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한강 르네상스

moonbeam 2006. 10. 4. 20:06
 
모처럼 기분좋은 뉴스를 들었다.
더욱이 매일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나에게는 
너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지금 한강의 어떤 다리든 건너는 동안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앞에서, 또는 뒤에서 
질풍처럼 달려오는 차를 보고는 
두려움까지 느낀다.
그래도 구행주대교가 열려 있을 때엔 
그래도 좋았다.
지금은 구행주대교를 완전히 막아서 
올라 설 수 조차 없으니....
그 한가운데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 즐거움도 
다리의 폐쇄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 가다가 버스를 타고 가든지
아니면 그저 차바퀴가 뿜어내는 먼지와 매연에 
몸을 내맡기고 뒤통수로는 
강렬한 위협을 느끼며 
잰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그런 판국에 다리의 양쪽 차로 하나 씩을 
인도로 개발한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강의 다섯개 다리에 양쪽으로 인도가 생긴다니...
ㅎㅎㅎ..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서울은 삼각산이라는 참 좋은 산이 있어 
축복받은 도시라 한다.
물론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울 근교의 어떤 산보다도 삼각산이야말로 
하늘의 축복이다..
아니면 현명한 조상님네들의 축복이래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는 겹겹이 내린 축복으로 한강을 꼽고 싶다.
매일 한강을 뚜벅뚜벅 걸어서 건넌 다음부터는
그리 좋아하던 삼각산보다도 더한 축복으로 느껴진다.
그 긴 강물을 따라 건너는 것도 좋고 
그 유장한 흐름을 굽어 보면서 걷는 건 더욱 좋다.
한강은 관리도 참 잘한다. 사시사철 갖가지 꽃을 심어 변화를 주는 것은 이제 반복되는 일일 뿐이다. 때로는 철에 관계없이 코스모스 밭이 펼쳐지기도 하고 요즘 양화대교 아래 부터 성산대교까지 가는 길에는 곳곳에 메밀밭이다. 고구마가 심겨져 있기도 하고, 빨갛고 키작은 맨드라미에 노란 맨드라미까지 있다. 올림픽 대로 밑의 축대 옹벽에는 능소화가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가양대교에서 방화대교에 이르는 길에서는 해바라기가 환영 군중처럼 도열해 있다. 성산대교 근처에서는 힘찬 분수가 높이 솟아 오르고 그 옆으로는 요트의 행진이 이어진다. 밤섬 안에는 올 장마로 새로이 늪이 하나 생겨 오리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하류 쪽으로는 길게 모래톱이 생겨 새들의 새로운 식당이 된 것 같다. 양화대교 바로 위쪽에는 장마가 지면 잠기지만 평소에는 새들의 지친 날개를 쉬게 해주는 작은 바위섬도 있다. 한강이라는 제목으로 치밀한 구성과 현란한 필치를 자랑한 소설가도 있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한강은 우리 모두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직도 마포대교 남쪽 밑에는 노숙자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있고, 아침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명상에 잠기는 도인도 있다. 혼자 나와 어코디언을 부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시간을 즐기는 아가씨도 있다.... 물론 자전거, 인라인, 달리기, 또는 나처럼 뚜벅이.... 헬스장처럼 돈 들지 않고 골프장처럼 부킹에 신경 안써도 좋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게 즐기고, 공유하고 나누는 곳이 한강이다.... 내가 서울 시장이라면 보행자 전용의 다리도 하나 만들텐데.... 어서 빨리 넓고 편안한 다리를 가로 질러 한강을 건너고 싶다...
Sun rise sun set / 지붕 위의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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