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성탄제 / 김종길

moonbeam 2022. 12. 22. 16:18

https://youtu.be/5YUHJCluDzs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매년 성탄절 즈음해서 떠오르는 시. 김종길의 성탄제.

이 시는 시간상으로 과거 회상과 현재의 느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열병을 앓고 있는 어린 짐승인 나를 위해 눈을 헤치고 따 오신 붉은 산수유 열매는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병이 나아 성장하게 되고...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그 옛날 아버지의 진한 사랑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것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이라는 표현도 아들을 구하려고 눈속을 헤쳐온 아버지의 힘듦을 뜻하기도 하지만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嚴父 즉 엄한 아버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전체적인 배경이 눈입니다. 하얀 눈에 반해서 산수유와 혈액은 붉은 색. ‘어두운 방빠알간 숯불순백과 붉음의 색채적인 대조를 이용해서 강렬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각적인 효과 이외에도 이마에 닿는 눈과 서느런 옷자락에서는 촉각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흔히 감각적이라고 합니다. 시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많이 쓰는 기법이지요.

제목을 일반적으로 쓰는 성탄절이란 낱말을 쓰지 않고 성탄제라고 해서 종교적인 색채를 살짝 연하게 하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짙게 드러낸 점에서는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은근히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물론 저 혼자 생각입니다.ㅎㅎㅎ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수없이 노래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회자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한 시입니다. 왠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던 존재.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는 속깊은 사랑. 그 사랑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이미 나이가 든 때문일까요?

말그대로 아빠라는 이름에 걸맞게? 30, 40 젊은 아빠들은 가정적이고 자상하고 얼마나 애들에게 열정적인지 모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점점 잊혀지고 아빠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요즘. 이 시도 어쩌면 이미 낡아 사라져버린 구세대 부자간의 사랑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표현한 유물로 남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봅니다.ㅎㅎㅎ

 

#성탄제#김종길#성탄절#아버지의사랑#산수유#젊은아빠#시감상#시해설#시힐링#3분힐링#월광샘시감상#이원도의시읽기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든지 / 이원도 시낭송 감상  (0) 2022.12.22
낙 엽 / 복효근  (0) 2022.11.07
원시 (遠視)/ 오세영  (0) 2022.10.03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0) 2022.09.13
부자 시집 하늘샘 / 윤교식 윤주섭  (0) 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