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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

비가 마구마구 퍼부을 때 나왔다. 걷다 보니 점점 잦아든다. 호수공원에 다다르자 비는 거의 그치고...그래도 사람은 뜸하다. 다리 밑 큰 평상에는 하나씩 누워 팔을 쳐들고 있다. 지하철에서는 마카 고개를 수그리고...휴대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사람이 오가지 않아 전통공원 정자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기분이 좋다.ㅎㅎㅎ 일어서려는데 비가 다시 쏟아진다. 기분이 더 좋아진다. 폭우에 기분이 좋아지다니...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ㅎㅎㅎ 내 기분이야 좋지만 한편으론 살짝 우울하기는 하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비. 이맘때엔 해가 쨍하니 비쳐줘서 모든 열매가 진하게 익어야 하는데... 쓸데없는 논란만 일으키고 항상 지는 슬쩍 빠지는 썩을 놈이 떠오른다. 요즘 비처럼 정말 필요없..

중얼중얼 2023.08.29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비를 맞이하러 나와서 흠뻑 적시고 머금는다. 춤추며 내리는 비는 나를 둥둥 띄워 옛날로 흘려 보낸다. 걷는 내내 개구쟁이들은 옆에서 뛰며 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간다. 따다닥 따다다닥 소리는 옛날 대나무 자루에 비닐을 씌운 우산을 떠올리게 한다. 약한 비닐이 찢어지면 다 걷어버리고는 대나무 작대기로 칼싸움도 하고 야구 배트로 공을 날리기도 한다. 살이 달린 뭉툭한 부분을 떼어 버리고 자치기 할 때도 썼지… 사람도 없는 너른 공원에서 옛날 어린 동무들을 만나서 비맞은 새앙쥐가 되어 마음껏 뛰논다. 아랫도리는 다 젖었지만 기분은 비구름 위 햇빛 쨍뺑한 하늘로 솟아 올랐다.ㅎㅎㅎ (20210831)

중얼중얼 2021.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