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724

생일 다음날에

생일 다음 날에 다 똑같은 날인데 어느 날은 새해 첫날이 되고, 어느 날은 마지막날이 되고, 어떤 날은 기쁨의 날이 되고, 어떤 날은 슬픔의 날이 된다. 날에 의미를 주는 것은 바로 나여야 하는데 다른 이들이 내 삶을 재단하는 것같은 느낌은 뭘까. 그냥 여지껏처럼 쉽게 생각하고 넘겨야 하는데... 한 살 한 살 퍼먹다보니 그릇에 남은 밥은 줄어 들고 어깨는 등짐을 하나 더 보탠 것처럼 무거워 수그러진다. 누구나 그렇듯 아무 이룬 것 없이 생각되어 마음만 헛헛하다.

중얼중얼 2021.02.01

더덕 다듬기

더덕을 다듬는다. 울퉁불퉁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자근자근 밟는다. 너무 세게 찧으면 속살이 뭉개지고 살살 하면 제대로 펴지지 않으니 적당히 조심스럽게 두드려서 부드럽게 펴야 한다. 더덕 하나 다듬는데도 힘의 강약을 잘 안배해야 하는데 삶을 다듬는데는 얼마나 많은 강약과 완급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할까. 세상에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은 없다. 오늘 하루도 얇은 얼음 위를 밟듯 조심스레 삶의 길을 걸어볼 일이다.

중얼중얼 2021.01.08

25년을 건너 뛴 만남

핵교 생활 중 딱 한 번 중학교에 근무했다. 1995년부터 1998까지… 집과는 너무 멀고 지하철도 완전하지 않아 출퇴근에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애들과는 즐겁게 잘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덩치가 나보다 훨씬 크고 거무튀튀한 사내놈들과 매일 씨름하며 지내다가 처음 가본 중학교. 애들도 너무 여리여리하고 솜털이 뽀송뽀송 귀엽고…잘 정돈된 느낌이 약간은 낯설고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애들과 어울려 참 즐겁고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었지. 엊그제 95년 대청중학교 3학년 4반 친구를 만났다. 96년 2월에 졸업한 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 그 동기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가끔 만났지만 이 친구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전혀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으로 가면서도 과연 얼굴을 알아볼 ..

중얼중얼 2020.09.21

구자문 개인전

盒은 뚜껑을 덮어 합의 내부를 외부로부터 차단하여 내용물을 보관하거나 유지하는 목적을 지닌 ‘器’이다. 몸체가 되는 器와 뚜껑이 되는 器가 상, 하 구조로 이분화되어 있으며 몸통에 뚜껑이 만남으로써 외부와 차단된 공간을 만든다. -작가 노트-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 옛날 제자 개인전…청년 작가로서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 장르가 애매하구먼ㅎㅎㅎ. 회화나 조각도 아니고 공예에 끼기도 그렇고…그렇다고 전통 도예도 아니고… 순수예술, 상업미술, 실용예술…예술, 미술을 규정할 수 없지만...어쨌든 먹고 살 것을 해결해야 되는데… 서른여섯이면 한창 마구마구 뛸 땐데…참…장르 불문하고 전업작가가 먹고 살기 힘든 현실…수많은 예술가가 무너지는 현실…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 새로운 시도가 없으면 모든 게 이뤄질 수 없..

중얼중얼 2020.09.21

노목사님의 탄식

내가 20대부터 여태껏 알고 지내는 은퇴 노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야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남보다 늦게 신학을 하셨고(그때는 광나루에 놀러도 자주 갔었는데…)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시며 참 특이한 목회를 하셨지. 벽촌 오지 촌구석을 찾아가 교회를 세우고 필요한 것 모두 만들어 놓고는 후배한테 맡기고 자기는 훌쩍 떠난다.(나도 전기 밥솥 등 생활집기 후원도 제법 했지ㅎㅎㅎ)… 번듯한 교회보다는 약하고 소외받는 자들을 모아 먹이고 재우고 취직시키고 가정을 꾸리게 만들고는 내쫓는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인데… 은퇴 후에는 사내 손주 둘을 돌보시는 재미에 푹 빠지시는가 했더니 날이 갈수록 힘에 부치다고 사내놈 둘 보느니 차라리 목회를 다시 하겠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셨는데(결혼도 늦게 하..

중얼중얼 2020.09.15

작은 소녀상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드릴 물건이 있으니 좀 만나자고 후배 선생이 연락을 해왔다. 뭔 선물을 주려나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만났다. 아…‘작은 소녀상’… 옛날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작은 소녀상’을 얻어서 내 책상 위에 놓고 있다가 퇴직할 때 여러 사람이 공유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관리 담당자를 지정하고 학교에 두고 나왔다. 관리를 자청한 선생도 작년인가 퇴직을 했고 뭐 그냥 그대로 잘 있겠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자기도 내년에 이동을 해야 하고 나름 전설인 나를 아는 이들도 이젠 거의 없으니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왔단다. 잊지 않고 잘 모시다가 나에게 가져와서 고맙네. 집에 고이 잘 모시고 매일 옛이야기나 나눠야겠네… 몇 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니 잊어버린 옛 애인을 ..

중얼중얼 2020.09.03

의료 파업

의료 파업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하고 파업을 하고 있다. 의료인, 의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이다. 사회적으로도 그 지위를 보장 받고(은행에서는 의사들에게 대출도 팍팍 해준다고 한다) 누구나 선망하고 존경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덕분에 챌린지로’ 온 궁민의 찬사와 존경을 한몸에 듬뿍 받았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사회의 리더로서,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기 이익만 위해서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는 속물로 전락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며 속사정을 모른다고 하겠지만 일반 궁민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밥그릇에 더 많은 걸 채우려는 욕심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중얼중얼 2020.08.28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의 책임이다. 인정하자. 교인들이 떠나 숫자가 줄어 들고 최근에는 코로나 확산에 큰 공로를 세우고… 이 모두 교회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정화하고 사회의 빛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사회가 교회를 위해 기도?할 지경에 이른 지 오래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내외의 부정과 잘못함에 대해 지극히 관대해왔다. 부정과 부패를 밝히고 고치기보다는 은혜와 포용이라는 명목으로 덮고 가리기에만 급급했다. 목사와 목사, 목사와 장로, 장로와 장로 사이의 이해가 얽힌 공고한 카르텔에 의해 자기들만의 교회를 유지했다.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 하는데 자꾸 덮어주다 보니 이제는 어떤 잘못도 스스로 정죄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정화작용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나..

중얼중얼 2020.08.26