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통일의 길목 .... 임진각

moonbeam 2005. 10. 23. 23:30

2005년 10월 22일... 비가 온 뒤라 하늘은 더없이 맑다.
더욱이 북쪽으로 걸어가며 길에서 올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티없이 맑다.
바람이 약간 차게 느껴지지만 흥분한 마음 때문인지 조금도 춥지 않다.
이산포 나들목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전 9시 15분.
원래 8시에 출발하려 했으나 전날의 피로(?)로 늦어졌다.
(같이 간 혜강은 새벽부터 몹시 조바심 냈으리라..ㅋㅋㅋ)
자유로 따라 임진각까지 길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여유있게 심호흡을 하면서 출발했다.
예상대로 자유로 바로 밑에 길이 죽 이어져 있었다.
2 ~ 3 Km에 하나씩 군부대가 있고 사람하나 다니지 않는다.
맑고 깨끗한 날씨에다 차갑게 와닿는 가을 기운은 
육체와 정신을 높은 경지에 까지 끌어 올린다.
선선한 날씨에 땀도 나지 않아 좋고 한 쪽은 자유로로 막혀 있지만
다른 한 쪽에 넓게 펼쳐진 들판은 마음을 환하게 열어줘 시원하기만 하다.
안타까운 점은 자유로 바깥 쪽 즉 강가를 걷지 못한 것이다.
분명히 그 쪽으로 길이 있는데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들어가 걸을 수가 없다.
이런 날씨에 강가를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통일이 된다면 강가를 맘대로 걸을 수 있을텐데...
  
한 시간 쯤 전진을 하고 부터는 공사가 한창이다.
무슨 배수관로를 묻는 것 같은데, 땅을 다 파헤쳐 걷기가 불편했다.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길을 걷기가 힘들어서, 
위험하지만 때론 자유로 위로 올라가 차도 옆 화단을 걷기도 했다.
멀리서 심학산을 지나고는 다시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곡릉천이 흐르고 있는 곳의 다리는 마을 쪽으로 한참이나 들어가서야 있다.
물론 자유로에 다리가 있지만 그리로 넘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환상적인 날씨와 쌀쌀한 기운은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며
평상시보다 더 잰걸음을 만들어 준다.
다시 자유로 쪽으로 나와서 토끼굴을 지나니 바로 국가 대표 축구 훈련장이 나오고
오두산 통일 전망대, 통일 동산으로 이어 진다...
세 시간 정도 걸어 왔으니 그냥 보도 위에 퍼질러 앉아 잠깐 쉰다.
통일 동산 앞 길은 가을 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껏 보여 준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햇살은 환하게 비치고 
낙엽만 좋아라고 길을 뒤덮어 뛰어 다니고 있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넓은 길 가에는 플라터너스가 길게 서 있다.
그 큰 잎들이 떨어져 아스팔트 위를 굴러 가는 소리는 시끄럽기까지 하다.
잠깐 쉬고 난 후 갈림길이 나오자 고민에 싸인다.
그제서야 작은 지도도 가지고 오지 않은 불찰을 자책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머리 짐작으로 위치를 가늠하고 '프로방스' 쪽으로 가는 언덕을 올랐다.
언덕 길 양 옆의 음식점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래도 먹는 장사가 최고인가? 죽 늘어선 음식점마다 다 장사가 잘 될까?
언덕을 넘어 내려 가다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뚜벅이 아줌마를 만났다.
동류 의식이랄까. 일단 뚜벅이를 만나 반가웠고,
반가운 김에 길을 물어 보니 '그 쪽으로 가면 한참 돌아 가는 길'이라 했다.
언덕이라 힘에 부치는 자전거를 밀고 오는 한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길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는 불투명하다는 대답이었다.
차들이 지나는 길 가에 서서 약간 망설인 후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이런 것이 걷기 할 때에 제일 힘든 일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갈 때의 허망함은 닥쳐 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돌아 나가 헤이리 앞을 걷는 길은 차도도 넓고 인도도 넓어서 아무 불편이 없다. 
   
