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감상 21

누구든지 / 이원도 시낭송 감상

https://youtu.be/6ujwSpjJBQU 누구든지 / 이원도 파란 새싹에서 붉은 열매를 보고 수많은 스침 속에서 하나의 눈망울을 기억할 수 있다면 듣지 못하는 이에게 눈으로 말할 수 있다면 시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떨어진 꽃잎에서 향기를 맡아낼 수 있고 흘리는 땀에서 사람의 냄새를 찾아낼 수 있다면 말 못하는 이의 가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시를 못 써도 좋습니다. 숨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고 힘든 하루를 씻어 내리는 탁배기 한잔과 어울릴 수 있다면 보지 못하는 이에게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다면 정말 시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슬퍼하고 신음하고 웃고 화내며 떠들썩하게 때론 아주 조용하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면 더 좋겠습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시 감상 2022.12.22

성탄제 / 김종길

https://youtu.be/5YUHJCluDzs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

시 감상 2022.12.22

낙 엽 / 복효근

https://youtu.be/8uwObvqh03c 낙엽 / 복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저 찬란한 투 신. 낙엽의 시간이 왔습니다. 사실 낙엽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섭리이자 몸부림이지요. 그러나 그 자체로 보면 떨어짐이요, 그 떨어짐은 곧 죽음입니다. 1연에서 ‘밤낮 떨었을까’라는 표현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은 없겠죠.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라고 했지만 사실 ‘십여 초’도 긴 시간이지요. 그 십여 초 동안 얼마나 많은 영상들이 ..

시 감상 2022.11.07

원시 (遠視)/ 오세영

https://youtu.be/y2Nifymc7WU 원시 (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시인으로 학자로 교육자로 살아온 오세영 선생은 시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많이 알려진 ‘그릇’이란 시에서 차갑고 이성적인 면 그리고 날카로움을 보여줬는데 이 원시(遠視)에서는 그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날카로움은 접고 편안한 느낌? 아..

시 감상 2022.10.03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https://youtu.be/jSJNpizzVrU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 시인은 철학을 전공한 시인이지요. ‘섬’이란 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잇고 싶은 바람을, 실존을 깨닫고 싶은 바람을 간명하게 짧은 두 줄로 묘사했지요. 이 시는 둥근 공의 모습을 통해서 강한 삶의 의지와 다짐을 표현하고 있네요. 문장의 마지막에 놓일 ‘살아봐야지’란 시어를 맨앞에 반복해서 운율을 살리면서 아울러 스스로의 다짐을..

시 감상 2022.09.13

부자 시집 하늘샘 / 윤교식 윤주섭

https://youtu.be/Na78Nw9uCRk 부자시집 ‘하늘샘’ 오늘은 부자시집을 읽어봅니다. 돈 많은 부자의 시집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쓴 시를 모아 펴낸 공동시집 ‘하늘샘’입니다. 해군 장교 복무 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아들 윤주섭과 하늘의 사명을 받아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아버지 윤교식 목사.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아들과 아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가 각자의 삶에서 받은 느낌을, 같은 듯 다른 서로의 시선을 함께 모아 놓았네요. 먼저 아버지의 시 한 편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 윤교식 소리 없이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강가로 가야겠다. 잿빛 하늘에 비로소 피어나는 하얀 꽃송이를 가르쳐 주고 먼 하늘을 조용히 내려와 말없이 강물에 스러질 줄 아는 눈꽃들의 순한..

시 감상 2022.08.23

희망을 위하여 / 곽재구

https://youtu.be/yOo7_4jUcTU 희망을 위하여 / 곽재구 너에게로 가는 마음의 길이 굽어져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네게로 향하는 불빛 잃은 발걸음들이 어두워진 들판을 성난 이리의 목소리로 울부짖을지라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껴안은 두 손을 풀지 않으리 곽재구 시인은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묘사한 ‘사평역에서’란 시로 많이 알려졌지요. 또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포구들을 돌아보고 기행수필집 ‘포구기행’을 썼구요. 소설가 임철우는 ‘사평역에서’란 시를 모티브로 해서 ‘사평역’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지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 오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열정이 뜨겁게 달아오르..

시 감상 2022.08.23

동해바다 / 신경림

https://youtu.be/0ykBvbaYQGQ 동해 바다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하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신경림 시인은 1970년대에 ‘농무’라는 시를 발표해서 군화의 서슬이 시퍼랬던 당시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개발독재 논리와 산업사회로 박차를 가한 시대상황에서 궁지에 몰린 농촌의 열악한 상황을, 하층민중의 서정성을 ..

시 감상 2022.08.23

청포도 / 이육사 시 낭송 감상

https://youtu.be/V30G2vPjeAw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와 윤동주는 일제 말기의 저항시인으로 해방을 간절히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두 분 다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육사는 남성적이고 강한 시, 윤동주는 여성적이고 고백적인 시를 주로 썼지만 짙은 민족애와 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갈망 등은 공통점..

시 감상 2022.07.26

비 / 정지용 시낭송 감상

https://youtu.be/4Mlx2jCgT68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 시인은 납북되어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 문학계의 거목인데 한때는 이름조차 거론하지 못하다가 80년대 이후에 해금되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지요. 작년에 유명을 달리 한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함께 부른 ‘향수’란 시도 정지용 선생의 작품입니다. 원시는 두 줄씩 끊어서 4연으로 배열을 하고 있어요. 짧은 구절의 배열을 통해 여백과 휴지의 미를 살린다고 흔히 이야기 합니다. 이 시는 비가 내리기 직전..

시 감상 202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