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404

연잎의 독백

연잎의 독백 장맛비 아무리 세차게 내리쳐도 나를 젖게 하진 못한다. 더러운 진흙물이 나를 덮쳐 썩어 문드러져도 나는 가라앉을 수 없다. 차곡차곡 쌓인 물방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땐 내 몸을 살짝 눕혀 흘려 버리면 그만이다. 망녕된 무당들이 모략과 선동의 칼춤을 추어도 나의 순박함은 베어내지 못한다. 나의 꿈이 꽃이 아니듯 내 욕심에서 비켜 서있으니 부귀영화와 헛된 이름에 물들지 않아 버릴 것도 없고 지고 갈 짐도 없다. 모두가 꽃을 흠모하고 꽃이 되려 하고 꽃을 가지려 하지만 어떤 색깔에도 물들지 않는 너른 잎으로만 어설프게 남아 있으련다.

미메시스 2020.07.14

뻐꾸기

산길을 걷다가 들리는 뻐꾸기 소리 아까시 꽃 위로 뚜욱뚝 떨어지네 고개 들어 이리저리 휘둘러 보니 높은 가지 끝에 조그맣게 웅크린 모습. 행여 날아갈까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나무 밑 가까이 정물처럼 다가서고… 소리없는 응시. 한순간에 시간과 공간은 멈춰 서고 새도 없고 소리도 없고 세상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 팔 들고 선 채로 돌이 되었네. 한참을 기다려 다시 들리는 노랫소리. 그것도 잠깐. 이내 다시 침묵. 확 트여 있지만 닫혀진 공간. 노랫소리가 한 켜 한 켜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내 속에 쌓여 가는 애달픈 기쁨. 그리고 찾아낸 당신의 마음 한 조각…

미메시스 20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