헤이리를 약간 지나 길 가의 작은 공원에 앉아 준비해 간 점심을 먹었다.
새로운 마을의 형태를 보여 주는 헤이리...
경제적인 넉넉함, 자유스러운 직업, 자녀 교육, 
그 외에도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다 갖춰져야 하니 
마음은 있어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은 부러워만 할 뿐이다.
헤이리부터는 무조건 문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도가 없으니 부대 앞 초병에게도 묻고, 도로 표지판도 열심히 보며 걸었다.
금산리 고개를 넘자 너른 들판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노랑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가을 햇빛 아래(약간 저녁 때 노을 아래도 좋다)
익어 가는 벼의 색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을 하늘 아래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의 색은
세상의 어느 노란 빛깔보다도 더 찬란하고 아름다운 색이다.
이 삼 년 전인가? 가을 용대리에서 아침에 무심코 내다 본 창밖의 풍경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그 후로는 가을 논의 벼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벅차오르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널찍한 도로에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아 좋았다.
금송리에서 문산으로 접어 드는 길은 따로 인도가 없어서 
차들과 같이 가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차없는 도로를 걸어 본다는 것은 내 경험 상 우리 나라에선 꿈같은 일이다.
그래서 한강 가를 걷는 길이 제일 좋다...
차의 간섭을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은 강가 길이 유일하지 않을까... 
차도를 피해서 개천가의 뚝방길로 올랐다.
원도로에서 들어 왔다가 다시 나가야 되는 불편함이 있지만 차와 같이 가지 않아 너무 좋았다. 
뚝방길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길을 묻고... 물어 물어 문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갔다.
웅진 세무 대학을 멀리 보고 지나고 드디어 LG 사거리 LCD 단지 앞까지 왔다.
거기서 좌회전을 해서 낙하 IC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낙하 나들목에서 다시 자유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가다 묘하게 길이 연결된 것처럼 느껴져 
길 따라 산 속으로 올라 갔는데 아뿔싸...그것이 실수였다.
자유로 옆으로 낮은 산이 있어 그것을 치고 넘어가려 올랐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숲은 우거져 한 걸음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까짓 것 별로 높은 산도 아닌데...하며 계속 전진했지만
갈수록 더욱 더 가로 막는 나무들...나무들...게다가 정체 불명의 철조망까지 나타났다.
이 정도에서 포기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길이 없으니 올라 갈 때나 내려 올 때 모두 힘들기만 했다.
여지껏 올랐던 어떤 산도 이 산보다 힘들지 않았으리라...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찾아 내려 오니 벌써 해는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마음은 급해지고 떨치기 힘든 허망함이 온 몸을 휩쌌다.
그러수록 힘을 내어 이름도 모르는 고개를 넘었다.
파주시 제2 공설 운동장이란 팻말을 지나 고개 정상에 오르니
'문산읍'이라는 바위 팻말이 보였다.
차들이 옆을 달려 갔지만 그래도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목이 말라 '점방'이라도 찾았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문산 읍내에 들어 문산천 다리를 넘어서자 '한스슈퍼'라는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그 다리도 참 맘에 안들었다. 마치 한강의 여러 다리들 처럼
분명히 다리 위에는 인도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자 신호등도 없고 인도가 사라진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눈치껏 무단 횡단을 하고 다리를 넘었다.
열심히 달려가 시원한 사이다로 목을 축이려 했으나..아아...문이 닫혔다.
야속한 슈퍼...목은 점점 더 말라 오고, 마른 침만 삼켜 댔다.
골목 어귀에서 퉁퉁한 아줌마에게 길을 물어 반구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차로만 들락날락했던 문산 나들목으로 난 고개를 넘었다.
벌써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었다.
반구정 앞을 지나 임진각으로 발길을 잡고 사목리 고개를 넘으니 멀리 자유의 다리가 보인다.
전에는 희끄무레한 색깔로 우중충하게만 보였는데
하얗게 새로 색칠을 해서 멀리서 보아도 느낌이 산뜻했다.
이제는 한 길로만 부지런히 가면 된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이루었다는 앞선 성취감에 마음이 뿌듯했다.
어두워지는 날인데도 한쪽에선 벼베기가 한창이었고
멀리 앞에는 임진강 역에 서있는 기차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반가움이란....
아무 생각도 없이 얼굴엔 웃음이 떠오르고 마음이 화안하게 넓어짐을 느낀다.
그런데 마지막...이건 또 무슨 일인가...
바로 위에 임진강 역이 있고 기차가 서 있는데 진입할 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풀섶을 헤치고 언덕을 올라가 
철로를 건너 기차 앞을 지나 플랫폼으로 올라 섰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거창한 사업보다 아주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큰 것 만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정치가 아니라 
아주 작은 데에서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닐까 한다. 
요즘 지자체마다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이런 것은 극히 아주 작은 일일텐데..

임진강 역으로 올라가 평양 209Km라는 표지판 앞에 서니 5시 29분...
길을 헷갈림 없이, 아니 세밀한 지도만 가져 왔어도 시간은 훨씬 단축할 수 있었을텐데...
8시간이 넘는 긴 장정 끝에 마침내 목표점에 도착했다.
머릿속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평양이 있었다.
통일이 된다면 제일 먼저 개성까지 한번 걸어 볼 것이다.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자유 여행을 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
하지만 칼자루를 북쪽에서 쥐고 있으니 그저 애타게 하회만 기다릴 뿐이다.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역사 속에 사장된 이즘이라 생각한다.
더 잘 먹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욕구가 아닌가?
균등한 분배는 사회 복지 정책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소유함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적당한 선에서 장점을 절충하는 것이 좋을듯도 싶은데...
짧은 지식과 소견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고
나보다 많이 배우고, 더 연구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
나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되겠지.....ㅎㅎㅎㅎ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없는 것 같지만 끊어지면 돌아가면 되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좀 고생스럽지만 산 넘고, 물건너면 된다. 길이 없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가지 않으려는 것이고 나에게 뜻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앞으로 길을 만들면서까지도 나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지간에 통일이 되어 개성 평양까지, 원산 함흥까지 걸어서, 때로는 배를 타고 갔으면 정말 좋겠다. 아니 그보다 먼저 한강을 따라 임진강을 따라, 마음대로 걸어 봤으면 좋겠다. 요즘 군사 기밀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위성 사진 하나면 부대 위치에서 부터 부대 이동 까지 모두 자세히 나타나는데... 백보 양보하여 낮시간, 일몰 시간까지 만이라도 증명서 확인하고 출입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우리 나라 모든 도로에 보도를 아주 좁게라도 설치했으면 한다. 나같은 뚜벅이를 위해 길바닥에 돈을 깔 미련한 정부가 아니기에 이건 내 욕심으로만 끝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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