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원시 (遠視)/ 오세영

moonbeam 2022. 10. 3. 19:45

https://youtu.be/y2Nifymc7WU

원시 (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시인으로 학자로 교육자로 살아온 오세영 선생은 시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많이 알려진 ‘그릇’이란 시에서 차갑고 이성적인 면 그리고 날카로움을 보여줬는데

이 원시(遠視)에서는 그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날카로움은 접고 편안한 느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 연륜이 묻어납니다. 제목 遠視는 노안을 뜻하기도

하고 멀리 본다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의 제재는 ‘이별’입니다.

이별이란 그 상황은 다양하지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안타깝고 아픈 현실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는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가져오는 이별 외에는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군요.ㅎㅎㅎ

 

시의 첫부분에서 멀리 있는 무지개, 별, 꽃 등 손이 닿지 못해서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별을 떨어져 있는 거리로 받아들이고 있네요.

문득 만해선생이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라는 구절과 느낌이 이어지네요.

그러나 만해 선생처럼 애써 강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내 나이’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라는 구절에서 진한 공감을 느낍니다.

공감하는 그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편 씁쓸하기는 하네요.ㅎㅎㅎ

 

그 나이의 이별은 ‘멀어지는 일일 뿐’이고 ’멀리 보낸다‘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과 표현은 ’거리 두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월이 ’산유화‘에서 ’저만치‘란 표현을 했듯이 말이죠. 바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조의 자세입니다.

주관적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사물을 대하는 태도. 

시끄럽고 요란한 감정의 상태에서 벗어난 지극히 고요한 상태지요.

외적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파도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격렬함이 아니고 어떤 움직임도 없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이별을 깨닫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피끓는 젊음에서는 참 느끼기 힘든 성숙한 자세입니다.

 

삶의 굴곡을 경험한 후 원숙한 나이에 깨닫게 되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인식.

바로 이것이 이 시의 주제입니다.

이별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담담히 수용하는 마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원숙한 너그러움으로 표현하고 싶네요.

 

어쨌든 이별이란 당사자의 아픔도 크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이의 상심이 더 크고 깊게 자리잡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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