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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벌써 7월이다. 열두 달을 둘로 나누면 나머지 반이 지나갔다. 세월은 왜 이리도 빠를까... 잠시라도 멈춰주면 나도 좀 쉴 터인데... 비도 오고...몇 년 전 기억을 소환해본다. 밤꽃도 거의 지고 거의 모든 식생들이 열매를 맺는다. 하물며 아주 작은 작은 풀 까지도..... 열매는 겉이고 속은 씨앗이다. 열매는 화려해서 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지만 씨앗은 그냥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안에 있는 씨앗인데.... 예쁜 꽃을 피우고 보란듯이 열매를 다는 것은 속에 있는 씨앗을 꺼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꽃과 열매가 본질은 아니다. 꽃과 열매는 씨앗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한해의 반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반을 맞는 시점에서 떨어진 꽃을 아쉬워 하며 탐스런 열매에만 눈을 맞추려 하지는 않..

중얼중얼 2023.08.28

은퇴

‘형 나 은퇴했어’ ‘그래 몇 년 전 정년했지. 먼 소리여?’ ‘아니 그게 아니구...’ 50대 나이 들어 만났지만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 호형호제하면서 여지껏 만남을 이어오고 친구. 나는 서북쪽 끝 그는 동남쪽 끝. 사는 곳이 먼 만큼 가끔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자란 공통점이 있어 만나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니 서로 반갑고 즐겁기만 하다.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고 교회 장로직도 은퇴를 선언했단다. 물론 목사와 장로들이 말리는 건 당연하고... 그 가운데 동갑인 장로가 ‘뭐...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세월이 가면 자동적으로 은퇴하잖어...그러니 그냥 이름만 달고 있다가 같이 은퇴하자구.’ 이 말에 팩 돌아서 소리를..

중얼중얼 2023.08.28

노자의 버려야 할 네 가지

노자가 제시한 버려야 할 네 가지 驕氣, 多慾, 態色, 淫志. 어떤 이가 출전이 도덕경이라고 해서 81구절을 다 찾아봤지만 도덕경에는 이런 단어들이 없다. 각설하고... 驕氣는 말 그대로 교만한 기색이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다. 겸손함이 없고 완장을 찬 오만함만 보인다면 스스로가 유치하고 졸렬한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은 누구든지 가지면 안 된다. 특히 지도자 자리에 있는 者라면... 나만 옳으니 무조건 직진하면서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감히 칼자루를 쥔 나에게 대드는 것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때려 잡는다. 多慾. 원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욕심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지나친 욕심, 자기만의 욕심에 집착하는 경우엔 자신은 물론 주..

중얼중얼 2023.08.28

더위

이젠 이별해야 한다. 헤어질 결심을 했다. 헤어져야만 한다. 이 여인을 떠나보내야만 한다. 그런데 열정에 불타는 이 뜨거운 여인은 도무지 갈 생각이 없다. 여인은 나를 무시한다. 철저하게 내 뜻을 무시하는 것은 여인의 천부적인 권리다. 여인은 뜨겁게 달궈진 몸으로 매일 밤낮으로 나를 괴롭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지 맘대로 핥고 격한 애무를 한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길고 긴 나날 동안 끈질기게 내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매일 진땀만 흘리고 있다. 하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내 운명. 매년 이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괴롭히지만 올해엔 유난히 긴 시간 동안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어제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운우지정을 나누고 난 후 상봉..

중얼중얼 2023.08.25

맨발걷기

아침에 빗줄기가 한바탕 지나가서 땅이 질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다. 막상 걸어보니 오히려 찰싹찰싹 발에 닿는 촉감이 좋다. 비 때문에 잔 돌들이 튀어 나온 게 많아 약간 신경이 쓰이지만... 비 예보 때문인지 사람들이 적어 그 또한 좋다. 마주치는 맨발들, 하얗게 드러나는 발들이 오목조목하니 참 예뿌다. 감싸고 감췄던 발을 살며시 내놓고 걷는 걸음걸이 또한 아름답다. 微吟緩步랄까. 맨발로 걸으면 자연히 천천히 걷고 살피며 걷는다. 혼자 나직이 노래도 하고... 전에는 운동이랍시고, 땀을 빼야 된다고 마구마구 빠르게 걸으며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느릿느릿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더 큰 기쁨을 느낀다. 빠른 걸음으로 휙 지나침보다 느림 가운데에서 여유있는 맛을 찾는달까... 비가 온 후 적당히 젖은 흙..

중얼중얼 2023.08.25

본색

용궁이라는 곳에 있다 해서 진짜 용인 줄 알았다.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서 용맹스럽고 무서운 호랑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는 짓거리를 보니 이도저도 아닌 무뇌아가 분명하다. 花無十日紅이다. 잠깐은 멋지게 보이고 서슬이 시퍼렇겠지만 곧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해가 비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버섯이나 곰팡이균처럼... #용궁 #호랑이 #무뇌아 #화무십일홍 #버섯 #곰팡이균

중얼중얼 2023.08.21

누구든지 / 이원도 시낭송 감상

https://youtu.be/6ujwSpjJBQU 누구든지 / 이원도 파란 새싹에서 붉은 열매를 보고 수많은 스침 속에서 하나의 눈망울을 기억할 수 있다면 듣지 못하는 이에게 눈으로 말할 수 있다면 시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떨어진 꽃잎에서 향기를 맡아낼 수 있고 흘리는 땀에서 사람의 냄새를 찾아낼 수 있다면 말 못하는 이의 가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시를 못 써도 좋습니다. 숨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고 힘든 하루를 씻어 내리는 탁배기 한잔과 어울릴 수 있다면 보지 못하는 이에게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다면 정말 시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슬퍼하고 신음하고 웃고 화내며 떠들썩하게 때론 아주 조용하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면 더 좋겠습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시 감상 2022.12.22

성탄제 / 김종길

https://youtu.be/5YUHJCluDzs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

시 감상 2022.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