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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굽는 집

채우지도 못하고 비우지도 못한 마음으로 월정사를 나오다가 차나 한잔 하면 마음이 나아질까 해서 딱히 아는 데도 없어 한 군데 들어가니 사람들이 좀 많다. 돌아 나와 천천히 오다 보니 건너편에 눈에 띄는간판. ‘그릇 굽는 집’ 아마도 쥔장이 도예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 느낌? 약간 기대를 하고 앞에 서니 민화풍의 호랑이 돌조각이 반긴다. 1층에는 긴 탁자가 있고 곳곳에 가득 진열된 찻잔과 접시. 푸른 빛이 감돌아 무척이나 신비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2층을 오르니 와우...작은 갤러리. 작은 토우들, 달항아리, 찻잔 세트...특별히 눈에 띄는 검은 인체 토르소. 편한 소파에 기대 잠시 눈을 붙여도 좋고 여럿이 함께 이야기 나눠도 좋고... 차만 파는 곳이 아니라 쥔장의 손때가 묻어 있는 이런 곳이 나는 좋..

우왕좌왕 2021.02.19

월정사

오랜만에 고즈넉한 겨울 산사를 느끼려고 월정사에 갔는데... 눈에 보이는 현란한 불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한탄스럽다. 어설픈 내 생각엔 적광전 앞에 구층석탑만 오롯이 있으면 좋으련만 고색창연한 탑 바로 앞에는 미륵상이 새뜩하게 앉아 있고 온통 주위에는 멋진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어느 한 곳 눈을 둘 데가 없구나... 절은 그냥 절로 있는 것인데 사람의 손이 마구마구 더해져 더 이상은 저절로 있지 못하는 곳이 되었네... 게다가 1인당 입장료가 5,000원에 주차 요금 4,000...너무한 거 아냐? 山寺가 언제부터 돈을 쌓아두는 곳이 되었는지... 이미 죽었지만 숲길 옆에 조용히 자리잡은 고목에 더 정이 간다. 훨씬 더 절답다고나 할까... 오히려 그 나무가 내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느..

우왕좌왕 2021.02.19

장례식장

장례식장 아흔하고도 여덟 해를 사신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친구 어머니만이 아니고 형, 누나 그리고 동생들 5남매의 어머니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 일년만 지나면 白壽신데. 살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얼굴들을 만난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맨날 마주치던 얼굴들... 형 누나 동생들... 수십 년이 지났어도 마음만은 옛날과 똑같아 헤어지는 자리임을 잊고 만난 반가움에 서로 부둥켜 얼싸안는다. ‘야 걘 어디 사냐?’ ‘난 그놈이 보고 싶은데’ ‘아...그 형 돌아가셨다구?’ ‘니 누나는 어딨어?’ ‘오빤 그냥 고대로야 변한 게 읍써’ ‘변하믄 죽어 임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은 깊이 갈앉은 옛모습을 휘저어 떠오르게 하고 우리는 그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삼키며 되새김질을 한다. ‘야 니 ..

중얼중얼 2021.02.09

생일 다음날에

생일 다음 날에 다 똑같은 날인데 어느 날은 새해 첫날이 되고, 어느 날은 마지막날이 되고, 어떤 날은 기쁨의 날이 되고, 어떤 날은 슬픔의 날이 된다. 날에 의미를 주는 것은 바로 나여야 하는데 다른 이들이 내 삶을 재단하는 것같은 느낌은 뭘까. 그냥 여지껏처럼 쉽게 생각하고 넘겨야 하는데... 한 살 한 살 퍼먹다보니 그릇에 남은 밥은 줄어 들고 어깨는 등짐을 하나 더 보탠 것처럼 무거워 수그러진다. 누구나 그렇듯 아무 이룬 것 없이 생각되어 마음만 헛헛하다.

