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예봉산 1

moonbeam 2006. 11. 2. 07:35
  
덕소역에서 엉겁결에 새재골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래 계획은 팔당 쪽에서 오르려 했는데
예봉산 입구라는 표지가 붙어서 아무 생각없이 올라 탔더니
예봉산 코스 중 맨 끝에 있는 새재골로 가는 차였다.
차가 지나는 시골길엔 음식점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오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평범한 가을 시골 모습이다.
드디어 새재골에 우리 일행을 던져 두고 버스는 다시 돌아 나가고...
아무도 없는 언덕길에 우리는 내팽겨쳐졌고...찬바람만 횡하니 불어 온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요즘 어느 산엘 가도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모처럼 조용하고 호젓한 산길을 만난 것이다.
얼마만에 이런 고요함을 산에서 맛 본 것일까?
간 데마다 인간 띠를 잇듯 쇠사슬로 얽어 맨듯한 산행을 했었는데...
하긴 요즘 '참살이' 열풍으로 온 국민이 산 위에 올라 앉은 형상이니...
산행 시작...
등산 안내 표지판 앞에서 만난 아저씨는 우리에게 친절히 길을 알려 주었다.
일단 운길산과 예봉산이 갈라지는 곳까지 올라 가자...
예봉산은 토산이라 발바닥에 닿는 감촉도 아주 좋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산에 오른다.
숲도 제법 우거져 산속에 파묻히는 느낌도 좋다.
산길을 가는 것은 산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내가 산 속에 묻히고 산은 나를 받아 들여 제 몸의 일부로 만든다.
오르막길에도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음은 산이 나를 한몸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갈림길에 올라 섰다.
갈림길엔 긴 나무 의자가 있고, 
먼저 올라 온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땀을 씻으며 앉아 있다.
일단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막걸리의 화신 홍탁이 준비한 3병, 거기에 센스있는 미영공주가 얼려온 막걸리 3병..
도합 6병이나 막거리를 확보했으니 마음이 넉넉하기만 하다.
한잔 마시고 옆에 앉아 있는 퉁퉁한 아저씨에게 한잔 권하고...
그저 기분이 좋기만 하다.
680 정도의 산이라 힘도 들지 않을 것이니 자연히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여유만만이다.
  
운길산 쪽은 버리고 예봉산 팻말을 따라 올랐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으나 가파르게 올라 가는 길을 택했다.
숲이 우거지고 그늘진 쪽이라 밟히는 땅이 푸석푸석하지 않아 좋다.
깔려 있는 낙엽은 양탄자처럼 부드럽다.
우리 일행만 걷는 산길은 그 자체로 족하다.
부담도 없고 힘도 들지 않아 그저 웃음만 돈다.
깔딱고개를 힘차게 치고 오르니 앞이 탁 트인 곳이 나온다.
덕소가 한눈에 들어오고 강건너에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이 보인다.
높은 곳에 오르는 기분은 바로 이것이다.
정상에 올라 마음을 열고 트인 먼 곳을 바라보는 맛!
그 맛을 어디에 비하랴...
바로 옆에는 막걸리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덕을 넣고 누룽지로 빚은 술을 한잔 걸치니 세상이 다 내 것이다.
내려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눌러 앉아 버릴까....
게다가 밧데리가 다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천금보다도 귀한 밧데리를 구했으니 긔 더욱 기쁘고야...
사람좋은 웃음을 띠면서, 아까 한잔 얻어 먹었다는 핑계로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우리 술값을 미리 내고 내려가는 통에 
우리는 공짜술을 얻어 먹은 게 되어 겹경사를 만나고..
단체 사진도 찍고 독사진도 찍고....
단체 사진을 찍어준 아저씨는 술도 한잔 걸쳤는지
너무 정성을 들여 오히려 미안하기까지 하고...(오히려 사진은 거멓게 나온듯)
우리보다 앞서 앉았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양보하여(이건 정말 산사람들의 미덕이다)
우리 일행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내려다 보는 전망 좋은 자리에 앉으니 두둥실 떠서 바로 하늘을 날아 갈듯하고... 
아... 너무 좋다...
     
전망이 좋은 이곳은 앞쪽의 나무도 다 쳐서 인공으로 그렇게 만든 흔적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가 패러글라이딩 활공 장소란다.
내가 보기에는 뜨기 전 활주하는 길이가 좀 짧은 듯도 한데...
아무려면 어떠랴...
꼭 글라이더를 타고 오르지 않아도 우리들 마음은 이미 하늘로 둥둥 떠서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도 가고 강건너 검단산에도 오르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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