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예봉산 2

moonbeam 2006. 11. 2. 07:37

바로 내려와 다시 오르니 喆文峰.
茶山 형제가 문리를 깨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봉우리엔 쉴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있어 좋았다.
잠깐 쉬고 약 500m 떨어진 예봉산으로 향한다.
철문봉에서 약간 내려가니 좌우로 가득한 억새풀이 가득하다.
가물지 않았으면 훨씬 더 풍성한 억새들을 만났을텐데...아쉽다..
막걸리 파는 움막을 지나면서부터는 양지 쪽이라 길이 팍팍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먼지가 풀풀 솟아 오른다..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색깔을 변해 보지도 못하고 말라 떨어져 바닥에 깔린다.
안타깝다...인간이 아무리 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자연의 힘이 아닌가.
말라 비틀어진 낙엽들이 하도 애처로워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곧 예봉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아 소란했다.
예봉산 오르는 길이 예닐곱이나 되는데 
그것이 다 이곳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저잣거리나 다름없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자칭 감로주라 부르는 
예봉산 막걸리를 파는 주점이 있다. 
이곳 술은 탁하지 않고 맑다. 
달짝지근하고 무슨 과일주 같다.
청탁불문이니 가릴 것이 없지만 
걸리지 않는 맛 때문에 
몇 잔 걸치다가는 그냥 대취할 것 같다.
마침 우리가 가져온 술이 넉넉하기에 
욕심내지 않고 목만 축였다.
바로 평평한 곳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약간 경사가 있지만 평평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평온한 때문이리라...
이야기꽃을 피우며 김밥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다시 내려갔다가 오르니 율리봉. 밤이 많은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다.
예봉산에는 작은 봉우리마다 앉을 수 있는 동그란 나무 등걸을 놓아두어 쉬기 편하다.
또 자연적으로 곳곳에 멋진 소나무 쉼터가 있어 너무 좋고
작은 산이면서도 조선조 다산 형제나 근세의 여운형 등의 인물 일화도 곁들여 있어 재밌다.
 
잠시 쉬고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니 
예빈산이라 부르는 직녀봉.
직녀봉부터는 
사방의 전망이 아주 좋다.
뒤로는 지나온 예봉산이 우뚝 서있고, 
오른쪽에는 골짜기 하나 건너 
운길산이 보인다.
검단산은 강을 건너 
바로 뛰어 올듯이 다가서고
앞으로는 두물머리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운길산 수종사에서 보는 두물머리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직녀봉에서 내려보는 풍광이 단연 으뜸이다.
두물머리의 모습은 편안함. 그 자체이다.
곧바로 팔을 뻗치면 손이 담가질 듯하고 
한발만 내디디면 물위로 풍덩 빠져들 듯싶다.
양수리 마을 건너 이쪽편 골, 
조안리의 모습은 온통 노란색이다.
나는 노란색 중에 
이즈음의 노란색을 가장 사랑한다.
채도가 높진 않지만 풍요와 안정, 
안온한 느낌을 준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가...

직녀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산행의 말미에 다시 오르지 않고 
얼마 동안 계속 내려만 가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견우봉을 지나 내려가니 평평한 곳에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아래에서부터는 꽤 되는 거리인데도 
철봉, 역기 등 기본적인 기구가 들어서 있다.
반드시 누군가의 열성이 있었음이리라.
하긴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열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가진 
몇몇의 인물에 의해서
사회가 변화하고 주도되는 것이 아닌가.
역기도 6,70년대의 그것이다. 
시멘트로 만든 투박한 모습에 웃음도 나왔지만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잠깐 쉬면서 남은 막걸리도 마시고...

이어 가파른 천주교 공원묘지를 내려간다.
매번 양평 쪽에서 차를 타고 오면서 
왜 이런 곳에 묘지가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올라와서 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탁 트인 전망에 가만히 누워 세월을 보내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내려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뒤로 돌아 내려가기도 하며 
굴러가듯이 내려갔다.
하산의 끝머리에는 옛날 시골밥상집이 있다.
새로 길이 뚫려서 어찌 될까 했었는데
예전보다 더 크게 확장한 모습을 보니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싶었다.
그렇지...새것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니지...
아무리 빠르게 세상이 변한다 해도 간직해야 할 것도 참 많은 세상이다...
원래 계획은 팔당 쪽에서 올라 운길사까지 종주하는 것이어서 산행 들머리엔 무턱대고 버스에 올라탄 후회가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러나 산행을 마치고 생각해 보니 오늘 코스도 꽤 괜찮은 코스였다. 예봉산의 여러 코스는 운길산까지를 목표로 하여 대개 중간에서 오르거나 내려가는 것인데 오늘 우리가 한 코스는 완전한 예봉산 종주 코스였다. 그리 높진 않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고 나름대로 역사성도 있고 특히 예쁜 소나무가 많으면서 앉아 쉴만한 곳이 많고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아 정말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오히려 다음에는 아예 이 코스를 목표로 한다면 더 느낌이 있고 여유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특히 눈이 온 다음이라면 정말 멋진 코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When October Goes - Barry Mani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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