중얼중얼 2021.02.01

"개신교 정말 민폐다" 교회발 코로나 확산..시민들 '분통'

개신교단체가 언론에 사과하는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그저 상징적인 언론 플레이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의 통제력이 말단 교회에까지 미치지는 않기 떄문이다. 대부분의 개교회에서는 '우리는 아니니까' '우리 교회는 아니니까'하며 논란의 중심만 피해가면 끝이다. 마치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 앞에서 손만 씻고 물러나는 빌라도처럼... 대다수의 교회는 사회적 비판의식이나 책임의식도 없고 그저 자기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데 익숙하다. 교회의 역할이 그저 개인의 축복과 천국행 티켓을보여주는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니까, 우리 교회 잘못이 아니니까...' 하며 침묵하며 먼 산 불보듯하는 것이 진정 예수를 따르는 것일까... ----------------..

가시떨기(펌) 2021.02.01

더덕 다듬기

더덕을 다듬는다. 울퉁불퉁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자근자근 밟는다. 너무 세게 찧으면 속살이 뭉개지고 살살 하면 제대로 펴지지 않으니 적당히 조심스럽게 두드려서 부드럽게 펴야 한다. 더덕 하나 다듬는데도 힘의 강약을 잘 안배해야 하는데 삶을 다듬는데는 얼마나 많은 강약과 완급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할까. 세상에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은 없다. 오늘 하루도 얇은 얼음 위를 밟듯 조심스레 삶의 길을 걸어볼 일이다.

중얼중얼 2021.01.08

부끄러운 장로 대통령 / 백종국 교수(경상대 명예,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지난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구치소에 재수감되었다. 대법원은 그에게 뇌물죄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8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패가망신하게 된 개인으로서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를 ‘장로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고 지원해왔던 한국교회로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대통령 중에 세 분의 장로가 있었는데 이승만 장로는 독재와 부정선거로, 김영삼 장로는 무능과 외환위기로, 마지막 이명박 장로는 저급한 뇌물수수 범죄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우리가 양심이 있다면 마땅히 한국사회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처럼 부끄러운 장로 대통령들을 갖게 된 데에는 장로라는 직분에 대한 오해가 일조했다...

가시떨기(펌) 2020.11.11

이방원이 그토록 원했던, 중랑천 가로지르는 '살곶이 다리'

[세상을 잇는 다리] 저자도에 낙천정 짓고 무시로 드나들었던 이방원 [이영천 기자] ▲ 압구정도(겸재 정선) 한명회가 압구정에 정자를 지은 이유가 저자도와 살곶이 벌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림 2사 분면에 살곶이 벌과 저자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중랑천이 흐르는 곳에 살곶이 다리 모습이 뚜렷하다. ⓒ 간송미술문화재단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목 동측에 너르게 펼쳐진 벌판을 '살곶이 벌'이라 불렀다. 다른 이름으론 화살(箭)을 쏘았던, 물 쪽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땅(串)이란 의미로 '전곶평(箭串坪)'이라고도 했다. 오늘날 뚝섬이다. 이방원이 일으킨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새로 건국한 조선에 피바람이 일었다. 이성계 입장에서 보면, 건국 이전엔 정몽주를 죽인 아들이다. 건..

25년을 건너 뛴 만남

핵교 생활 중 딱 한 번 중학교에 근무했다. 1995년부터 1998까지… 집과는 너무 멀고 지하철도 완전하지 않아 출퇴근에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애들과는 즐겁게 잘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덩치가 나보다 훨씬 크고 거무튀튀한 사내놈들과 매일 씨름하며 지내다가 처음 가본 중학교. 애들도 너무 여리여리하고 솜털이 뽀송뽀송 귀엽고…잘 정돈된 느낌이 약간은 낯설고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애들과 어울려 참 즐겁고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었지. 엊그제 95년 대청중학교 3학년 4반 친구를 만났다. 96년 2월에 졸업한 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 그 동기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가끔 만났지만 이 친구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전혀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으로 가면서도 과연 얼굴을 알아볼 ..

중얼중얼 20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