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미황사 --- 2005년 2월인데 카페에 있던 거 옮김...

moonbeam 2015. 1. 17. 07:18

   아침에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도착이 늦다.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고픈 배를 달래고
  해남에 다다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매일시장안에 있는 매일식당이다.
  이 곳에서는 아주 서민적이고, 
  푸짐한 한정식을 먹을 수 있다.
  1인분에 5,000원인데 여러 반찬 외에도
  젓갈이 스무가지도 넘게 나온다...
  나같은 촌놈은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다.
  게다가 식육점을 같이 하고 있어서  
  맛나고 싱싱한 제육을 한접시 볶아 먹고
  한참 있다가 나온 갈치 조림의 맛이란...
  아주 넓직하고 큰 그릇에 나온 
  갈치조림의 맛은 정말 환상적이다.
  거기에 더해진 시원한 탁배기 한잔의 맛..
  말이 필요없는 여행 음식의 성공이다.
  탁월한 선택!! 바로 그것이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고장의 음식을 있는 그대로 특색있게 맛보는 즐거움은 보고 듣고 느끼는 즐거움보다 덜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잔뜩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미황사를 찾았다. 미황사의 첫대면은 기쁨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이다. 절들은 대개 산 속에 있으면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심하면 공원 입장료에다 주차료 까지 이중 삼중으로 내는 곳이 허다하다. 그런 와중에 몇푼 안되는 것이지만 내지않고 올라갈 수 있다니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 마음이 뿌듯했다. 미황사는 우리 육지에서 최남단에 있는 절이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남으로 달려 맨아래 뭉친 두륜산..그 맥의 맨 끝이다. 달마산은 가을처럼 시린 하늘을 벗삼아 그저 포근히 뒤에서 감싸고 있다. 우뚝 솟아 힘을 가지고 눈을 부릅뜨면서 나를 짓누르는 장수의 형상이 아니고 팔을 펴고 어서 오라는 듯이 가슴을 열고 있다. 파아란 하늘을 등에 업고 차곡차곡 포개지고, 길이로 나란히 세워진 바위 암반의 모습은 혼자 두고 보기엔 너무 아까운 풍광이다. 대웅전의 단청은 다 벗겨져 맨나무의 몸으로 나를 맞이한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 어설프게 울긋불긋 천한 색을 덧칠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나를 꾸미지 않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 맨몸으로 살을 맞댐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수줍은 산골 색시와의 첫날밤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썩지도 않고, 불에 타지도 않는 약품을 개발하여 투명한 빛으로 이 기둥과 집에 입힐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요즘 어딜 가나 요란한 불사들로 절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염불엔 맘이 없고, 오로지 휘황찬란한 겉모습에만 진력한다. 겉모습과 마음속까지도 하얗고 투명하게 정진해야 할 것인데 아니, 그렇게해도 해탈의 길이 나타나지 않을 진대 눈에 보이는 허황된 것만 좇고 있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긴 기독교도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지..... 비우는 것보다 채우기에 급급한 교회와 사찰.... 나눠주기보다 챙기기에 바쁘기만한 종교인들... Oh! QuoVadis Domine.....
수도란 눈에 보이지않는 것과의 싸움이요,나 자신의 모든 겉모습을 버려야 할 것인데... 그리곤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여 발가벗은 나, 진정한 나를 만나야 할 것인데... 아름답고, 멋지고, 자비로운 나만을 포장하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이대로 가면 나처럼 무지하고 몽매한 놈은 도대체 누굴 믿고 따라서 어디로 가야 하나?
대웅전 옆 요사채 뒷뜰엔 장독대가 있다. 요즘엔 장을 사다 먹는 편리함이 있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도 담근 장맛이야 따라갈 수 있으랴. 옹기종기 모여 비낀 볕을 받고 있는 독들의 모습은 포근함 그 자체다. 뚜껑을 열고 손가락으로 쿡 찍어 텁텁한 그 장맛을 보고 싶었다.
남도의 독은 배가 불룩하니 나와서 아주 만족스런 모습이다. 마음껏 포식한 후에 배를 두드리고 섰는 풍요의 모습이다. 이참에 독뚜껑 위에다가 빙그레 웃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씩 올려놓았으면 하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독의 볼록한 배는 어머니와 같은 넉넉함도 준다. 내 아이 먹이고, 남의 아이까지 먹이는 엄마의 풍성하고도 육감적인 젖무덤이다. 내남편, 내아이만 눈에 보이고 노심초사하는 요즘 미시 엄마들의 깡마르고 뾰족한 젖이 아니다.
요사채를 지나 멀리 안개낀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나무들로 둘러 싸인 숲길을 만난다. 남쪽의 겨울산은 북쪽의 것만큼 삭막하거나 메마르지 않다. 사철 늘푸른 활엽수들과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어서 오늘처럼 포근한 날이면 겨울인지 봄인지 계절을 분간하기 어렵다. 미황사만 해도 오르는 초입부터 굵은 동백나무들이 울창하게 길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아서 동백의 정열을 볼 수 없어 아쉬웠으나, 그 대자연의 엄정한 순리에 따르는 때를 어찌 나같은 속된 놈이 쉽게 만날 수 있으랴 생각하니 동백의 흐드러짐을 못본 것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도탑으로 오르는 길은 차가 다닌 흔적이 보여 모처럼의 편안한 걸음에 약간의 짜증을 자아낸다. 물론 부도탑 옆의 절집을 수리하기 위해 자재들을 운반하려니 어쩔 수가 없었겠지만 욕심을 낸다면 그것조차도 등짐을 지고 실어 날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을 실어 나르면서 수행을 하고 시간에 구애 받지않고 하나씩 하나씩 절집을 세워간다면 그것 자체가 성불이 아닐까....
또, 정말 없는 것은 가져와야 하겠지만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다른 데서 가져오지 말고 거기에서 나는 돌과 흙, 나무를 써서 하늘과 어우러지고 달마산과 어우러지고 앞바다와 함께 하는 절집을 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렇게 바란다면 수행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는 것일까...
부도탑이 모여 있는 옆에는 미황사의 연기설화가 적혀있는 진각국사 공적비가 있다. 그 한발치 옆에는 욕조로 보이는 석조가 있는데.... 그냥 방치된 것 같이 보인다. 그것도 분명히 자기 자리가 있음직한데 혼자 저리 떨어져 있다가 종내는 어디로 사라질까 두려워 함은 내가 소심한 탓일까?
미황사에는 두 개의 하늘이 있다. 하나는 달마산 위로 펼쳐진 하늘이고, 또 하나는 해원마을 아래 저멀리 보이는 바다하늘이다. 낡이 맑으면 이 둘을 다 볼 수 있겠지만 오늘따라 바다 쪽에는 희뿌옇게만 보여 다른 하늘은 마음으로 보아 상상만 했다. 미황사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보는 것이 장관이라 하였는데 때를 맞추지 못해 내려오는 길은 아쉬움만 뚜욱뚝 떨어졌다. 마치 피지도 않은 동백이 내 마음 속에 비가 되어 떨어지듯.... 송호리로 차를 몰아 하얀 모래밭에서 보는 일몰은 장관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온통 해를 빨아 들이는 것처럼 해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는는 해를 보니 내일 아침에 다시 뜰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걱정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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