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724

맨발걷기

아침에 빗줄기가 한바탕 지나가서 땅이 질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다. 막상 걸어보니 오히려 찰싹찰싹 발에 닿는 촉감이 좋다. 비 때문에 잔 돌들이 튀어 나온 게 많아 약간 신경이 쓰이지만... 비 예보 때문인지 사람들이 적어 그 또한 좋다. 마주치는 맨발들, 하얗게 드러나는 발들이 오목조목하니 참 예뿌다. 감싸고 감췄던 발을 살며시 내놓고 걷는 걸음걸이 또한 아름답다. 微吟緩步랄까. 맨발로 걸으면 자연히 천천히 걷고 살피며 걷는다. 혼자 나직이 노래도 하고... 전에는 운동이랍시고, 땀을 빼야 된다고 마구마구 빠르게 걸으며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느릿느릿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더 큰 기쁨을 느낀다. 빠른 걸음으로 휙 지나침보다 느림 가운데에서 여유있는 맛을 찾는달까... 비가 온 후 적당히 젖은 흙..

중얼중얼 2023.08.25

본색

용궁이라는 곳에 있다 해서 진짜 용인 줄 알았다.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서 용맹스럽고 무서운 호랑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는 짓거리를 보니 이도저도 아닌 무뇌아가 분명하다. 花無十日紅이다. 잠깐은 멋지게 보이고 서슬이 시퍼렇겠지만 곧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해가 비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버섯이나 곰팡이균처럼... #용궁 #호랑이 #무뇌아 #화무십일홍 #버섯 #곰팡이균

중얼중얼 2023.08.21

오상일 개인전

오랜만에 상일형 개인전.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강한 예술의 혼과 열정적인 작업.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형의 작업에는 인간의 고뇌와 고독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근원적인 고독인가.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예술은 예쁘장한 장식에 불과하다'라는 형의 말에서 삶 따로, 작업 따로가 아닌 삶이 녹아있는 작업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코로나 펜데믹과 지구 환경의 재앙과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드러내 비관적인 느낌의 작품도 있지만 스스로와 우리들에게 강한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게 적당한 듯. 그래도 두어 달에 한 번? 가끔 흰소리 주고 받으며 만났는데 개인전 준비 등 여러 일로 그동안 격조했지. '얼굴 본 지가 일년이 넘었네'하며 맞잡은 손에서 반가움과 정을 느껴 기분도 좋았다. 형의 작품도 ..

중얼중얼 2022.09.16

논문 재검증 교수회 입장문

‘또 교수회원 모두 누구보다도 자존심도 강하고 스스로 프라이드를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집합적 결정을 우리 모두 존중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교수사회가 더욱 화목하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국민대 교수회가 발표한 김건희 논문 재검증 관련 입장문 마지막 부분 일부다. 그 전문 내용은 차치하고(왜? 잘 모르니까ㅋㅋㅋ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 문장이 참 재밌어서... ‘자존심도 강하고 스스로 프라이드를 가진’ 자존심과 프라이드는 도대체 어떤 의미 관계어인가 집단지성으로 생각해봤나? 정말 ‘yuji’와 딱 맞는 수준인 건히?. 차라리 ‘jajonsim도 강하고 스스로 푸라이드를 가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아...궁민대 교수회 수준이 그 정도를 계속 yuji하고 있음을 충분..

중얼중얼 2022.08.23

여행 중 장보기

여행은 여행이고 장보기는 장보기인데...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싶은데 마누라님은 여행 중 시장에 가잔다. 마누라님 뜻을 따라 옛날 상설 시장으로 갔다. 대충 훑어보니 생물 활어 전문 시장. 회를 떠서 먹을 형편은 아니니 마음 속으로는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 ‘빨리 가자, 빨리 가자’하지만 밖으로 쏟아내진 못하고...ㅜㅜ 어쨌든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마누라님이 딱 멈췄다. 건어물 가게 앞... 제법 큰 시장인데 건어물 파는 곳은 한두 군데...용케도 그 앞에 우뚝 선 마누라님... 풀치, 멸치 한 상자씩, 반건조 오징어 한 축과 씹기 위주인 주전부리들... 가만히 있다가 나도 냉큼 하나 집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미역귀다리ㅎㅎㅎ 어쨌든 나중에 다듬는 것은 모두 내 차지이니ㅜㅜ... 풀치는 머리..

중얼중얼 2022.08.23

김밥꽁다리

마누라님은 김밥을 먹을 때 맨날 꽁다리만 먹는다. 예쁜 가운데 토막은 늘 나에게 준다. 나는 마누라님이 나를 위해서 이뿐 것만 골라서 준다고 믿고 있었다. 오늘 김밥을 해놓고 나가시길래 나도 마누라님을 위한다는 생각에 양쪽 끄트머리 삐죽삐죽 못생긴 부분만 모아서 먹었다. 아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여지껏 마누라님은 제일 맛난 부분만 먹고 있었구나… 갑자기 밀려드는 배신감…ㅜㅜ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비가 내 가슴 속으로 퍼붓는다…

중얼중얼 2022.06.23

의자

경의로 산책길 백마역 근처에 제법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다. 거기에 누군가가 갖다 놓은 의자 하나. 걷다가 가끔 앉아 쉬면 기분이 참 좋다. 그 시간만큼은 심산유곡 깊은 곳에 앉아 있는 느낌.ㅎㅎㅎ 길은 그냥 지나가는 통로이다. 요즘처럼 빠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길이란 빠르게 통과해야만 하는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길 가운데 의자가 하나가 있으면 다른 세상이 만들어진다. 멈춰서 바라보고 앉아 느낄 수 있는 극강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머물러 공간을 누릴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도시의 길거리에도 의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람과 도시와 길이 함께 살아날 것이다. 그저 아무런 느낌 없이 스치는 길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공간이 눈앞에 드러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잠시 멈춰 사람을 느..

중얼중얼 2022.04.26

게으름

퇴직 후 5년 동안 작은 텃밭을 일구며 땀을 흘렸다. 올해는 나에게 스스로 안식년을 주고 쉬기로... 절대적으로 물이 필요한 요즈음 수로에는 물이 가득차 넘친다. 흐르는 물을 보니 괜히 삽자루를 잡고도 싶네. 아서라...좀 쉬자...ㅎㅎㅎ 농사를 짓지 않으니 그 시간에 다른 무언가 해야 하나? 아니다~~~이냥저냥 편하게 게으름이나 피우자...ㅎㅎㅎ 꽃잎 따라 세월도 무심히 흘러만 가는구나...

중얼중얼 202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