도 찬란한 빛이 되어 쏟아지고 파도의 칼날에 씻겨 내려가네요. 
시인이 파도의 끝모양을 칼날이라고 표현한 것도 전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지요.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놀라운 결합. 바로 칼날이 되어 내 마음을 찌르고 파헤쳐 강렬한 감동을 줍니다. 
아아...맑게 퉁기는 피아노음은 튀는 물고기의 비늘빛이 되어 내마음 속으로 쏟아지고 나는 이미 깊은 바닷속으로 풍덩 빠졌다가 다시 솟아오르네요... 
이제 나는 거꾸로 밀려왔다가 또 부서져 밀려나가는 파도의 끝에서 맑은 피아노 음들을 주으려 바다로 가볼까 합니다. 객쩍은 소리지만 우리 함께 가볼까요? 더운 여름바다보다는 5,6월의 바다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ㅎㅎㅎ 6월도 벌써 반이나 파도에 밀려 나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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